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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그리고 두려움 1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엘러리 퀸이나 도로시 세이어스와 같은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작가인 코넬 울리치는 그 이름보다 필명인 윌리엄 아이리쉬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특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환상의 여인》은 세계 3대 추리소설 중의 하나(누가 어떤 기준으로 했는지는 모르나, 국내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로, 다소 좁고 편협한 독서의 기회가 주어지는(그나마 요즈음은 빛을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추리소설 독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필독서라 할 수 있겠다.
아내와 싸우고 나온 헨더슨은 우연히 만나게 된 여인과 식사를 하고 극장에도 간다. 여인과 헤어진 후 한밤중에 돌아온 그는 침실에서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용의자는 바로 남편인 헨더슨으로 좁혀지고, 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우연히 만났던 여인과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여인의 행방은 묘연하고 증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는데...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라는 감미로운 문체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많은 추리소설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국내에 정식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베일에 가려진 작가의 모습과 그의 몇 안되는 우수에 가득찬 작품들은 그를 단지 그런 작가로만 보게 만들었다고 보아도 좋다. 예전에는 코넬 울리치의 여러 작품들이 어린이용이나 문고본으로 소개된 모양이지만, 현재 구할 수 있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 《환상의 여인》이나 《죽은 자와의 결혼》, 《상복의 랑데부》 정도일 것이다. 국내에 아직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만큼, 그의 전 작품에 대한 번역과 이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가의 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은, 코넬 울리치라는 작가의 인생과 작품 경향, 짙은 문학적 향취, 서문의 충실한 해설을 통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서스펜스의 거장이자 느와르의 아버지인 그에 대한 궁금증과 목마름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데 기여한다.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밤》의 어둡고도 차가워 보이는 애절한 이미지와 등장인물들의 긴장과 갈등관계가 절정에 다달음으로서 읽는이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해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성격이 그랬던 것처럼 작품들의 성격과 인물들은 다소 어둡고,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며, 두려움과 긴장감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인물들이다. 문체의 빠르기도 뒤로 갈수록 빨라지는 일종의 기악곡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거기에 작가 특유의 고독하고도 감미로운 문체가 어우러져 진정한 서스펜스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책의 뒤에 실린 편집자 프랜시스 네빈스의 서문도 좋았다. 작가의 일생과 죽음, 그의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설이 돋보인다. 해설에서도 작가의 일상적인 성격과 결혼의 실패, 동성애 기질과 병으로 인한 인생의 좌절과 고통을 여과없이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세계를 매료시킨 작가의 영고성쇠하는 쓸쓸한 인생과 삶의 고독, 실패와 좌절의 경험은 그의 작품 속에 반영되어 짙은 문학적 향기를 풍긴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속에 나오는 동분서주하며 공포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은 작가인 코넬 그 자체라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의 작품과 서문을 다 읽고 나면, 개인적으로 작가가 느꼈을 쓸쓸함과 고독, 외로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은 어쩌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였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의 기구한 인생살이 자체가 어쩌면 그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이루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단편집의 첫 작품인 《담배 Cigarette》는 작가의 장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서스펜스와 공포의 증폭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작품을 전개시켜 나간다. 악인의 덫에 빠져버린 순진한 주인공, 그리고 밤에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긴장의 땀을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독자또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해주는 단편이다.
《동시상영》은 형사와 범인이 긴장감 넘치는 대결을 벌이는 작품이다. 늘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 형사도 애인을 범인에게 놓아주고, 애인을 찾기 위해 범인과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울리치의 초기 액션 걸작 중의 하나.
《횡재》라는 작품도 스릴만점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작가에 의해 대도시의 공포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우연히 손에 넣은 보석과 범인, 경찰과의 치밀한 대결과 마지막의 다소 코믹한 결말은 독자로 하여금 최고조에 달했던 긴장을 웃음으로 풀어주는 작가의 장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목숨을 걸어라》에서는 또한 흥미로운 대결 상황이 제시된다. 사악한 한 인간과 성선설을 주장하는 또 다른 인간. 그 둘이 하는 내기는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한 사나이. 사람의 목숨을 지켜려는 다른 사람의 긴장과 흥분,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요시와라에서의 죽음》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범인으로 몰린 여성을 구하기 위해 얼치기 해군 탐정 준비생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으로, 일본적인 배경과 사람의 애증을 느낄 수 있었던 다소 긴장감 넘치는 추리극이다.
《엔디코트의 딸》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모든 증거가 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딸을 끝까지 지키고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잡아넣으려는 경찰인 아버지의 사랑과, 아슬아슬 줄타기 같은 진실과 결말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윌리엄 브라운 형사》는 두 인간의 대조적인 인생살이를 보여준다. 얍삽빠르고 간사한 인간과, 성실하고 느긋한 인간형. 한 인간의 자신의 승진과 명예를 위해 온갖 사악한 짓을 마다하지 않지만, 끝내는 죽으면서 그 성격을 바꾸고 후회의 미소를 지음으로써, 독자의 입가에 쌉싸릅한 미소를 짓게 해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그의 비극적인 삶은 뛰어난 작품의 이유가 됐다》라고 제임스 엘로이가 말했듯, 코넬 울리치의 삶은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동성애의 기질로 두 번의 결혼 모두 실패했고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고독하게 살았다. 작품을 쓰는 내내 불우했고 말년에는 각종 판권료 등으로 재산을 모았지만, 당뇨로 다리를 잘랐고 의족 사용법을 몰라 휠체어를 타야만했다. 허름한 호텔방에서 쓸쓸하게 생애를 마친, 그의 장례식 장에는 불과 너덧 명 정도가 쓸쓸히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밤’ 그리고 ‘두려움’은 책에 수록된 14편의 단편에서 공통으로 추출할 수 있는 정서이지만, 코넬 울리치의 삶 바로 그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곧 그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