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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ㅣ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기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됨에 따라 시장은 자유로운 거래의 장이 되었다. 사상을 억압하기 위한 언론의 통제 또한 해소되어 우리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주어졌다. 스튜어트 밀은 과거의 그런 막강한 전제주의 권력 속에 무참히 말살되어가는 개별성을 지켜내기 위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에 대해 고찰을 했다. 그리고 밀은 자유론을 통해 핵심적인 주장을 선언한다. 자유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각 개인은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기본 원칙을 토대로 우리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히는 것들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기만하는 행위들에 대해서도 심화적인 고찰을 이어간다.
그러나 요즈음 표현의 자유는 무의식을 기반으로 한 사소한 피해는커녕 외려 상대의 존엄을 훼손하기 위한 직접적인 모독과 비난에까지 이르기 시작했다. 그 앞에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혼란 속에서 저마다의 고민을 빚어내게 되었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들은 무척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의 양식들을 받아들이고 사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표현의 극단에 위치한 단어들 또한 너무나도 손쉽게 우리들의 일상에서 유통되어진다. 이성의 발달이 성숙하게 진행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표현들은 반항심을 자극하는 양분이 되어주며 그들을 사회의 괴물로 만들어 놓는다. 그들의 입에 탄생된 언어들은 단순한 쾌락만을 위해 오고가며 그런 반성 없이 존재하는 혐오 앞에 사회는 비판이 아닌 비난만이 가득 차게 되었다. 비난으로 가득한 문화는 우리들에게서 관용을 앗아가 버렸으며 모두가 비난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마저 꺼리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생겨난 혐오들은 혐오 문화란 굴레 속에서 직접적인 폭력이 없어도 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도록 차별적인 편견을 만들어내어 문화를 더욱 고착화 시켰다. 덕분에 그런 표현들은 우리 일상에 무의식적인 위치에 잔존해 있으며 우리가 지켜야 하는 표현의 정도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들을 불러왔다. 시대적인 환경과 문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표현에 대해 유의해야 하는 사항들이 많아졌다. 자유론은 그런 사회에서 우리의 인식이 성숙해지기를 원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떠나 그것으로부터 초래하는 해악을 억제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이고 문화의 성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표현에 대한 연령에 따른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성이 발달되기 전에 사회 환경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의 경우 그것이 초래할 해악을 가늠하지 못한 채 그 행동이 하나의 인격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해악은 점차 당연한 것처럼 사회 일부분의 문화가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지금도 콘텐츠마다의 연령 제한이 존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연령 제한의 의의는 어느덧 그 본질을 잃어버린 채, 사회에 있는 어린 어른들에 의해서 모방되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교육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청소년들이 접하게 될 폭력적인 콘텐츠를 규제해야 할 것이다. 이성 없이 접하게 된 폭력과 혐오의 재생산을 줄곧 접해왔기 때문에.
일찌감치 작금의 현상을 내다보았던 밀은 우리의 지성을 단련시키기 위해 자신의 믿음에 대한 논거를 끊임없이 덧붙이고 학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뒤, 나은 의견으로 합치시켜 도출한다. 비난은 결코 진리를 도출해내지 못한다. 사회에 오고가는 날카로운 비난에 의해 잘못된 의견마저 존중이 되지 않고 토론의 의지를 꺼버리게 만드는 경우가 지속된다면 그 어떠한 주장도 자유로운 날개를 펴기도 전에 접어버리고 말 것이다. 생각이 틀리거나 다르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확신에 차서 비난할 이유는 없다. 독선에 빠진 고립된 사상이 아닌 이상,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그것을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인도해 나가는 것이지. 시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 사회에 오고가는 일방적인 비난은 다양성을 말소하는 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우리가 정말 진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서로의 의견이 어떠하건 존중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주장함으로써 더 나은 의견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생각은 절대로 금해질 수 없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다. 우리가 정말 모든 생각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되었을 때, 더불어 이루어질 합리적인 비판만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구성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즈음에서 우리는 반성 없이 반복하게 되는 악의 자유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해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밀의 자유론이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남아 불후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개인의 자유를 지켜 나감으로써 사회의 이익을 최대한 증진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이익은 경제적인 수익의 개념을 넘어 각 구성원들의 존엄과 만족도의 향상을 나타낸다. 당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개인과 사회는 대립적인 위치에서 논쟁이 되었다고 하지만 밀은 그 두 가지 가치를 분리해내었다.
헉슬리는 수많은 불필요한 정보들로 인해 우리가 진실된 정보에 도달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다. 거짓과 왜곡이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개별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통해 건강한 토론으로부터 진리를 도출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자유론이 출간된 지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는 각자의 진리에 얼마나 도달해있을까. 혼자만의 생각은 아무런 진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타인과 대화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 모두의 행복을 생각하던 위대한 철학자의 바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