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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이 시대에 더 이상 무로부터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는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바꾸고, 다른 관점에서 보며 조합한 메타모포시스들의 향연이 현 시대의 창조이다. 저자는 독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경력을 이용하여 흥미로운 이론들과 함께 편집되어진 창조들을 설명한다. 아재스러운 에로틱한 농담들이 프로이트의 이론이 보호해주는 영역 아래에서 활용되어짐으로써 걱정이 되는 마음 한 켠을 차치한 채 적당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밝힌 특유의 편집 방식으로 창조된 이 인문학 텍스트들은 초반에는 흥미롭게 읽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일상적 관찰에 가까운 에세이 같은 인상을 느끼게 한다.
4차 산업혁명과 동시에 각 개인의 창조성이 대두되는 시기이다. 그 속에서 컨텐츠는 구분될 수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고 하나의 문화로써 소비된다. 이제는 자신만의 창조 방식이 중요하다. 인문학적 사유와 편집 능력을 통해 각자의 콘텐츠를 만들어 인간으로서의 삶을 추구한다. 이 책은 그런 만인의 예술가화(artistify)의 방식을 안내하는 지침서가 되어준다.
p 70 자기 텍스트를 써야 제대로 학문을 하는 거다. 오늘날 인문학 위기를 말하는 이유는 한국의 콘텍스트에 맞는 텍스트 구성의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의 텍스트로 서양의 학문을 하니 도무지 상대가 안된다. ... 그러나 정작 하버마스는 뜬금없는 이야기만 하다 갔다. 그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한국에도 위대한 정신, 문화적 전통이 있다. 그 콘텍스트에 근거한 이론이 구성되어야 한다."
p 75 다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의 순서로 외운다. 그러나 ‘천지현황‘의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창조적 독해는 각각의 단어가 ‘선택‘되는 그 기호학적 구조를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단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고 할 때, 왜 하늘을 검다고 하는가에 관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p 143 원근법의 발견은 객관성의 발견이 아니다. ‘주체‘의 발견이다. 인식하는 주체, 즉 ‘주관성‘의 발견이라는 뜻이다. 객관성과 합리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원근법이 동시에 주체의 발견을 포함한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다. 서로 모순관계인 객관성과 주관성이 함께 구현되었다는 이야기다.
p 144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의 발견으로 비롯된 주체와 객체의 인식론적 통찰이 의사소통의 문제로 연결되는 이유는 ‘객관성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객관적 관점이란 각기 다른 인식의 주체들이 ‘같은 방식으로 보기‘로 서로 약속해야 가능하다. 다시 말해 객관성이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합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인문학에서는 객관성이란 단어를 ‘상호주관성‘으로 대체한다.
p 235 합리적인 문명사회는 각 개인이 예절 바른 교양인이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서구 근대에서 아동 개념의 탄생은 이러한 교양 교육의 맥락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엘리아스의 주장이다. 그저 ‘작은 어른‘일 따름이었던 아이들이 별도의 교육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원시적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합리적 성인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합리적인 성인으로 발달하는 과정에 있는 존재를 ‘아동‘이라고 부른 것이다.
p 251 ‘계몽‘이다. 게이츠는 청중 스스로 연설의 의미를 편집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일방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재미없는 거다.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내러티브는 진리를 강요할 뿐, 일리의 해석학이 빠져 있다. 반면 잡스의 내러티브는 상호작용적이다. 편집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p 293 기억 왜곡은 추상적, 개념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기억편집‘의 또 다른 측면이다. 기억 왜곡이 있기 대문에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기억편집을 통해 인간은 사물을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선택적 기억‘을 통한 추상화와 개념화야말로 인간 문화의 본질이다.
p 336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을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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