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흐르다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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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철학에 관련된 오픈채팅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안에서 철학이란 무엇일까란 질문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풍요로운 학문이 아닐까 한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하고 물음을 던져서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을 도출해내는.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나만의 생각으로 정의를 내림으로써 내게 새로운 의미로 작용하게 만들어주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학문이다. 일상을 의심하며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깨달을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다른 개념들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 대해 연구한 최진석 교수 또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산문집은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부여해주며 생각과 경험의 폭을 더욱 확장시켜주었다. 이런 것이 그가 말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가지의 경계. 얼마 전에 에리히 프롬의 고전 명저 <소유냐 존재냐>를 열독했다. 두 가지의 가치에 관한 책을 읽고 그것들이 서로 온전히 양립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도출하며 책읽기를 중간에 멈추었다. 각각의 가치에 저마다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있겠지만 프롬은 존재의 의의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러한 가치들의 개념을 이 책의 이념에 대입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최진석 교수는 두 가지 대립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극단적 근본주의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이념화가 되어 그 안에 발전이 없는 상태로 고착될 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쳤다. 두 가치의 경계에 서서 내게 이로운 것을 취하는 선택적 전략이 더욱 나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건 자신의 확고한 주장을 갖추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갈팡질팡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내게 상당히 신선한 이야기로 들려왔다. 한 가지의 가치에 다가서서 그것만을 수용하고 신념화한다면 내 생각의 흐름은 줄곧 같은 방향으로만 흐를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되며 여러 가치의 경계에서 갈등을 벌이게 된다. 선택을 하던 하지 않던 경계에 맞닥뜨린 이상 사람은 한 단계 더 진보해 있다. 당연히 고민 없는 삶은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아니다. 우왕좌왕하며 성장의 고통에 고뇌하고 있을 세대들에게 시대는 고민보다 GO’라는 키워드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저질러 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이 기치도 사람이 성장해나가는 것에 있어 무척이나 필요한 요소지만 저지르지 않고 경계에 머물러 그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해나가고 있음을 깨우칠 수 있다. 그렇기에 당면할 고민들을 간직한 채 그것들의 경계에 서서 진정한 삶의 태도를 또 한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최진석 교수의 시선은 무척 새롭고 탁월하다. 물론 가끔은 궤변에 가깝지 않은가 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내공 깊은 통찰력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깨우침은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무렴. 최 교수님이 그렇듯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이유도 단순하다. 그저 그의 시선이 재미있으니까.

p 27
교육의 핵심이 무엇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에게만 있는 고유한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며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위대하고 창의적인 모든 결과가 출현한다고 믿는다. 밖에 있는 별을 찾아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 혹은 자기에게만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별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p 35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의미로 고정될 수 있다면 이미 무늬도 아니다. 예술가의 고뇌는 여기서 시작된다. 즉 이 무늬에서 저 무늬로 이동하는 인간을 포착하다가 이곳에 있는 자신이 저곳을 봐 버린 것이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 걸쳐져 있는 자신은 분열을 겪는다. 저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이곳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익숙한 이곳에 대한 배반이며 변신이다. 혁명가와 예술가가 중첩되는 지점이다.

p 59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는 데에부터 진실은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한, 진실은 흔들린다. 남보다 좀 더 나은 것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자랑스러운가가 진짜 핵심이다.

p 106
모든 창의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공헌 등은 우선 자신이 확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공적인 역할로 자리 잡은 경우들인데, 그런 일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데서 생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하나의 수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수고가 있어야만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자신은 더 성숙해진다. 자신이 전체 세상으로 확장되는 일이자, 자신을 성숙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개별자로서의 자신과 전체로서의 세상이 서로 섞이고 일치하며 교류한다.

p 116
하지만 두 면을 동시에 장악하거나 두 면 사이의 경계에 처하지 않으면 전면적 인식이나 진보적 삶은 구현되지 못한다. 이것을 부정하다가 저것에만 빠지는 것은 부정의 고착화다. 지속 부정을 통해 부정을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이탈이다.

p 161
그런데 한국에서는 인이라 하면 으레 어질다는 의미로만 새긴다. 논어를 읽을 때 혹은 중국 고전을 읽을 때, 인을 어질다는 의미로만 새기면서 스스로의 사유의 폭과 높이를 제한해 버리고 있다.

p 183
쉽게 말하면, 이익을 이익으로만 추구하면 안 되고, 이익이 도덕적 명분 위에 있어야 진짜 큰 이익을 취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업도 어느 단계에서는 윤리적이어야 더 큰 발전을 이룬다는 연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한다.

p 211
바로 ‘자본‘이라는 말이다. ‘돈‘이 ‘자본‘으로 성숙되는 사회는 발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바로 정체되거나 후퇴한다. 자기가 가진 ‘돈‘을 ‘자본‘으로 승화시키는 활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비로소 ‘자본가‘라고 말할 수 있다.

p 224
‘본질‘과 ‘기능‘ 사이에서 우선 기능만 다듬고 서두르다가 자초한 일들이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우선 대학만 합격하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젊은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았다. ...... 사람이라면 기능을 제어하는 더 근본적인 능력, 즉 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덕은 지식보다도 심부름이나 노동이나 여행이나 방황이나 지루함이나 실패의 경험이나 봉사나 자발적 독서 등에서 길러진다.

p 263
하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다 천편일률적으로 이해와 분석에 관한 것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철학이 이처럼 독립적이지 못하다면, 우리의 모든 분야가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종속적 삶이 있을 분이다. 종속적 삶이 종속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자기 최면을 스스로 강화한다. 전체적으로 창의의 기운은 없고, 훈고의 답습만 있다. 철학은 이렇게 국가와 민족의 삶을 결정한다.

p 283
철학은 생각의 결과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철학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철학적인 높이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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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식 최고의 수면법 - 적게 자도 피곤하지 않은 90분 숙면의 기적
니시노 세이지 지음, 조해선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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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급격한 데이터의 이동들은 사람들의 시간을 장악했다. 불과 몇 십년 전 밤 11시면 인구의 60퍼센트가 잠자리에 눕던 시절에서 이제는 20퍼센트도 눕지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과도한 업무들, 작업들이 일상에 깊게 침투된 나머지 사람들은 수면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더 많은 실적을 올리고 싶고 좋은 결과를 위해 몰려오는 졸음까지 참아가며 밤샘이 잦아버린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효율적인 수면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수면에 대해서 세계 제일로 연구가 되어지고 있는 스탠퍼드의 연구결과들은 그러한 주장들에 강한 신뢰를 부여한다.


많은 연구자료들을 토대로 입증하고 있는 사실은 무척 간단 명료하다. 잠든 직후 90분의 논렘수면 상태가 다음 날 컨디션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체온과 뇌의 스위치를 잘 조정한다면 더욱 편안한 느낌의 수면 상태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한 약간의 사실에 비해 논증이 책의 전부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 굳이 이 정도의 두께가 나올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수면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작은 궁금증들을 해소시켜주기는 한다. 이를테면 커피는 어느정도 먹는게 좋을까. 낮잠은 어느정도 자야하는지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책은 건강한 생활리듬을 위해, 그리고 효율적인 삶의 방식을 위해 읽을 만한 가치는 있었다. 나 또한 6시간 30분의 수면균형과 26분간의 낮잠을 설정해놓고 사는 사람이기에 그것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격려차원의 신뢰가 들었다. 가끔은 유전적으로 잠을 적게 자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무척 많았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계발하는 것에 집중을 한다면 매번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 수면법에 대해 많이 끌렸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의 수면양에 대해 만족을 하고 건강하게 오래사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다.


사람에게 수면은 꼭 필요한 활동이다.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하거나 밤을 새는 활동이 잦아진다면 막상 작업을 끝내놓았다고 해도 그 다음의 일들을 제대로 처리해낼 수가 없다. 흐트러지는 집중력은 작업 효율을 더욱 반감시킨다.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을 잠에 빠져 살아가기 때문에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면 수면방식에 대한 설계 또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p 8
수면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수면의 질을 높여 낮 동안 일의 능률을 올리자

p 53
잘 시간이 없을수록 절대로 90분의 질을 떨어뜨려서는 안된다. 전체 수면은 물론 다음 날의 작업 능률까지 은이나 동은 커녕 고철 덩어리로 변한다.

p 102
하지만 그런 날이라도 밤샘만은 피해야 한다.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졸리면 일단 자고, 황금시간 90분을 마친 뒤에 찾아오는 첫 번째 렘수면 시점에 일어나서 자료를 작성하는 것이다.

p 168
자리에서 일어났다면 날씨에 상관없이 아침 햇빛을 쏘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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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2disc) - 할인행사
파라마운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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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달기도 하고 때론 쓰기도 한 것이 어떤 맛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채 맛보는 초콜릿 상자만의 즐거움은 아닐까? 그런 것처럼 지금 당장 우리는 어떠한 맛의 초콜릿을 먹게 될지 모른다. 다만 그 맛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먹어나간다. 검프의 어머니가 말하듯 우리네 인생 또한 단맛일지 쓴맛일지 맛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맛보는 즐거움을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이 인생과 초콜릿 상자의 공통점이다.


20세기 미국사회는 다사다난한 사건들이 끊이질 않았다. 한 남자의 인생담을 통해 그러한 굴곡들이 보여지고 있다.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 그렇기에 바람처럼 떠다니며 눈앞에 놓인 일들만을 즐긴다는 것. 자신이 하는 일을 앞만보고 달려간다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을 때 주변상황을 개의치 않고 앞으로 달려나가자고 한다. 그리고 끝도 없이 달려가는 와중에 비추어진 아름다운 풍경들. 인생 또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달려가지만 그렇게 달려가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사로운 일에 얽매여 골몰하지 말고 아무 생각없이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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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 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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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가며 성인이 되어가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이성을 다져가면서 혐오의 표현들, 철없는 생각들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 뇌 속에서 한 번 숙고하게 되어진다. 어느정도의 지성을 갖추고 해야될 것과 하면 안 될 것을 충분히 구분할 줄 알기에. 그러한 표현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는 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 사실을 인지하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 거론되어지는 혐오의 요소는 무척 복잡다단하다. 민주화 운동을 통해 힘겹게 쟁취해낸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혐오와 멸시, 비난, 조롱 등을 정당화 하는 극우의 입장들부터 우리 생활에서 알게모르게 쓰여졌던 누군가를 차별하는 단어들까지.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의미들을 다시금 깨닫고 선입견으로부터 비롯되어진, 혹은 자극적인 재미를 위해 놀림감의 대상이 되어지는 혐오 표현들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 주변에도 어느정도의 혐오표현이 오가는 짖궃은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러한 부분에 일일이 대응해가며 예민하게 구는 것은 감정의 낭비라 여기지만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적당한 반응을 하며 화제를 돌린다던지, 적당히 웃어넘기곤 한다. 내 스스로는 신념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냥 떨쳐낼 수 있다하더라도 그로부터 시작된 혐오의 발화는 한 집단에게 일정한 편견을 심어주는데 공조한다. 누군가에게는 정체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존엄의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단순히 장난, 자극적인 소재로써 의례가 바탕이 되는 일상에서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이 되어 그것에서 희열을 얻는다. 이러한 자극적 장난이 반복되고 그들의 차별적 언행이 당사자들에게 직접 가닿지 않는다해도 그러한 행위들은 차별적인 인식의 체재를 만들어내어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자신들만의 둥지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정신건강하고 사회로부터 아무런 문제없이 자라난 건아들이 한데 뭉쳐지는 군대야말로 혐오표현 주축의 장이 된다. 그들 대다수는 건장하고 기득적인 입장에 속해있기에 소수자들의 고통을 이해할 줄 모르며 자신들만의 소셜을 생성하고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환경이 만연해진다. 그것에 대해 확실한 인식이 없던 사람들 마저 그것을 혐오하는 한 명의 주도자로 인해 악의적인 표현들에 친숙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심각한 차별적 인식을 낳는다. 사회가 바뀌어가는만큼 표현의 자유로 무마되서는 안된다. 그런 콘텐츠의 규제가 강화되어야하며 유년시절의 교육이 가장 필요할 것이다.


절대다수의 문화로부터 비롯된 잔재는 아직도 무척이나 많이 남아있다. 결국은 모두가 그것들을 의식하고 소수의 입장을 헤아리는 노력을 한다면 혐오발언은 자제가 되지 않을까. 이제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다수에게서 비롯된 음지 속에 갇혀 불안에 떨고 있을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도록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아직도 그런 표현에 대해 고민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주변인들에게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p 14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이자 우리 헌법이 느끼는 정도가 각기 다르고 사회의 자정 능력에 의해 그 해악이 치유될 수도 있다. 그래서 표현에 대한 개입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p 25
이 말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여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여성을 무시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보고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 말들이 자꾸 발화될수록 그런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어 사실로 둔갑하고, 이것이 다시 차별을 낳게 되는 것이다.

p 28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반한감정이 고조되어왔고 반한시위대가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다. 대자보는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인 것이고, 따라서 전혀 다른 효과를 낳게 된다. 그 대학을 다니는 한국인 학생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익명으로 붙었지만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것이다. ...
이렇게 대자보가 붙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소수자가 아닌데,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p 31
정리해보자면, 혐오표현이란 "소수자에 대한 편견 또는 차별을 확산시키거나 조장하는 행위 또는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멸시, 모욕, 위협하거나 그들에 대한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 정도로 그 개념을 정의해볼 수 있다.

p 73
혐오표현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건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과연 실체가 없는 고통일까? 개인의 특수한 고통일 뿐일까?

p 83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그것을 내뱉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옆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는 순간 얘기가 달라진다. "어라, 저렇게 말해도 괜찮네." 한 사람, 두 사람 거침없이 혐오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더욱 강도 높게 말하는 것이 인기를 끌게 되어 혐오표현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p 88
하지만 혐오표현의 문제에서 저자의 의도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쁜 효과를 낳고 있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중국 동포들에게 영화를 영화로 봐달라고 요구하기 이전에 그들이 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없게 된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영화와 같은 예술에서 조롱이나 희화화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집단이 사회적 강자나 권력자가 아닌 소수자일 때는 얘기가 다르다. 그 부정적 효과를 충분히 고려하고 성찰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윤리다.

p 153
표현의 자유를 증진하는 개입이야말로 부작용이나 규제 남용의 위험 없이 혐오표현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금지와 허용의 무익한 대립을 넘어설 수 있는 제3의 선택지이기도 하다.

p 207
편견이 혐오가 되고 차별이 되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단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가 ‘저들을 반대한다‘가 되고, ‘저들을 반대한다‘가 ‘저들을 박멸하자‘가 되는 건 순간이다. 나치가 반인륜적 선동에 나섰을 때만 해도 그들이 끼칠 해악을 예상한 이들은 없었따. 하지만 그들은 결국 그렇게 유대인을, 성소수자를, 장애인을,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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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아웃케이스 없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오노 마치코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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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도 아닌.



아이는 단지 아이일 뿐, 누구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대상에 소유격의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대상은 주체성을 잃고 어딘가에 종속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러한 대상은 시간이 거듭될수록 수동적인 면모만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유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 발상일까. 가르침의 관계 또한 서로 간의 존중이 바탕이 되어져야 한다. 결코 자신의 뜻대로 거두어들이려 해서는 안된다. 비록 케이타가 6년간 아들로 지내오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형성되긴 했으나, 친자식이라도 자신의 이상을 주입하고 위계를 갖게 하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케이타를 우수한 인재로 키워내려는 료타의 마음은 아버지로써가 아닌 단순히 개인의 욕심이었다. 아버지라는 타이틀이 자식으로부터의 복종심과 개인의 권위성을 정당화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 초반부에 던져졌던 두 아버지들의 골머리를 썩힌 문제(아이를 바꾸느냐 마느냐)는 아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키워야 한다는 우문현답으로 질문의 궤를 막아낸다. 


다행히 료타는 아이에게 선물하려던 카메라를 살피며 깨우치게 된다. 케이타에게 주려했던 카메라는 거진 케이타의 소유나 마찬가지였다. 케이타는 아버지와 함께 놀고싶어했던 마음을 저만치 달아나 그를 담아낸 사진으로 대신한다. 사진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료타는 각자의 아이들을 존중하기로 결심하며, 멸시의 대상이라고 느껴졌던 류시이네에 돌아가 그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아이와 아버지는 두 갈래길로 나뉘어 걸어가다가 마지막 맞닿은 길에서 포옹한다. 케이타가 가는 길은 케이타의 길이었고 료타의 길은 료타의 길이었다. 그리고 료타는 맞닿은 길에서 케이타를 헤아린다. 이제 그러한 입장 속, 케이타의 길을 먼발치 뒤에서 묵묵히 따라가주는 아버지가 되지 않을까. 그는 아이를 속박하던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거두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 할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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