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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여자 친구
고이케 마리코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 문단에서는 비중 있는 작가 고이케 마리코(《사랑》으로 제 114회 나오키상 수상)의 단편집으로, 연약함으로 무장한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 6편을 묶었다.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언뜻 보기에는 평화롭고 유약해보이는 존재들이지만, 그들 내면 깊은 곳에는 인간에 대한 살의(殺意)가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이들의 내면 심리가 분출되는 양상을 섬뜩하게 묘사해 낸다.
처음에는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책표지만 보고 연애소설로 추정해버렸는데, 인터넷 서점의 서평을 보고서야 추리 단편집임을 알게 되었다 ^^;; 작가의 작품활동이며 수상경력등도 화려하며, 이 단편집은 작가 특유의 여성스러움외에도 톡 쏘는 맛 같은 공포와 긴장감, 떨리는 공포와 섬뜩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홈즈나 크리스티의 중,단편들, 포의 공포스러움이나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같은 분위기와는 다른 독특한 단편만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어느 정도 취하고는 있지만, 머리아플 정도의 구성은 아니며, 오히려 일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지만, 결말의 구성과 작품의 교묘함은 더없는 스릴과 공포를 가져다 주는 듯 했다.
《보살 같은 여자》는 가족 모두가 싫어하는 반신불수의 한 의사와 그 가족들이 중심 인물이다. 어느날 별장에 휴가를 온 가족 모두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만 두고 저녁에 호텔로 식사를 하러가게 되는데, 가족들이 늦은 시각 별장에 도착해보니 별장은 화재로 잿더미가 되고 아버지는 죽음을 맞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가족들은 안도하고 그 후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와 그 진실을 실로 섬뜩한 것이었다. 대략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상당히 섬뜩한 결말과 평범함과 미소 속에 감추어진 날카로운 면도날 같은 여운을 가져다 준다.
《추락》은 한 여자의 우연한 죽음으로 생기는 한 남자의 심리를 날카롭고 섬세하게 보여주는 단편이다. 이쁘게 단장한 한 여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녀와 깊은 관계를 가졌던 남자는 깊은 정신적 갈등과 고통을 갖게 되는데, 독자도 이에 못지 않은 스릴과 안타까움등으로 책장을 빨리빨리 넘길 수 있다. 결말은 결국 남자의 입장에서는 허탈, 허무하게 끝나지만, 평범하게만 보였던 사람을 독자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단편도 개인적으로 상당히 섬뜩했다.
《남자 잡아먹는 여자》라는 작품은 결혼한 남편과 그 주변의 남자들에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현 여자의 이야기이다. 그 여자 때문에 주변 지인과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여자는 그녀를 살인자로 매도하고, 남자 잡아먹는 여자는 울며 해명할 뿐이다. 비록 그녀가 남자를 죽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도 없고 결말도 다소 맥빠진 듯이 전개되지만, 일상 속의 공포와 두려움을 섬세히 묘사한 흔적들이 보인다.
《아내의 여자 친구》는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부문상을 받은 걸작이다. 평범한 소시민적인 행복을 아내와 자식과 함께 끝까지 누리고자 하는 공무원 남편. 그러나 화려하게 성공한 아내의 여자 친구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 생활에 행복을 느끼던 아내를 유혹하고, 마치 파출부 부리듯이 부려먹는다. 이에 심히 불쾌함을 느끼는 남편은 과연.. 결말이 돋보이는 단편이었다.
《잘못된 사망 장소》도 상당한 걸작이라고 생각된다. 한 거만한 남자를 한 여자가 죽이고 또 그 주변인물들이 허둥지둥대며 죽은 이를 둘러싼 이익과 유산만을 차지하려 하는 모습에서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지만, 결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결말에서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미소를 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고 생각게 해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 작품인 《종막》은 마치 콜롬보나 후루하타 닌자부로 같은 도서추리형식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성공과 영광을 눈앞에 둔 남자가 어쩔 수 없이 자기와 관계를 맺은 여성을 죽이지만 결정적인 단서에 꼬리가 잡히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에 더하여 쓴웃음을 짓게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허무하게 실패하는 완전범죄! 잘 다듬어진 단편이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이 작가의 단편들은 읽을수록 재미있었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이지만, 평범함 속에서 더욱 날카로운 살의 또는 욕망등이 숨쉬는 인간의 모습을 대단히 사실스럽고 섬세하게 표현해낸 작가의 솜씨는 탁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국내에서도 좀 더 잘 알려졌으면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