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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ㅣ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평점 :
주어진 현실을, 그리고 나 자신을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책.
누군가와 관계를 시작하는 능력과 그것을 지속시키는 능력은 사실 전혀 별개의 능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든 우정이든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떠날 필요가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쩌면 그것은 진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가장한 욕망, 우정으로 포장된 필요가 아니라 진짜 감정 말이다. 나는 종종 그런 관계를 꿈꾼다.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관계,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관계를. - P86
우리가 사랑이란 명사에 ‘빠졌다‘는 조금 특별한 동사를 쓰는 건 사랑이 ‘젖어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나와 만나, 크나큰 낙차를 경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 풍덩~ 빠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쿨‘하고 ‘드라이‘한 사랑 같은 건 이제 잘 믿지 않게 됐는데, 그건 물기가 없는 곳에선 어떤 생명도 자라지 않는 이치와 같다. 생명이라곤 자라지 않을 것 같은 사막에 선인장이 존재하는 건,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 때문이다. 진짜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 P113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어느 것을 직업으로 선택해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조심스럽게 ‘잘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기 때문이다. 잘하는 것을 오래 반복하면 점점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에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일이 점점 많아진다는 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이외에 자신의 일에 대한 특정한 태도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태도‘란 그 일을 좋아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 P185
아저씨의 무덤가에 꽂을 꽃을 꺾으면서, 꽃이 예뻐서 본능적으로 향기를 맡는 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그 옆에서 밥을 씹어 삼킬 수 있는 게 어쩌면 삶이다. 나는 이제 ‘절대‘라거나 ‘결코‘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절대,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 같은 건 없으니까. 그럴 수도, 이럴 수도 있는 게 인생이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간신히 이해한 삶이다. - P203
‘안되는 걸 하려니까 슬펐어요.‘ 안되는 걸 하려니까 슬펐던 경험 ... 간절한 꿈이 악몽이 되는 건 아마도 이런 순간이 아닐까. 그때의 삶은 ‘산다‘가 아니라 ‘견딘다‘쯤으로 치환된다. ... 악전고투 끝에 내가 작가가 된 건 그런 삶의 이면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기쁨보다 슬픔에, 성공보다 실패에 먼저 접속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쩌면 별 쓸모없는 능력 말이다.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실패가 있고, 누군가의 웃음 뒤엔 다른 사람의 눈물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실패란 없다. 그것에서 배우기만 한다면 정말 그렇다. 성공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이지만,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인 실패도 있다. - P277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으면 사는 게 한결 편해진다.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사랑 역시 그렇다. 헤어짐을 감당해내는 순간, 우리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 어차피 헤어질 테니까 대충 사랑하자가 아니라,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더 깊게 빠져들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앤의 말 처럼 기대는 좋은 일이다. 실망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어느 순간, 실망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도 도래한다. 그건 어떤 마음일까. 앤의 희망찬 말은 그러므로 이렇게 읽어 마땅하다. 미래에 대한 기대의 달콤함은 현실의 쓰디씀에 대한 인정과 감당 안에서 꽃피는 것이라고.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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