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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오늘의 추리소설 -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 / 산다슬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협회 소속 추리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엮은 책. 김차애, 김유철, 서미애 등 작가 8명의 작품을 선별해 수록하였다. 정신과 수련의인 수연과 자신이 살해하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 한 남자를 죽였다고 고집하는 최미연을 통해 여러 빛깔의 사랑과 섹스에 접근하는 표제작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 이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류성희의 작품으로, 차분한 어조로 사랑과 섹스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이 밖에 김차애의 《다정다감》, 서미애의 《그녀만의 테크닉》, 황세연의 《보물찾기》, 김유철의 《황금의 집》, 김상윤의 《교차로에서 만나다》, 장세연의 《어둠의 초상》 등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전히 국내 추리소설 작가들의 활동이나 작품 발표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단편집을 보고 우리 추리문학계에도 희망이 보이는 듯 하여 좋았다. 본격 미스터리나 도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는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올해의 《첫 섹스에 관한..》작품집은 작품의 질이나 독창성이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어도 좋을 것 같다.
다소 아쉬운 점들은 꽤 비싼 가격에(가난한 학생으로서 이 정도 가격이면 안습이다..) 300페이지도 안되는 적고 가벼운 분량이라는 점, 국내 작가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독자로서 작가들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이 작품들을 어떤 기준으로 뽑았고 심사위원들은 누구누구이며 이 협회가 과연 어떤 권위와 어떠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가지고 이 작품을 뽑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미나 일본과 같은 권위는 없을지라도 앞으로는 한국추리작가협회가 더 큰 발전과 권위를 가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한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협회의 작가들이 10년이나 20년 뒤에는, 한국에서 추리문학의 지위를 한껏 드높여 주었으면 한다.
첫 작품은 김차애의 《다정다감》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추리라기 보다는 오히려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한 공포소설이라고나 할까?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보이는 여자와 죽음을 예술로 표현하는 남자의 심리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김유철의 《황금의 집》은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이상한 사건에 주인공이 얽히고 이상한 인물들과 이상한 공간이 어우러지는 괴기한 재미가 있다. 그러나 결말이나 반전은 평이한 편이다. 톡 쏘는 맛이 아닌, 밋밋한 다이어트 콜라의 맛같은 작품이다.
서미애의 《그녀만의 테크닉》은 이 작품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인 것 같다. 한번 읽게 되면 끝을 보게 되는 그런 내용이라고나 할까. 자신을 배반한 남자를 납치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뒷 결말은 섬뜩한 것이다. 적절한 인물의 구도와 살떨리는 공포를 잘 빚어낸 작품이다. 인터넷 뉴스에서 본 작가의 모습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올리버 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여간 이 작품은 별 다섯개를 주어도 좋은 작품이었다.
《교차로에서 만나다》라는 작품의 김상윤은 학력이 대단한 엘리트인데, 의외로 유머러스한 작품을 선보인다. 저승사자와의 대결과 가슴뭉클한 결말에서는 휴머니즘도 느낄 수 있다.
류성희의 《첫 섹스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세밀히 해부한 흔적이 보인다. 인간을 한꺼풀 한꺼풀 벗겨내는 신경과 수련의와 살인은 저지른 간호사의 심리 게임이 돋보인다. 역시 어느정도 무섭기도 하다.
장세연의 《어둠의 초상》의 초상은 개인적으로도 몹시 좋아하는 도서추리의 형식에, 전형적인 치정살인이다. 이 작품은 물론 좋았지만 질이 약간은 떨어지는 것 같다. 인물묘사와 심리 묘사는 만점을 주어도 좋겠으나, 귀납적 증거의 제시가 부족한 듯 하다. 좀더 섬세한 증거를 제시해 주면 좋았을 것이다.
마지막 작품인 《보물찾기》도 읽는 재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낡아 빠진 시골집을 산 남자가 겪게 되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숨겨진 그 무엇을 찾는다는 흥미와 약간은 무서운 결말이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비록 본격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재미없었던 작품은 하나도 없었고, 질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룬 것 같다. 읽는 내내 흐믓하고 즐거웠으며 아리따운 책의 분홍색 표지에서 화사한 봄날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던 작품집이었다. 앞으로도 한국추리작가들의 일취월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