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Mystery Best 4
엘러리 퀸 지음, 설영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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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은 추리소설의 황제 엘러리 퀸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의 《Y의 비극》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이 작품도 그에 못지 않은 놀라운 결말과, 빈틈없는 작품의 구성과 전개, 깔끔한 퀸의 논리적인 추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Y의 비극 못지 않은 걸작이며, 총 9편의 국명(國名) 시리즈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실은 이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라는 작품은 구입한지 별 이유도 없이 약 2년 가까이 읽지 않고 서재에 꽂아두었던 작품인데, 그 동안 《탐정학원 Q》라는 만화를 읽게 되었다. 이 만화에서는 추리의 힌트로 셜록 홈즈의 한 단편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한 장편, 또 엘러리 퀸의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이 힌트로 제시된다. 아쉽게도 나는 이 만화를 먼저 본 것이 상당히 후회된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세 작품을 먼저 읽으시고 탐정학원 만화를 보시면 더 없이 좋을 듯.

T자 모양의 이집트 십자가에 매달린 목이 달아난 T자 모양의 시체와 모두 T자로 통일되는 주변환경들. 한 작은 마을의 초등학교 교장이 이처럼 참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엘러리 퀸은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엽기적인 범죄라 할 수 있겠다. 영상물로 만들면 상당히 무시무시할 것 같은데. 작가인 엘러리 퀸의 박식한 이집트 십자가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만했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범인을 지목해낼 결정적인 단서가 제시되지만, 작품의 초반부에는 수없이 제시되는 논리적인 단서들, 적잖은 등장인물들, 복잡다단한 범죄현장들이 어우러져 말그대로 상황은 미궁이다.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이후, 또 다시 백만장자 부호가 참혹하게 살해되는데, 본격적인 수사는 이 두 번째 희생자와 그의 주변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현장을 조작하여 엘러리를 농락하는 범인의 교묘한 솜씨(?)도 느낄 수 있다. 실은 미친 듯 보이지만 범인은 최고의 두뇌 회전을 보여준다. 범인도 똑똑하지만 개성적으로 만들어 놓은 등장인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 혼란을 가져다준다. 다들 한 가족이라고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실은 믿는이의 뒷통수를 치는 것이며 그럴 듯해 보였던 이들이 숨겨왔던 어두운 과거등등, 모범적인 미스터리 작품이라 할 만 하다. 계속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긴장과 공포의 연속이다. 마음이 약하신 분들은 처음의 자극적인 장면에 눈서리를 칠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끝을 보게 되는 것이 특히 엘러리 퀸의 소설인 것 같다. 공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만족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까.
범인이 나올락말락한 결말 부분에는 작가인 엘러리 퀸의 독자에게 정정당당한 도전장을 내민다. 나름대로 적절한 추리를 해보았지만, 역시 헛다리를 짚었다. 그러나 도전장을 보내기 전의 범죄현장에서는, 범인이 결정적인 단서를 흘리고 만다. 결말의 탐정 퀸은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날카로운 추리를 이끌어내며, 또 달아나는 범인을 체포하기 위하여 자신의 애마 뒤센버그, 비행기 등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범인을 끝내 잡아낸다. 이 추적의 순감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스릴이 넘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상당한 양의 장편이라 집중력도 떨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퀸의 추리는 더 없이 논리적이고 정정당당했다. 두 동갑내기 작가의 지혜에는 언제나 탄복할 수밖에.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엘러리 퀸의 작품은 장편이 39편, 단편이 78편에 이르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지금은 절판되어 버린 시그마북스를 포함하여 기껏해야 스물 몇 권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구할 수 있는 것이 불과 10여 작품 뿐이다. 이렇게 괄시받는 대가(大家) 엘러리 퀸을 보면 국내의 추리소설과 추리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요즈음은 그나마 여러 출판사에서 적잖은 추리소설들을 출간해 주고 있다. 수년 전의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의 붐이 일었을 때가 그렇고, 동서문화사에서 동서미스터리북스를 재출간 해준 것이 그렇고, 작년에 수많은 추리소설들이 출판된 것을 보면 그렇다. 추리소설을 즐기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즐거웠지만, 국내 추리문학과 추리소설 시장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추리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고전들이 충실히 번역될 필요가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도일 경의 작품 뿐만 아니라, 엘러리 퀸의 작품도 국내에 모두 번역되고, 또 많은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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