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 하는 법 - 성교육 전문가 엄마가 들려주는 43가지 아들 교육법
손경이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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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손경이 강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첫 성관계를 하기 전에 무엇을 생각할까요' 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남학생들은 신나서 마음을 가다듬고 양치를 하고, 향수, 콘돔 등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근데 같은 반의 다른 여학생이 일어나서 여학생이 준비할 것에 대해 남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카메라가 있을지 없을지, 상대방이 나를 걸레라고 소문낼지 아닐지 등 관계를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같은 관계를 가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걱정하는 것에 대해 차원이 달랐다. 무엇이 이렇게 불평등하고 불안한 사회를 만든 것일까.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성에 대한 고찰은 간단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에 대한 이슈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사회이며, 무지한 지식으로 인해 오해를 하고 도를 넘고 폭력이 이루어진다. 그만큼 성에 대한 교육은 어린 시절에 핵심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럴 때마다 유교 문화는 항상 비판 받지만,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문화와 인식을 어서 개선 시켜나가야 한다. 그 시점에서 이 책은 기존의 성이 더 이상 꽁꽁 싸매기만 해서는 왜곡과 오해로 점철될 것을 우려하며 적극적이면서 솔직한 교육을 지향하고자 한다. 그 중심에는 자기 결정권이 기초가 되는데 결국 자신의 선택과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나'로의 교육을 우선시한다. 그리고 교육자의 위치에 있는 부모도 한 아이를 동등하게 인격적으로 존중함으로써 자유롭고 솔직한 의사 표현 안에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하게 한다. 성에 대한 태도는 단순히 성에 관한 입장만을 표명하지 않는다. 그것을 파악함으로써 내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지, 얼마나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같은 삶에 대한 자세로 나아간다. 기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쓰여있었지만 누구들에게는 기본이 아닐 수 있다. 많이 필독 된다면 좋겠다.


(책에 대한 비판이 아닌 비난 글을 보고 상당히 암담해서 덧붙인다. 문장 하나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야 있겠지만 그것이 책과 작가 전체를 비난할 수 있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뭘 비판했는지 보려했는데 그냥 밑도 끝도 없는 비난뿐... 그토록 다른 사람들에게 성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싶은 건가... )

제가 여러 번 강조하는데, 이 점을 꼭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성교육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 지식을 알려 주는 교육 이상이라는 점이에요. 어떤 태도, 어떤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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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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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제는 누구나 쉽게 컨텐츠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제작자의 생각은 그 컨텐츠에 그대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을 소비하는 자로 하여금 제작자의 생각을 반영케 한다. 그렇기 때문에 컨텐츠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게 해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의 컨텐츠는 다르다. 일시적인 자극을 위해 혐오와 차별이 기반이 되어 개인에게 타락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회적으로 이런 형태의 재미가 지속된다면 소비자들은 그 차별적인 시선에 프레임을 생성하게 되고 나와는 다른 누군가를 존중하는 게 아니라 경시하게 된다. 그것은 무의식에도 작용을 하게 된다. 누군가를 평등하게 바라보지 않고 약자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평등한 관계에 우와 열을 나누게 만드는 논리들은 힘, 재력, 인종, 성별 등 우리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지는 부분에 대해서 작용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컨텐츠들이 즐비한 환경에서 자연스레 우월한 위치로 묘사되는 부분에 대해 칭송한다. 어떤 가치에 대해서 우월함을 상정해 놓는다면 자연스레 열성적인 형태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사회는 외모의 미와 추에 대해 너무나 분명한 경계를 구분 지어 놓았으며 그 부분들을 희화화하며 웃음으로 소비한다. 비슷한 예로 지성에 대한 가치도 그렇다. 지금까지는 그런 방식으로 누군가가 고통 받고 프레임을 형성한다는 것을 묵과한 채 웃음으로 승화시켰겠으나 더는 두고볼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고통 받는 사람들의 환경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잘못된 방식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고 지적해주어야 옳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다름의 특성으로 인해 일반화되고 매도 당해서는 끊임없이 피해자만을 양산할 뿐이다. 이 책에서 인용되어진 영화들은 대부분 차별 당하는 입장에서의 인권을 지켜내기 위해 제작되었다. 영화는 책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경험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컨텐츠이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나 혹은 내 주변인이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나부터 다른 이들을 존중하도록 하자. 

이런 공격에 대해 하비 밀크는 웃으면서 여유있게 반문합니다. "그런데 동성애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프랑스어를 가르치듯 그냥 가르치면 되는 겁니까?" 밀크는 이에 덧붙여 자신은 지독한 이성애자 사회 속에서 이성애자 부모로부터 태어나 이성애자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왜 이성애자가 되지 못했느냐고 질문합니다. 자신이야말로 성적 지향이 교육으로 만들어지거나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산 증거란 이야기입니다. - P65

공주는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정상이고,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굳이 환상 장면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사족이 돼버린 환상 장면들은 그저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이라면 이런 꿈을 꾸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철저하게 남성적인 시선, 철저하게 비장애인의 입장으로 만든 장애인 영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 P150

좋은 다큐멘터리들이 아무리 쏟아져도 그걸 찾아서 보는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거기다가 그 다큐멘터리를 보려면 인터넷을 검색해서 날짜를 기다리고 구석진 상영관을 찾아가는 수고를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수고가 필요하다보니, 어렵게 영화를 보러 가면 모두 ‘같은 편‘만 모여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아도 어차피 같은 목소리를 낼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영화를 보게 되는 구조지요.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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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화사 외 42인 지음, 한국여성민우회 엮음 / 궁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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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의 위치에 서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발을 항상 밟고 있는 상태로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어떤 책에서 읽었다. 나의 편의는 반드시 누군가의 불편 속에서 세워진 것이다.


사회의 약자 위치에서 차별 받고 감내해왔던 사례에 대한 짤막한 글들의 사례집. 82년생 김지영처럼 남성의 입장에서 경험해볼 수 없는 시선들에 대해 약간의 성찰과 수오지심이 맴돌았다. 책에선 부당한 현실에 맞서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다. 그들을 지지하는 나는 매우 부끄럽게도 먼 발치 떨어져 안전한 공간 속에서 조용히 공감을 표한다. 실로 찌질하고 비겁하다. 세상은 아직도 부당한 것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서 나도 그들처럼 불편함에 목소리를 실을 수 있도록,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겠다. 

여성주의 계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어 기억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존재로서의 한 여성을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여성을 ‘누구와 함께‘ 기억할 것인가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기억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여럿일 때,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그 기억과 현재의 자신을 연관시킬 때, 그것은 계보가 된다. - P61

나이를 떠나 여자들은 비밀의 의미를 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떨림을 기억할 줄 안다. 엄마에게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이르다. 어떤 영화 장면처럼 옥상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문 엄마의 비밀을 듣고 싶다는 판타지도 있다. 거짓말 권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누군가와 연대하기. 이토록 어렵고 서글픈 숙제다. - P74

잡힐까봐 땀을 삐질거리며 숨어 있던 그 ‘소심한‘ 남자도 여성인 내 앞에서는 페니스를 내밀고 ‘힘‘을 발휘하며 ‘만족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아닌가. 그가 연출한 상황에서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기력하고 성적인 존재로 대상화되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여성으로서의 내가 우습게 여겨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수치심‘, ‘굴욕감‘, ‘분노‘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 P98

다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진심으로 알고자 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을 도울 수도 있고 적어도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내 안의 수많은 모순 덩어리, 나도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을 인정해가는 과정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 P169

한 여성 요리사가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자가 서양 요리를 하면 셰프이고 여자가 한식 요리를 하면 그냥 아줌마다." 현실의 요리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다른 이름과 지위, 역할로 배치되어 있으며, 남자 스타 셰프를 주인공으로 한 쿡방의 탄생은 어쩌면 이 젠더화된 요리 세계에서 예견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P174

소통은 가능하다는 희망, 그리고 소통으로 내가 한 뼘 더 성장하고 풍성해질 수 있다는 믿음. 뻔한 듯 하지만 곧잘 잊어버리는 이야기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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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혐오예요 - 상처를 덜 주고받기 위해 해야 하는 말
홍재희 / 행성B(행성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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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목소리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을 내 존재와 격리시켜 구분 지어 바라보려 하지 않았을까. 6명의 독립 영화감독들이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해 사회에 만연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생명의 존엄이 존중 받는 그 순간 까지. 표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개인의 의식에 민주 의식이 깃들 때 까지. 불편함의 토로는 지속될 것이다. 목소리가 있기에 진보가 있기 때문. 응원하자. 누군가의 욕심에 목소리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물리적 폭력을 행사했느냐 안 했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폭력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부재한 당신이, 무신경한 당신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여성 혐오라는 폭력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보여 주는 공감은 공감이 아니다. 당신이 보여주는 연대는 연대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은 관계없다는 궁색한 변명이자 나 몰라라 하는 비겁함일 뿐이다. - P33

창녀가 된다는 건 남자와 이 사회의 비난을 받는 여자, 혐오의 대상인 성에 난잡한 여자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성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한 거죠. 여성 내부에서도 여성 규범에 들어 맞지 않는 여성을 혐오하는 거지요. 기존 가족 구조 내에 포함할 수 없는 여자들, 성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여자들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거죠. - P38

무엇보다 한국같이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녀 모두 섹슈얼리티 문제에서 절대 자유롭지 않아요. ... 실제 개개인의 성경험을 보면, 주변에 평범한 여자들 섹스를 둘러보면 여전히 보수적인걸요. 성이 보수화되는 건 사회가 보수화된다는 거죠. 이거 하나만 봐도 변한 게 별로 없어요. 정작 현실은 이런데 입으로만 섹슈얼리티를 떠들고 있으니 황당하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섹슈얼리티잖아요. - P43

그러므로 여성들은 내면에 욕망이 있더라도 드러내면 안 된다.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혐오의 대상인 ‘그녀‘와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 여성이 여성을 혐오하는 이유는 ‘그녀‘가 싫어서도 자신과 달라서도 아니다. 단지 처벌과 모욕이, 배제와 낙인이 두려워서일 뿐이다. - P44

결국 나와 다른 환경과 조건에 처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특히 그가 겪은 경험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 위치를 내 관점으로 내려놓는 것, 내 존재를 버리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렇게 본다면 공감 없는 이해는 이해가 아니라 오해이자 편견 아니면 위선인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가 이주민을 바라본 감정은 공감이 아니라 연민이었던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을 그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고 그들을 불쌍하거나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던 것은 아닐까. - P98

단일민족이란 말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현숙의 지적처럼 ‘단일민족‘이란 말은 굳게 믿고 싶은 상상계, 즉 ‘신화‘다. 실제로 ‘한민족‘이란 관념은 일제 치하에서 일제와 차별되는 단일한 민족 동일성을 구축할 필요가 있어 생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부산물이다. 그런데도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에 젖어 있는 한국인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순혈‘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혼혈‘ 또는 외국인을 차별한다. - P103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 쓴맛이 사는 맛 / 채현국 - P165

개나 고양이, 소나 돼지 등 모든 동물에게는 인간처럼 감정이 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할뿐더러 그 동물들을 차별적으로 대한다. 반려동물은 내 가족 또는 친구이지만, 축산 동물은 그저 맛있는 고깃덩어리고, 야생동물은 동물원이나 TV에서나 만나는 미지의 세계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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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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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더 이상 무로부터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는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바꾸고, 다른 관점에서 보며 조합한 메타모포시스들의 향연이 현 시대의 창조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경력을 이용하여 흥미로운 이론들과 함께 편집되어진 창조들을 설명한다. 아재스러운 에로틱한 농담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이 보호해주는 영역 아래에서 활용되어짐으로써 걱정이 되는 마음 한 켠을 차치한 채 적당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밝힌 특유의 편집 방식으로 창조된 이 인문학 텍스트들은 초반에는 흥미롭게 읽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일상적 관찰에 가까운 에세이 같은 인상을 느끼게 한다.


4차 산업혁명과 동시에 각 개인의 창조성이 대두되는 시기이다. 그 속에서 컨텐츠는 구분될 수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고 하나의 문화로써 소비된다. 이제는 자신만의 창조 방식이 중요하다. 인문학적 사유와 편집 능력을 통해 각자의 콘텐츠를 만들어 인간으로서의 삶을 추구한다. 이 책은 그런 만인의 예술가화(artistify)의 방식을 안내하는 지침서가 되어준다. 



p 70
자기 텍스트를 써야 제대로 학문을 하는 거다. 오늘날 인문학 위기를 말하는 이유는 한국의 콘텍스트에 맞는 텍스트 구성의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의 텍스트로 서양의 학문을 하니 도무지 상대가 안된다. ... 그러나 정작 하버마스는 뜬금없는 이야기만 하다 갔다. 그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한국에도 위대한 정신, 문화적 전통이 있다. 그 콘텍스트에 근거한 이론이 구성되어야 한다."

p 75
다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의 순서로 외운다. 그러나 ‘천지현황‘의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창조적 독해는 각각의 단어가 ‘선택‘되는 그 기호학적 구조를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단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고 할 때, 왜 하늘을 검다고 하는가에 관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p 143
원근법의 발견은 객관성의 발견이 아니다. ‘주체‘의 발견이다. 인식하는 주체, 즉 ‘주관성‘의 발견이라는 뜻이다. 객관성과 합리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원근법이 동시에 주체의 발견을 포함한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다. 서로 모순관계인 객관성과 주관성이 함께 구현되었다는 이야기다.

p 144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의 발견으로 비롯된 주체와 객체의 인식론적 통찰이 의사소통의 문제로 연결되는 이유는 ‘객관성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객관적 관점이란 각기 다른 인식의 주체들이 ‘같은 방식으로 보기‘로 서로 약속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객관성이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합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인문학에서는 객관성이란 단어를 ‘상호주관성‘으로 대체한다.

p 235
합리적인 문명사회는 각 개인이 예절 바른 교양인이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서구 근대에서 아동 개념의 탄생은 이러한 교양 교육의 맥락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엘리아스의 주장이다. 그저 ‘작은 어른‘일 따름이었던 아이들이 별도의 교육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원시적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합리적 성인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합리적인 성인으로 발달하는 과정에 있는 존재를 ‘아동‘이라고 부른 것이다.

p 251
‘계몽‘이다. 게이츠는 청중 스스로 연설의 의미를 편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일방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재미없는 거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내러티브는 진리를 강요할 뿐, 일리의 해석학이 빠져 있다. 반면 잡스의 내러티브는 상호작용적이다. 편집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p 293
기억 왜곡은 추상적, 개념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기억편집‘의 또 다른 측면이다. 기억 왜곡이 있기 대문에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기억편집을 통해 인간은 사물을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선택적 기억‘을 통한 추상화와 개념화야말로 인간 문화의 본질이다.

p 336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을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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