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리고 두려움 1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 / 시공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엘러리 퀸이나 도로시 세이어스와 같은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작가인 코넬 울리치는 그 이름보다 필명인 윌리엄 아이리쉬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특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환상의 여인》은 세계 3대 추리소설 중의 하나(누가 어떤 기준으로 했는지는 모르나, 국내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로, 다소 좁고 편협한 독서의 기회가 주어지는(그나마 요즈음은 빛을 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추리소설 독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필독서라 할 수 있겠다.

아내와 싸우고 나온 헨더슨은 우연히 만나게 된 여인과 식사를 하고 극장에도 간다. 여인과 헤어진 후 한밤중에 돌아온 그는 침실에서 아내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용의자는 바로 남편인 헨더슨으로 좁혀지고, 그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우연히 만났던 여인과 자기가 만난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여인의 행방은 묘연하고 증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는데...

《밤은 젊고, 그도 젊었다.》라는 감미로운 문체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많은 추리소설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국내에 정식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베일에 가려진 작가의 모습과 그의 몇 안되는 우수에 가득찬 작품들은 그를 단지 그런 작가로만 보게 만들었다고 보아도 좋다. 예전에는 코넬 울리치의 여러 작품들이 어린이용이나 문고본으로 소개된 모양이지만, 현재 구할 수 있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 《환상의 여인》이나 《죽은 자와의 결혼》, 《상복의 랑데부》 정도일 것이다. 국내에 아직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만큼, 그의 전 작품에 대한 번역과 이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가의 단편집 《밤 그리고 두려움》은, 코넬 울리치라는 작가의 인생과 작품 경향, 짙은 문학적 향취, 서문의 충실한 해설을 통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서스펜스의 거장이자 느와르의 아버지인 그에 대한 궁금증과 목마름을 어느 정도 풀어주는 데 기여한다.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밤》의 어둡고도 차가워 보이는 애절한 이미지와 등장인물들의 긴장과 갈등관계가 절정에 다달음으로서 읽는이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해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성격이 그랬던 것처럼 작품들의 성격과 인물들은 다소 어둡고,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으며, 두려움과 긴장감을 마음에 품고 사는 인물들이다. 문체의 빠르기도 뒤로 갈수록 빨라지는 일종의 기악곡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거기에 작가 특유의 고독하고도 감미로운 문체가 어우러져 진정한 서스펜스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책의 뒤에 실린 편집자 프랜시스 네빈스의 서문도 좋았다. 작가의 일생과 죽음, 그의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설이 돋보인다. 해설에서도 작가의 일상적인 성격과 결혼의 실패, 동성애 기질과 병으로 인한 인생의 좌절과 고통을 여과없이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세계를 매료시킨 작가의 영고성쇠하는 쓸쓸한 인생과 삶의 고독, 실패와 좌절의 경험은 그의 작품 속에 반영되어 짙은 문학적 향기를 풍긴다. 어쩌면 그의 작품들속에 나오는 동분서주하며 공포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은 작가인 코넬 그 자체라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의 작품과 서문을 다 읽고 나면, 개인적으로 작가가 느꼈을 쓸쓸함과 고독, 외로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은 어쩌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였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의 기구한 인생살이 자체가 어쩌면 그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이루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단편집의 첫 작품인 《담배 Cigarette》는 작가의 장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서스펜스와 공포의 증폭이라는 내용을 가지고 작품을 전개시켜 나간다. 악인의 덫에 빠져버린 순진한 주인공, 그리고 밤에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긴장의 땀을 흘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독자또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해주는 단편이다.

《동시상영》은 형사와 범인이 긴장감 넘치는 대결을 벌이는 작품이다. 늘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 형사도 애인을 범인에게 놓아주고, 애인을 찾기 위해 범인과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울리치의 초기 액션 걸작 중의 하나.

《횡재》라는 작품도 스릴만점의 작품으로, 주인공은 작가에 의해 대도시의 공포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우연히 손에 넣은 보석과 범인, 경찰과의 치밀한 대결과 마지막의 다소 코믹한 결말은 독자로 하여금 최고조에 달했던 긴장을 웃음으로 풀어주는 작가의 장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목숨을 걸어라》에서는 또한 흥미로운 대결 상황이 제시된다. 사악한 한 인간과 성선설을 주장하는 또 다른 인간. 그 둘이 하는 내기는 《욥기》에 나오는 하나님과 사탄의 대결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한 사나이. 사람의 목숨을 지켜려는 다른 사람의 긴장과 흥분,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요시와라에서의 죽음》은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독특했다. 범인으로 몰린 여성을 구하기 위해 얼치기 해군 탐정 준비생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으로, 일본적인 배경과 사람의 애증을 느낄 수 있었던 다소 긴장감 넘치는 추리극이다.

《엔디코트의 딸》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이다. 모든 증거가 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딸을 끝까지 지키고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잡아넣으려는 경찰인 아버지의 사랑과, 아슬아슬 줄타기 같은 진실과 결말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윌리엄 브라운 형사》는 두 인간의 대조적인 인생살이를 보여준다. 얍삽빠르고 간사한 인간과, 성실하고 느긋한 인간형. 한 인간의 자신의 승진과 명예를 위해 온갖 사악한 짓을 마다하지 않지만, 끝내는 죽으면서 그 성격을 바꾸고 후회의 미소를 지음으로써, 독자의 입가에 쌉싸릅한 미소를 짓게 해주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그의 비극적인 삶은 뛰어난 작품의 이유가 됐다》라고 제임스 엘로이가 말했듯, 코넬 울리치의 삶은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동성애의 기질로 두 번의 결혼 모두 실패했고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고독하게 살았다. 작품을 쓰는 내내 불우했고 말년에는 각종 판권료 등으로 재산을 모았지만, 당뇨로 다리를 잘랐고 의족 사용법을 몰라 휠체어를 타야만했다. 허름한 호텔방에서 쓸쓸하게 생애를 마친, 그의 장례식 장에는 불과 너덧 명 정도가 쓸쓸히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밤’ 그리고 ‘두려움’은 책에 수록된 14편의 단편에서 공통으로 추출할 수 있는 정서이지만, 코넬 울리치의 삶 바로 그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곧 그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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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상 수상작품집 4
정태원 옮김 / 명지사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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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상 [Mystery Writers of America]
일명 미국 추리작가 협회상(MWA: Mystery Writers of America)이라고 한다. 이 상에는 장편상·신인상·실화상(實話賞) 등이 있다. 1954년부터 시작되어 소설은 물론이며, 평론·텔레비전·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에 걸쳐 시상한다. 작품 선정은 현역작가와 협회 회원들이 한다. 수상자에게는 에드거 앨런 포의 조상이 수여되고,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레이븐(Raven)패가 주어진다. 수상작들은 명성에 걸맞게 대부분 수작들이며, 많은 수상작품들이 국내에도 번역·소개되었다.

이 에드거상 단편 수상 작품집은 국내에서는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47년의 수상작 엘러리 퀸의 《미친 티 파티》에서부터 93년작인 로렌스 블록의 《켈러의 요법》에 이르기까지 에드가상을 수상한 단편들을 모았다. 한 권으로 모두 모아서 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약간은 아쉽다. 더 아쉬운 것은 각권의 가격이 총 15000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가격인 것. 수록된 작품은 그렇다치더라도 이런 별 볼일없는 책 디자인의 책에 그런 가격을 붙이다니, 출판사의 장난이 다소 심했다고 본다. 마지못해 사보게 되는 추리소설 독자들을 우려먹으려는 출판사의 속셈인 것 같지만.

1,2,3권의 작품들이 더 구미가 동했지만,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쉽게도 4권뿐이다. 개인적으로 그저 그런 작품들뿐이었지만,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둑들》이라는 작품은 상당히 재미있는 걸작이다.

《번개를 타라》라는 작품은 하드보일드와 적절한 추리적 구성이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그러나 범인의 설정은 너무 흔해빠진 것이여서, 나같은 에드가상 작품집을 처음 읽는 독자를 다소 아쉽게 하지 않았나 싶다.

《핀톤군의 비》라는 작품도 그저 그런 작품이었다. 인간의 심리와 비의 이미지가 어우러지는 것 외에는, 밋밋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소프트 몽키》라는 작품은 그럭저럭 볼 만한 작품이다. 자신의 소프트 몽키와 함께 안주하려는 흑인 여성과, 그녀를 괴롭힌 사악한 악당들. 그녀는 결국 안주할 공간을 찾게 된다.

《공포 영화》라는 작품의 결말은 그리 시원스러운 것이 아니다. 마치 더운 여름에 땀에 절어 등산을 한 뒤 집에 돌아와 절수가 되어 바로 샤워를 하지 못하는 그런 결말이다.

《도둑들》은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두 명의 은행 금고에 침입한 강도들의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데, 코믹한 구성과 적절한 결말의 처리가 괜찮은, 그나마 이 작품집 속에서 가장 산뜻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엘비스는 살아있다》나 《아홉 명의 아들》은 그냥 그런 작품들이었다. 왜 에드가상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작품들이기도 했다.

《메리, 메리, 문을 닫아라》라는 한 사립탐정의 끈질한 의지와 집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것도 그럭저럭 덜 우러난 곰국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마지막 작품은 《켈러의 요법》도 큰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1,2,3 권의 작품들을 보았으면 더 좋겠지만, 근처 서점에서는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가격도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너무 비싸다. 차라리 네 권을 묶어서 파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 같다. 출판사의 배려와, 이 책을 사기를 망설이게 만드는 형편없는 책의 디자인이 참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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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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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렉스에 사로잡힌 음울한 성격의 시골의사가 자신을 지배해온 아내를 살해하는데 성공한다. 한번 실행된 살의는 멈출 수 없고, 그는 세균배양을 통해 또다른 범죄를 계획하는데... 《클로이든 발 12시 30분》, 《백모살인사건》과 더불어 도서(倒敍)추리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소설.

* '도서 추리'란, 범인 쪽에서 주도면밀한 범죄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뒤, 완벽하게 여겨졌던 범행이 뜻밖의 헛점으로 인해 폭로되는 과정을 그리는 형식을 말한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범인이 누구이며 범행 방법은 무엇인가가 문제가 되지만, 이 형식에서는 그러한 점를 먼저 밝힌 뒤 그 과정에서 범죄자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여 독자에게 긴장감을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도서 추리소설 및 도서 추리 형식의 드라마류 팬이지만 이 작품은 알고도 보지 않은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백모 살인사건》과 《클로이든 발 12시 30분》이라는 작품과 더불어 세계 3대 도서추리소설인 지명도 높은 작품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백모 살인사건》의 코믹함과 《클로이든발》에서의 프렌치 경감과 범인의 대결대신에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특히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연상의 아내에 대한 증오심과 살의, 자신의 음울한 성격과 망상이 어우러져 끝내 주인공인 시골의사 테디는 아내를 죽이려고 마음먹는다. 아내를 혐오하는 마음에서부터 또 다른 여자를 만나 그녀와 사랑에 빠지면서 마침내 살의와 살인에 이르기까지의 인간 심리를 현미경 관찰 하듯 세밀히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수학이나 과학을 몹시 싫어하는지라 추리소설을 읽을 때도 홈즈의 날카로운 과학적 추리나 엘러리 퀸의 수학적 분석 추리보다는 포와로나 마플의 인간본성의 분석에 의한 추리나 증거가 처음에 나열되는 도서추리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복잡다단한 트릭 대신 인간 심리 변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특히 호감이 가는 것 같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살인자의 심리와 상상력은 여타의 마을 사람들이나 변호사, 경찰을 뛰어넘는 수준이지만 그는 자신의 범죄가 발각될까봐 악몽을 꾼 뒤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죽은 아내를 괜히 죽였다고 후회를 하기도 하는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얼마나 사람의 마음과 심리가 변화무쌍하며 변덕스러운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다. 열등감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치밀한 살인을 계획하는 이 시골의사는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얻은 기쁨과 환상에 들떠 아내를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그 살인은 덧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꿈꿔왔던 미래는 순간적인 인간의 마음의 변화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나아가게 된다. 게다가 그 여파로 범인은 또 다른 살인계획을 꾸미게 되고 완전범죄에 거의 성공하지만 어이없는 결과로 인해 끝내 범행을 망치고 최후를 맞게 되는, 인간의 내부에 숨겨진 본성을 철저히 비춰주는 작품이었다. 작품 구성과 전개에 있어서도 평범한 시골 상류 사회의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구성된 전개를 보여주며, 결말에서 일희일우하는 범인의 긴장되는 심리와 법정의 모습, 맨 마지막 한 줄로 끝내주는 반전이 어느정도 볼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세 명의 여자들(아내, 정부, 또 다른 애인)로 인해 파멸하는 남자의 모습과,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외양과 불꽃같은 사랑 뒤에 감춰진 잔인한 본성과 연약함, 정신분열 등 인간 심리의 전시장에 가 본 것 같은 흥미진진한 경험이기도 한 작품이었다.
심리묘사소설로서도 탁월한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원제는 법률용어로 malice aforethought (계획적 범행 의사[살의(殺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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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의 카드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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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의 카드 (Cards on the Table)는 크리스티의 26번째 작품이자 20번째 장편소설이다. 먼저 이 작품의 특징으로는 카드 속에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제시된다는 점이다. 카드를 아시는 분이라면 흥미진진하게 보실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모르는 분들일지라도 대략 술술 넘어가도 작품을 읽는데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카드놀이에 적힌 점수나 규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카드게임을 통한 심리분석을 통한 추리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독해(?)에는 별 무리가 없다.

이 작품의 피해자인 악마 메피스토처럼 미소짓는 셰이터나 씨. 그는 완전 범죄를 즐기는 인물이다. 그의 화려한 외양은 크리스티가 만든 캐릭터 중의 하나인 할리 퀸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에 더하여 그의 교활함과 사악함은 두드러지게 범인의 추리에 영향을 끼친다. 이 작품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언제나 이산가족처럼 단 한번도 동반 출연(?)한적이 없었던 네 사람이 힘을 합쳐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는 점이다. 명탐정 포와로가 주축이 되어 크리스티 여사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여류추리소설가 올리버 부인, <나일강의 죽음>에서도 포와로와 활약하는 레이스 대령, 그리고 <0시를 향하여>등과 같은 작품에서 활약한 배틀 총경이 동반 출연하여 작품을 전개시켜 나간다. 즉 이 작품에서는 명탐정+일류 경찰+추리소설가+정보부 대령의 화려한 조합이 어우려져 네 명의 범인들 중 진범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볼만한 작품이다. 네 명 중에서 가장 볼만했던 사람은 단연 크리스티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올리버 부인. <명탐정 코난>에서의 모리 코고로 탐정과 비슷하게 직감에 의한 추리를 중시하고 또 억측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녀의 추리는 뒤로 갈수록 작품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사과를 엄청나게 즐기고 수다쟁이에 여행을 좋아하는 풍만한 체형의 아주머니인 올리버 부인은 크리스티의 성격을 적절하게 반영한 캐릭터일수도 있고,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있던 자신의 성격에 대한 반발로 창조된 캐릭터일수도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후자일 것 같은데.

네 명의 탐정 콤비에 더하여, 셰이터나는 네 명의 완전 범죄자들을 파티에 초청하여 그것을 즐기게 된다. 나이 지긋한 부인, 의사, 소심한 처녀, 화끈한 성격의 대령이 자신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카드 놀이를 진행시켜 나가는 도중에 셰이타나는 푹신한 의자에서 잠든 듯이 칼에 찔려 살해당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에서 범인은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피해자는 그저 칼에 찔렸을 뿐이다. 그러므로 귀납적 추리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용의자 네 사람에게 모두 동기가 있고, 숨겨진 과거가 있을 것 같다. 귀납적 추리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포와로와 세친구(?)는 열심히 카드놀이의 브리지 점수 쪽지와 증언등을 종합하여 범인과 피해자의 성격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비록 작가 개인의 주관이라는 점이 안타깝고 또 인정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들이야말로 70년전의 프로파일러가 아닌가. 특히 배틀 총경의 추리 방식과는 다르게 포와로는 용의자들을 모두 만나고 다니면서 그들의 과거와 심리 파악에 주력한다. 하지만 귀납적 증거가 하나도 없어서였을까. 결말에서 천하의 포와로 탐정도 두어 번의 삽질(?)을 거듭하고 진범을 잡아낸다. 어쩐지 이 모습은 콜린 덱스터의 모스 경감과 많이 닮은 것 같았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탐정 개인의 심리 추리에만 주목한 나머지, 물적 증거를 쫓는 재미는 거의 없고 오로지 심리학에 의한 분석과 주관의 개입만이 중요시 될뿐이다. 결국 마지막에 나타나는 범인도 반전은 거의 없고 그냥 그렇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역시 크리스티답게 그녀의 문체와 캐릭터는 독자를 매혹시키는 힘이 있으며 특히 이 작품은 한 사람이 죽고 탐정과 그 친구들이 하나하나 차근차근 인간 심리에 주력하여 숨은 과거를 파헤쳐가는 단순한 구성 속에서 느끼는 작가 특유의 편안함과 안정적인 작품 구성이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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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2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작품은 약간 실망했던 작품입니다.

포와로 2006-08-2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무지 밋밋한 작품이었습니다. ㅡㅡ;;
 
팔묘촌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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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고로 주연의 드라마 팔묘촌 中. 2004년작.)

 



 

 

 

 

 

 



 

 

 

 

 

 

(77년 영화로 제작된 팔묘촌. http://dvdtopic.cine21.com/Articles/article_view.php?mm=007002002&article_id=31410)

 

전국시대, 8명의 패주무사들이 황금을 가득 싣고 한 마을로 몸을 숨긴다. 황금에 눈이 멀어 그들을 몰살한 마을 사람들은 연이어 괴이한 사건이 발생하자, 무사들의 시체를 극진히 매장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신다. 마을은 이후 '팔묘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세월이 지난 다이쇼 시대, 팔묘촌의 동쪽집이라고 불리는 세가 다지미 가문의 주인 요조가 미쳐서 마을사람 32명을 참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26년, 다지미 집안의 후사로 판명된 '나'는 팔묘촌으로 돌아오고,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팔묘촌>은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네 번째 장편이다. 장.단편 포함, 80여 편을 훌쩍 넘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인기만으로는 1, 2위를 다루는 작품으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가장 많이 영상으로 옮겨졌다. 1951년, 1977년, 1996년 영화화됐으며 1969년, 1971년, 1978년, 1991년, 1995년, 2004년 드라마로 제작돼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작품.

<팔묘촌>이라는 작품은 작년에 이나가키 고로 주연의 드라마로 본 적이 있다. 음습하고 끈적끈적한 분위기의 팔묘촌과 저주를 받은 듯한 끔찍한 연속 살인들. 반 다인의 <그린 살인 사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리고 뒤에 가려진 무시무시한 동기며 진실들.. 원작소설을 정말로 읽고 싶었는데, 마침내 올해는 소원성취를 했다. 드라마에서는 느끼지 못한 원작의 풍부함과, 드라마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등장인물이며 압축되지 않은 서스펜스며 어릴적 읽었던 <보물섬>이라는 소설과 같은 보물찾기의 흥미,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가는 재미 등, 팔묘촌이라는 소설은 추리소설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이 들어있는 알이 꽉찬 제철 꽃게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본 추리 소설의 역대 1위를 차지하는 작품인 같은 작가의 <옥문도>라는 작품과 더불어 혼징살인사건, 이누가미가의 일족, 악마의 공놀이 노래같은 걸작들과 놓고 볼때 항상 1, 2위를 다투는 작품이며,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최고 인기작이다. 일본인이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나카마 유키에, 아베 히로시 주연의 인기 드라마 <트릭>에서는 팔묘촌의 패러디로 심지어 <육묘촌>이라는 마을이 등장한다. 인터넷에서 77년 영화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는데, 추리의 요소도 그렇지만 호러틱한 이미지가 강조됨을 알 수 있다. 본격 미스터리에 일본 특유의 공포 이미지를 더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풍이 대개 그러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특히 그러한 장면이며 심리 묘사가 더욱 풍부하다. 참혹하게 살해당하면서 마을에 저주를 내리는 무사들이며 그 저주가 현대까지 이어져 끔찍한 살인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며 전율하는 주인공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초현실적인 두려움.  실제사건(1938년 일본 오카야마 현 도마타 군에서 일어난 ‘츠야마 30인 살해사건’)을 모티브로 한 주인공 '나'의 아버지가 저지르는 참혹한 살인들.(영상의 이미지는 참으로 강렬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기괴한 쌍둥이 할머니들을 비롯한 애증에 몸을 떠는 인물들과 일본식 저택 특유의 구조를 이용한 비밀통로 - 그리고 보물찾기. 참으로 무시무시하고도 호화스러운 구성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이한 점으로는 탐정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1인칭 주인공인 '나' 타츠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내가 알게되는 기막힌 출생의 신비 - 내가 팔묘촌의 다지미 가의 후사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때부터 끔찍한 연쇄살인의 심연으로 빠져버린다.

추리소설로써 팔묘촌은 참으로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마을의 저주를 장식으로 하여 끔찍한 연속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 의미없는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살인 동기의 연막탄으로 삼는 교활함과 사건수사를 교란시키는 능수능란함을 자랑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조화시키면 참으로 무시무시해서 진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범행이며, 배경이다. 섬세한 분위기 속의 기괴한 살인과 결말의 명쾌한 긴다이치 코스케의 사건 해결.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긴다이치는 작품 속에서 얼굴을 내비치는 거의 단역의 수준이라고 봐도 좋다. 드라마에서는 안 그랬는데... 오히려 주인공인 나와 그의 사랑 노리코가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거의 해결해 버린다. 지나가는 탐정인 듯한 코스케는 이미 전말을 알고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그렇게 말하다니, 작가 선생이며 이 명탐정이 이 작품에서는 무진장 얄미웠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작품의 전개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크리스티의 걸작인 <끝없는 밤>이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등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희생자의 수에 있어서는 <그린 살인 사건>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그 기괴한 이미지며 전설과 살인 그리고 동기의 혼합 등에 있어서는 백점 만점을 주고도 넘치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추리소설로서만 즐기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수수께끼 풀이의 즐거움 - 보물지도, 비밀 통로, 훔쳐보기, 보물이 숨겨진 동굴 모험-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섬세한 심리 표현과 감정의 변화, 그리고 순수하고 발랄한 나의 사촌동생 '노리코'와의 사랑과 로맨스는 작품을 읽는 또다른 달콤함을 가져다 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작품들로는 에도가와 란포의 <외딴 섬 악마>, 그리고 모리스 르블랑의 <기암성>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오히려 사족같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할아버지에 이어 계속해서, 학교도 재끼고 나이도 먹지 않고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긴다이치 하지메의 사건부 중에서는 팔묘촌과 흡사한 분위기의 작품이 있다. 바로 <쿠치나시촌 살인사건>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 또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폭발적인 요코미조 세이시 붐을 일으킨 76년 영화 <이누가미가의 일족>의 이미지들. 마지막 할아버지의 사진은 영화에 여관 주인으로 나온 요코미조 세이시 자신이다. 2007년 30년만에 리메이크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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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8-1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엊그제 이책 하도 재미있게 읽어서 리뷰나 쓸까 했는데, 포와로님의 엄청난(?) 리뷰를 보니 쓸 엄두가 안나네요. 잘 읽고갑니다. ^^

포와로 2006-08-1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찬이십니다. ^^;; 야클님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