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여자 친구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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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문단에서는 비중 있는 작가 고이케 마리코(《사랑》으로 제 114회 나오키상 수상)의 단편집으로, 연약함으로 무장한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 6편을 묶었다.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언뜻 보기에는 평화롭고 유약해보이는 존재들이지만, 그들 내면 깊은 곳에는 인간에 대한 살의(殺意)가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이들의 내면 심리가 분출되는 양상을 섬뜩하게 묘사해 낸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책표지만 보고 연애소설로 추정해버렸는데, 인터넷 서점의 서평을 보고서야 추리 단편집임을 알게 되었다 ^^;; 작가의 작품활동이며 수상경력등도 화려하며, 이 단편집은 작가 특유의 여성스러움외에도 톡 쏘는 맛 같은 공포와 긴장감, 떨리는 공포와 섬뜩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홈즈나 크리스티의 중,단편들, 포의 공포스러움이나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같은 분위기와는 다른 독특한 단편만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어느 정도 취하고는 있지만, 머리아플 정도의 구성은 아니며, 오히려 일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지만, 결말의 구성과 작품의 교묘함은 더없는 스릴과 공포를 가져다 주는 듯 했다.

《보살 같은 여자》는 가족 모두가 싫어하는 반신불수의 한 의사와 그 가족들이 중심 인물이다. 어느날 별장에 휴가를 온 가족 모두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만 두고 저녁에 호텔로 식사를 하러가게 되는데, 가족들이 늦은 시각 별장에 도착해보니 별장은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아버지는 죽음을 맞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가족들은 안도하고 그 후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와 그 진실을 실로 섬뜩한 것이었다. 대략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상당히 섬뜩한 결말과 평범함과 미소 속에 감추어진 날카로운 면도날 같은 여운을 가져다 준다. 

《추락》은 한 여자의 우연한 죽음으로 생기는 한 남자의 심리를 날카롭고 섬세하게 보여주는 단편이다. 이쁘게 단장한 한 여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녀와 깊은 관계를 가졌던 남자는 깊은 정신적 갈등과 고통을 갖게 되는데, 독자도 이에 못지 않은 스릴과 안타까움등으로 책장을 빨리빨리 넘길 수 있다. 결말은 결국 남자의 입장에서는 허탈, 허무하게 끝나지만, 평범하게만 보였던 사람을 독자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단편도 개인적으로 상당히 섬뜩했다.

《남자 잡아먹는 여자》라는 작품은 결혼한 남편과 그 주변의 남자들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현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 여자 때문에 주변 지인과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여자는 그녀를 살인자로 매도하고, 남자 잡아먹는 여자는 울며 해명할 뿐이다. 비록 그녀가 남자를 죽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없고 결말도 다소 맥빠진 듯이 전개되지만, 일상 속의 공포와 두려움을 섬세히 묘사한 흔적들이 보인다.

《아내의 여자 친구》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부문상을 받은 걸작이다. 평범한 소시민적인 행복을 아내와 자식과 함께 끝까지 누리고자 하는 공무원 남편. 그러나 화려하게 성공한 아내의 여자 친구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 생활에 행복을 느끼던 아내를 유혹하고, 마치 파출부 부리듯이 부려먹는다. 이에 심히 불쾌함을 느끼는 남편은 과연.. 결말이 돋보이는 단편이었다.

《잘못된 사망 장소》도 상당한 걸작이라고 생각된다. 한 거만한 남자를 한 여자가 죽이고 또 그 주변인물들이 허둥지둥대며 죽은 이를 둘러싼 이익과 유산만을 차지하려 하는 모습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지만,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결말에서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미소를 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고 생각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 작품인 《종막》은 마치 콜롬보나 후루하타 닌자부로 같은 도서추리형식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성공과 영광을 눈앞에 둔 남자가 어쩔 수 없이 자기와 관계를 맺은 여성을 죽이지만 결정적인 단서에 꼬리가 잡히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에 더하여 쓴웃음을 짓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허무하게 실패하는 완전범죄! 잘 다듬어진 단편이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이 작가의 단편들은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지만, 평범함 속에서 더욱 날카로운 살의 또는 욕망등이 숨쉬는 인간의 모습을 대단히 사실스럽고 섬세하게 표현해낸 작가의 솜씨는 탁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국내에서도 좀 더 잘 알려졌으면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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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못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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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포청천과 함께 중국의 명판관으로 이름 높은 '디런지에' 시리즈의 대표작. 불륜, 축첩, 매춘, 간통, 애증, 독살, 권모술수 등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물결치는 중국 당나라의 베이저우 마을을 그린 추리소설이다. 저자는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탁월한 필력을 바탕으로 머리 없는 시신, 종이 고양이 살인, 피살의 세가지 살인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시킨다. 각 장의 구성과 삽화는 중국 전통 소설 형식을 그대로 지키고 있으며, 연이어 일어나는 몇 가지 다른 사건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중국 판관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작가인 로베르트 반 훌릭이라는 사람도 대단히 흥미로운데, 191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언어, 문화, 역사, 문학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연구하였다. 특히 중국 전통 추리담의 영웅 디런지에의 범죄 수사와 판결 사례를 각색한 일련의 추리 소설을 발간하여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의 대표작인 《쇠못 살인자》는 판결 및 수사 지침서인 《당음비사 : 중국 송(宋)나라의 계만영(桂萬榮)이 1207년에 만든 재판기록집》를 참고하여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작가의 박식함과 전문적인 지식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당대의 중국 풍습, 중국의 권법, 각종 분쟁, 및 시대를 살아가는 신분이 다른 각양각색의 인간들과 작중의 배경인 베이저우 또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좋았다. 배경이 색다르고 등장인물도 아득한 옛날의 실존 인물인 것이 독특해서 좋았고, 추리소설로서도 훌륭한 짜임의 작품이었다.

베이저우의 판관을 맡은 디런지에는 처음에는 머리가 잘린 여성의 살인사건과 이름있는 규수가 실종되는 사건을 동시에 맡게 된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 사이에는 과연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 부분은 작가인 반 훌릭이 《당음비사》를 상당 부분 참고한 부분이다. 물론 실제의 사건에 가공의 인물들과 또 다른 사건들을 첨부하여 읽는 재미를 더하여 주는 일종의 팬픽션을 작가는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아득한 고대의 인물들에게 생명력과 개성을 부여하고, 역사적인 사건과 가공의 사건을 전혀 어색함 없이 버무린 작가의 솜씨는 경탄할 만한 것이다. 또 서양인이라는 입장과 당시의 제국주의적인 사상으로 점철된 당대의 시대적 상황속에서도 이미 쇠퇴해버린 늙은 호랑이 중국을 새로운 눈으로 작가는 바라본 것 같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과 베이저우라는 마을은, 생명력과 희망, 더 나아가 중국 황제에 대한 충성이 가득하다. 주인공 디 공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임금에게 충성스럽고 백성을 아끼고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인식에도 불과하고 중국에 대한 남다른 지적 호기심과 열정, 동양문명에 대한 사랑이 이 작품과 그 외의 저작들을 낳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쇠못 살인자》를 보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포청천보다는 《별순검》이 떠오른다. 참혹한 범죄 현장과 계속해서 나열되는 증거의 파편들, 포청천보다 명쾌한 추리와 사람의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수사가 불가능하고 추리와 이해에도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공은 참으로 다양한 생각과 남다른 추리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를 위해 정보를 모으면서 헌신하는 멋드러진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고풍스러운 배경과 인물의 설정에서도 현대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독서의 묘미을 느낄 수 있어 특히 좋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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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 Mystery Best 10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정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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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 다음날 개관식을 앞둔 이하라 호텔에서 거대한 '빛의 십자가'가 나타났다. 도쿄 시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사람이 떨어져 죽는 것으로 시작된 연쇄 살인 사건. 마치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죽음들의 연결고리들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추악함.
 
일본의 인기 추리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으로 밀실살인의 트릭과 시간의 알리바이가 장대한 드라마를 연출해낸다.

일본의 추리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종전 후의 요코미조 세이시 시대(대표 탐정은 긴다이치 고스케.)와 50년대의 마쓰모토 세이초 시대를 거쳐 일본에서의 세 번째 추리소설 붐을 일으킨 시대의 중심에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10여년간 호텔에서 근무하였다. 호텔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그의 초기작품인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고층의 사각》을 비롯,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등등 그의 작품에는 호텔을 배경으로 하고 그 호텔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기업인과 기업들 사이의 알력과 탐욕, 정략 결혼, 상류 계층의 이기심과 추악한 본성 및 인간성의 붕괴를 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국내에는 이 작품외에도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등이 출판되어 있는데, 둘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눈에 띄는 탐정은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범인을 잡기 위해 발로 뛰고 인내하는 형사들의 모습만이 보인다. 오히려 이들의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고와 협동성 및 진짜 형사들의 사건 수사를 보는 듯한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76년도 한 해 소득이 6억엔을 넘어 일본 문단사상 최고로 제 1위를 마크하여 세인을 놀라게 한 일본의 인기작가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 간다고들 하지만. 이러한 추리작가가 전무한 우리나라와 외국추리소설들만을 바라다 보는 국내의 편협한 독자로서, 역시 많이 부럽고, 우리나라의 추리소설 작가들도 그들 작품의 깊이와 내면을 갈고 닦는 데 정진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고 이름도 복잡하여 읽기 힘들 줄 알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굉장한 재미와 몰입감을 주는 구성이며, 화려한 배경과 기묘한 두 개의 밀실 살인(호텔에서의 살인, 개인 맨션에서의 체인 록의 밀실 살인), 등장인물들의 서로 대한 애증과 불륜, 기업인들의 탐욕과 야망 등등, 잘 짜여진 한 편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그의 작품들에서는 인간의 잠재된 야망과 본성을 드러내면서 사회 자체의 모순과 갈등양상과 화려한 재력과 배경을 가진 인간들의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내는데 주목하고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지만, 그러나 완벽한 트릭과 알리바이 및 밀실의 구성, 참으로 현실적인 설정의 사건 전개와 형사들의 고군분투, 철벽의 알리바이 파괴 등의 어우러짐은 이 작품을 비롯 작가를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음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애증, 숨겨진 불륜관계, 비뚤어진 애정, 기업인들의 끝없는 탐욕과 자기가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맺지도 못하고 기업과 기업의 친선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인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메말라 버린 인간의 본성과 놀랄정도로 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도시와 현대사회의 모습과 진실 등등. 상류계층의 화려한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아닌, 소설 속에 나오는 이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행복을 정상적으로 누리지도 못하는, 가련하고 불쌍한 인간들일 뿐이다. 추리소설이 아닌, 이러한 주제 만으로도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이러한 사회성에 더하여 능수능란한 추리적 기법을 구사함으로서 일류 작가의 반열에 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영국식 미스터리 식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무언가 가슴을 무겁게 하고, 어쩐지 서글프고 고독한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89년, 나이 56세 때 내놓은 작품이다. 그 외에도 구미가 당기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역시 국내 출판계에서는 작가에 대한 소개와 작품 출판이 전무한 상태라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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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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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이나 도로시 세이어스와 같은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작가인 코넬 울리치는 그 이름보다 필명인 윌리엄 아이리쉬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특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환상의 여인》은 세계 3대 추리소설 중의 하나(누가 어떤 기준으로 했는지는 모르나, 국내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로, 다소 좁고 편협한 독서의 기회가 주어지는(그나마 요즈음은 빛을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추리소설 독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필독서라 할 수 있겠다.

아내와 싸우고 나온 헨더슨은 우연히 만나게 된 여인과 식사를 하고 극장에도 간다. 여인과 헤어진 후 한밤중에 돌아온 그는 침실에서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용의자는 바로 남편인 헨더슨으로 좁혀지고, 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우연히 만났던 여인과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여인의 행방은 묘연하고 증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는데...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라는 감미로운 문체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많은 추리소설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국내에 정식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베일에 가려진 작가의 모습과 그의 몇 안되는 우수에 가득찬 작품들은 그를 단지 그런 작가로만 보게 만들었다고 보아도 좋다. 예전에는 코넬 울리치의 여러 작품들이 어린이용이나 문고본으로 소개된 모양이지만, 현재 구할 수 있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 《환상의 여인》이나 《죽은 자와의 결혼》, 《상복의 랑데부》 정도일 것이다. 국내에 아직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만큼, 그의 전 작품에 대한 번역과 이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가의 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은, 코넬 울리치라는 작가의 인생과 작품 경향, 짙은 문학적 향취, 서문의 충실한 해설을 통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서스펜스의 거장이자 느와르의 아버지인 그에 대한 궁금증과 목마름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데 기여한다.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밤》의 어둡고도 차가워 보이는 애절한 이미지와 등장인물들의 긴장과 갈등관계가 절정에 다달음으로서 읽는이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해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성격이 그랬던 것처럼 작품들의 성격과 인물들은 다소 어둡고,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며, 두려움과 긴장감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인물들이다. 문체의 빠르기도 뒤로 갈수록 빨라지는 일종의 기악곡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거기에 작가 특유의 고독하고도 감미로운 문체가 어우러져 진정한 서스펜스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책의 뒤에 실린 편집자 프랜시스 네빈스의 서문도 좋았다. 작가의 일생과 죽음, 그의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설이 돋보인다. 해설에서도 작가의 일상적인 성격과 결혼의 실패, 동성애 기질과 병으로 인한 인생의 좌절과 고통을 여과없이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세계를 매료시킨 작가의 영고성쇠하는 쓸쓸한 인생과 삶의 고독, 실패와 좌절의 경험은 그의 작품 속에 반영되어 짙은 문학적 향기를 풍긴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속에 나오는 동분서주하며 공포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은 작가인 코넬 그 자체라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의 작품과 서문을 다 읽고 나면, 개인적으로 작가가 느꼈을 쓸쓸함과 고독, 외로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은 어쩌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였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의 기구한 인생살이 자체가 어쩌면 그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이루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단편집의 첫 작품인 《담배 Cigarette》는 작가의 장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서스펜스와 공포의 증폭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작품을 전개시켜 나간다. 악인의 덫에 빠져버린 순진한 주인공, 그리고 밤에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긴장의 땀을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독자또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해주는 단편이다.

《동시상영》은 형사와 범인이 긴장감 넘치는 대결을 벌이는 작품이다. 늘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 형사도 애인을 범인에게 놓아주고, 애인을 찾기 위해 범인과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울리치의 초기 액션 걸작 중의 하나.

《횡재》라는 작품도 스릴만점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작가에 의해 대도시의 공포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우연히 손에 넣은 보석과 범인, 경찰과의 치밀한 대결과 마지막의 다소 코믹한 결말은 독자로 하여금 최고조에 달했던 긴장을 웃음으로 풀어주는 작가의 장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목숨을 걸어라》에서는 또한 흥미로운 대결 상황이 제시된다. 사악한 한 인간과 성선설을 주장하는 또 다른 인간. 그 둘이 하는 내기는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한 사나이. 사람의 목숨을 지켜려는 다른 사람의 긴장과 흥분,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요시와라에서의 죽음》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범인으로 몰린 여성을 구하기 위해 얼치기 해군 탐정 준비생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으로, 일본적인 배경과 사람의 애증을 느낄 수 있었던 다소 긴장감 넘치는 추리극이다.

《엔디코트의 딸》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모든 증거가 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딸을 끝까지 지키고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잡아넣으려는 경찰인 아버지의 사랑과, 아슬아슬 줄타기 같은 진실과 결말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윌리엄 브라운 형사》는 두 인간의 대조적인 인생살이를 보여준다. 얍삽빠르고 간사한 인간과, 성실하고 느긋한 인간형. 한 인간의 자신의 승진과 명예를 위해 온갖 사악한 짓을 마다하지 않지만, 끝내는 죽으면서 그 성격을 바꾸고 후회의 미소를 지음으로써, 독자의 입가에 쌉싸릅한 미소를 짓게 해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그의 비극적인 삶은 뛰어난 작품의 이유가 됐다》라고 제임스 엘로이가 말했듯, 코넬 울리치의 삶은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동성애의 기질로 두 번의 결혼 모두 실패했고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고독하게 살았다. 작품을 쓰는 내내 불우했고 말년에는 각종 판권료 등으로 재산을 모았지만, 당뇨로 다리를 잘랐고 의족 사용법을 몰라 휠체어를 타야만했다. 허름한 호텔방에서 쓸쓸하게 생애를 마친, 그의 장례식 장에는 불과 너덧 명 정도가 쓸쓸히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밤’ 그리고 ‘두려움’은 책에 수록된 14편의 단편에서 공통으로 추출할 수 있는 정서이지만, 코넬 울리치의 삶 바로 그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곧 그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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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상 수상작품집 4
정태원 옮김 / 명지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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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상 [Mystery Writers of America]
일명 미국 추리작가 협회상(MWA: Mystery Writers of America)이라고 한다. 이 상에는 장편상·신인상·실화상(實話賞) 등이 있다. 1954년부터 시작되어 소설은 물론이며, 평론·텔레비전·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작품 선정은 현역작가와 협회 회원들이 한다. 수상자에게는 에드거 앨런 포의 조상이 수여되고,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레이븐(Raven)패가 주어진다. 수상작들은 명성에 걸맞게 대부분 수작들이며, 많은 수상작품들이 국내에도 번역·소개되었다.

이 에드거상 단편 수상 작품집은 국내에서는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47년의 수상작 엘러리 퀸의 《미친 티 파티》에서부터 93년작인 로렌스 블록의 《켈러의 요법》에 이르기까지 에드가상을 수상한 단편들을 모았다. 한 권으로 모두 모아서 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약간은 아쉽다. 더 아쉬운 것은 각권의 가격이 총 15000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가격인 것. 수록된 작품은 그렇다치더라도 이런 별 볼일없는 책 디자인의 책에 그런 가격을 붙이다니, 출판사의 장난이 다소 심했다고 본다. 마지못해 사보게 되는 추리소설 독자들을 우려먹으려는 출판사의 속셈인 것 같지만.

1,2,3권의 작품들이 더 구미가 동했지만,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쉽게도 4권뿐이다. 개인적으로 그저 그런 작품들뿐이었지만,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둑들》이라는 작품은 상당히 재미있는 걸작이다.

《번개를 타라》라는 작품은 하드보일드와 적절한 추리적 구성이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그러나 범인의 설정은 너무 흔해빠진 것이여서, 나같은 에드가상 작품집을 처음 읽는 독자를 다소 아쉽게 하지 않았나 싶다.

《핀톤군의 비》라는 작품도 그저 그런 작품이었다. 인간의 심리와 비의 이미지가 어우러지는 것 외에는, 밋밋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소프트 몽키》라는 작품은 그럭저럭 볼 만한 작품이다. 자신의 소프트 몽키와 함께 안주하려는 흑인 여성과, 그녀를 괴롭힌 사악한 악당들. 그녀는 결국 안주할 공간을 찾게 된다.

《공포 영화》라는 작품의 결말은 그리 시원스러운 것이 아니다. 마치 더운 여름에 땀에 절어 등산을 한 뒤 집에 돌아와 절수가 되어 바로 샤워를 하지 못하는 그런 결말이다.

《도둑들》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두 명의 은행 금고에 침입한 강도들의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데, 코믹한 구성과 적절한 결말의 처리가 괜찮은, 그나마 이 작품집 속에서 가장 산뜻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엘비스는 살아있다》나 《아홉 명의 아들》은 그냥 그런 작품들이었다. 왜 에드가상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작품들이기도 했다.

《메리, 메리, 문을 닫아라》라는 한 사립탐정의 끈질한 의지와 집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것도 그럭저럭 덜 우러난 곰국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마지막 작품은 《켈러의 요법》도 큰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1,2,3 권의 작품들을 보았으면 더 좋겠지만, 근처 서점에서는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가격도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너무 비싸다. 차라리 네 권을 묶어서 파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 같다. 출판사의 배려와, 이 책을 사기를 망설이게 만드는 형편없는 책의 디자인이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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