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못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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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 포청천과 함께 중국의 명판관으로 이름 높은 '디런지에' 시리즈의 대표작. 불륜, 축첩, 매춘, 간통, 애증, 독살, 권모술수 등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물결치는 중국 당나라의 베이저우 마을을 그린 추리소설이다. 저자는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탁월한 필력을 바탕으로 머리 없는 시신, 종이 고양이 살인, 피살의 세가지 살인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시킨다. 각 장의 구성과 삽화는 중국 전통 소설 형식을 그대로 지키고 있으며, 연이어 일어나는 몇 가지 다른 사건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중국 판관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작가인 로베르트 반 훌릭이라는 사람도 대단히 흥미로운데, 191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언어, 문화, 역사, 문학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연구하였다. 특히 중국 전통 추리담의 영웅 디런지에의 범죄 수사와 판결 사례를 각색한 일련의 추리 소설을 발간하여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 등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의 대표작인 《쇠못 살인자》는 판결 및 수사 지침서인 《당음비사 : 중국 송(宋)나라의 계만영(桂萬榮)이 1207년에 만든 재판기록집》를 참고하여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작가의 박식함과 전문적인 지식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당대의 중국 풍습, 중국의 권법, 각종 분쟁, 및 시대를 살아가는 신분이 다른 각양각색의 인간들과 작중의 배경인 베이저우 또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좋았다. 배경이 색다르고 등장인물도 아득한 옛날의 실존 인물인 것이 독특해서 좋았고, 추리소설로서도 훌륭한 짜임의 작품이었다.

베이저우의 판관을 맡은 디런지에는 처음에는 머리가 잘린 여성의 살인사건과 이름있는 규수가 실종되는 사건을 동시에 맡게 된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 사이에는 과연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 부분은 작가인 반 훌릭이 《당음비사》를 상당 부분 참고한 부분이다. 물론 실제의 사건에 가공의 인물들과 또 다른 사건들을 첨부하여 읽는 재미를 더하여 주는 일종의 팬픽션을 작가는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아득한 고대의 인물들에게 생명력과 개성을 부여하고, 역사적인 사건과 가공의 사건을 전혀 어색함 없이 버무린 작가의 솜씨는 경탄할 만한 것이다. 또 서양인이라는 입장과 당시의 제국주의적인 사상으로 점철된 당대의 시대적 상황속에서도 이미 쇠퇴해버린 늙은 호랑이 중국을 새로운 눈으로 작가는 바라본 것 같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과 베이저우라는 마을은, 생명력과 희망, 더 나아가 중국 황제에 대한 충성이 가득하다. 주인공 디 공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임금에게 충성스럽고 백성을 아끼고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당대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인식에도 불과하고 중국에 대한 남다른 지적 호기심과 열정, 동양문명에 대한 사랑이 이 작품과 그 외의 저작들을 낳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쇠못 살인자》를 보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포청천보다는 《별순검》이 떠오른다. 참혹한 범죄 현장과 계속해서 나열되는 증거의 파편들, 포청천보다 명쾌한 추리와 사람의 심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수사가 불가능하고 추리와 이해에도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공은 참으로 다양한 생각과 남다른 추리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를 위해 정보를 모으면서 헌신하는 멋드러진 부하들도 마찬가지다. 고풍스러운 배경과 인물의 설정에서도 현대의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독서의 묘미을 느낄 수 있어 특히 좋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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