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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 Mystery Best 10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정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월
평점 :
크리스마스 이브. 다음날 개관식을 앞둔 이하라 호텔에서 거대한 '빛의 십자가'가 나타났다. 도쿄 시내의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사람이 떨어져 죽는 것으로 시작된 연쇄 살인 사건. 마치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죽음들의 연결고리들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과 추악함.
일본의 인기 추리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으로 밀실살인의 트릭과 시간의 알리바이가 장대한 드라마를 연출해낸다.
일본의 추리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종전 후의 요코미조 세이시 시대(대표 탐정은 긴다이치 고스케.)와 50년대의 마쓰모토 세이초 시대를 거쳐 일본에서의 세 번째 추리소설 붐을 일으킨 시대의 중심에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10여년간 호텔에서 근무하였다. 호텔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그의 초기작품인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고층의 사각》을 비롯,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등등 그의 작품에는 호텔을 배경으로 하고 그 호텔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기업인과 기업들 사이의 알력과 탐욕, 정략 결혼, 상류 계층의 이기심과 추악한 본성 및 인간성의 붕괴를 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국내에는 이 작품외에도 《인간의 증명》, 《야성의 증명》등이 출판되어 있는데, 둘다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눈에 띄는 탐정은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범인을 잡기 위해 발로 뛰고 인내하는 형사들의 모습만이 보인다. 오히려 이들의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고와 협동성 및 진짜 형사들의 사건 수사를 보는 듯한 눈에 띄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76년도 한 해 소득이 6억엔을 넘어 일본 문단사상 최고로 제 1위를 마크하여 세인을 놀라게 한 일본의 인기작가이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 간다고들 하지만. 이러한 추리작가가 전무한 우리나라와 외국추리소설들만을 바라다 보는 국내의 편협한 독자로서, 역시 많이 부럽고, 우리나라의 추리소설 작가들도 그들 작품의 깊이와 내면을 갈고 닦는 데 정진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고 이름도 복잡하여 읽기 힘들 줄 알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굉장한 재미와 몰입감을 주는 구성이며, 화려한 배경과 기묘한 두 개의 밀실 살인(호텔에서의 살인, 개인 맨션에서의 체인 록의 밀실 살인), 등장인물들의 서로 대한 애증과 불륜, 기업인들의 탐욕과 야망 등등, 잘 짜여진 한 편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그의 작품들에서는 인간의 잠재된 야망과 본성을 드러내면서 사회 자체의 모순과 갈등양상과 화려한 재력과 배경을 가진 인간들의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내는데 주목하고 있다. 사회파 추리소설이지만, 그러나 완벽한 트릭과 알리바이 및 밀실의 구성, 참으로 현실적인 설정의 사건 전개와 형사들의 고군분투, 철벽의 알리바이 파괴 등의 어우러짐은 이 작품을 비롯 작가를 본격 미스터리의 거장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음을 알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의 성격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서로에 대한 애증, 숨겨진 불륜관계, 비뚤어진 애정, 기업인들의 끝없는 탐욕과 자기가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맺지도 못하고 기업과 기업의 친선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는 인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메말라 버린 인간의 본성과 놀랄정도로 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도시와 현대사회의 모습과 진실 등등. 상류계층의 화려한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아닌, 소설 속에 나오는 이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행복을 정상적으로 누리지도 못하는, 가련하고 불쌍한 인간들일 뿐이다. 추리소설이 아닌, 이러한 주제 만으로도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이러한 사회성에 더하여 능수능란한 추리적 기법을 구사함으로서 일류 작가의 반열에 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나면 영국식 미스터리 식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무언가 가슴을 무겁게 하고, 어쩐지 서글프고 고독한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89년, 나이 56세 때 내놓은 작품이다. 그 외에도 구미가 당기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역시 국내 출판계에서는 작가에 대한 소개와 작품 출판이 전무한 상태라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