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화사 외 42인 지음, 한국여성민우회 엮음 / 궁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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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의 위치에 서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발을 항상 밟고 있는 상태로 서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어떤 책에서 읽었다. 나의 편의는 반드시 누군가의 불편 속에서 세워진 것이다.


사회의 약자 위치에서 차별 받고 감내해왔던 사례에 대한 짤막한 글들의 사례집. 82년생 김지영처럼 남성의 입장에서 경험해볼 수 없는 시선들에 대해 약간의 성찰과 수오지심이 맴돌았다. 책에선 부당한 현실에 맞서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다. 그들을 지지하는 나는 매우 부끄럽게도 먼 발치 떨어져 안전한 공간 속에서 조용히 공감을 표한다. 실로 찌질하고 비겁하다. 세상은 아직도 부당한 것이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서 나도 그들처럼 불편함에 목소리를 실을 수 있도록, 당연한 것에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겠다. 

여성주의 계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어 기억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존재로서의 한 여성을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여성을 ‘누구와 함께‘ 기억할 것인가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기억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여럿일 때,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그 기억과 현재의 자신을 연관시킬 때, 그것은 계보가 된다. - P61

나이를 떠나 여자들은 비밀의 의미를 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떨림을 기억할 줄 안다. 엄마에게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이르다. 어떤 영화 장면처럼 옥상에서 쪼그려 앉아 담배를 문 엄마의 비밀을 듣고 싶다는 판타지도 있다. 거짓말 권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누군가와 연대하기. 이토록 어렵고 서글픈 숙제다. - P74

잡힐까봐 땀을 삐질거리며 숨어 있던 그 ‘소심한‘ 남자도 여성인 내 앞에서는 페니스를 내밀고 ‘힘‘을 발휘하며 ‘만족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아닌가. 그가 연출한 상황에서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기력하고 성적인 존재로 대상화되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여성으로서의 내가 우습게 여겨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수치심‘, ‘굴욕감‘, ‘분노‘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 P98

다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진심으로 알고자 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을 도울 수도 있고 적어도 ‘그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내 안의 수많은 모순 덩어리, 나도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을 인정해가는 과정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 P169

한 여성 요리사가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자가 서양 요리를 하면 셰프이고 여자가 한식 요리를 하면 그냥 아줌마다." 현실의 요리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다른 이름과 지위, 역할로 배치되어 있으며, 남자 스타 셰프를 주인공으로 한 쿡방의 탄생은 어쩌면 이 젠더화된 요리 세계에서 예견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P174

소통은 가능하다는 희망, 그리고 소통으로 내가 한 뼘 더 성장하고 풍성해질 수 있다는 믿음. 뻔한 듯 하지만 곧잘 잊어버리는 이야기이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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