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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흐르다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7년 8월
평점 :
일전에 철학에 관련된 오픈채팅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안에서 ‘철학이란 무엇일까’ 란 질문에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풍요로운 학문이 아닐까 한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철학이란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하고 물음을 던져서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개념을 도출해내는.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나만의 생각으로 정의를 내림으로써 내게 새로운 의미로 작용하게 만들어주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학문이다. 일상을 의심하며 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깨달을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다른 개념들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철학에 대해 연구한 최진석 교수 또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산문집은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부여해주며 생각과 경험의 폭을 더욱 확장시켜주었다. 이런 것이 그가 말한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가지의 경계. 얼마 전에 에리히 프롬의 고전 명저 <소유냐 존재냐>를 열독했다. 두 가지의 가치에 관한 책을 읽고 ‘그것들이 서로 온전히 양립할 수 있는가’ 란 질문을 도출하며 책읽기를 중간에 멈추었다. 각각의 가치에 저마다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있겠지만 프롬은 존재의 의의를 더욱 부각시켰다. 그러한 가치들의 개념을 이 책의 이념에 대입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최진석 교수는 두 가지 대립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극단적 근본주의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이념화가 되어 그 안에 발전이 없는 상태로 고착될 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쳤다. 두 가치의 경계에 서서 내게 이로운 것을 취하는 선택적 전략이 더욱 나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건 자신의 확고한 주장을 갖추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갈팡질팡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내게 상당히 신선한 이야기로 들려왔다. 한 가지의 가치에 다가서서 그것만을 수용하고 신념화한다면 내 생각의 흐름은 줄곧 같은 방향으로만 흐를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게 되며 여러 가치의 경계에서 갈등을 벌이게 된다. 선택을 하던 하지 않던 경계에 맞닥뜨린 이상 사람은 한 단계 더 진보해 있다. 당연히 고민 없는 삶은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아니다. 우왕좌왕하며 성장의 고통에 고뇌하고 있을 세대들에게 시대는 ‘고민보다 GO’라는 키워드로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저질러 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이 기치도 사람이 성장해나가는 것에 있어 무척이나 필요한 요소지만 저지르지 않고 경계에 머물러 그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성장해나가고 있음을 깨우칠 수 있다. 그렇기에 당면할 고민들을 간직한 채 그것들의 경계에 서서 진정한 삶의 태도를 또 한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최진석 교수의 시선은 무척 새롭고 탁월하다. 물론 가끔은 궤변에 가깝지 않은가 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내공 깊은 통찰력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깨우침은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무렴. 최 교수님이 그렇듯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이유도 단순하다. 그저 그의 시선이 재미있으니까.
p 27 교육의 핵심이 무엇일까?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자신에게만 있는 고유한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우며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위대하고 창의적인 모든 결과가 출현한다고 믿는다. 밖에 있는 별을 찾아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자신이 바로 별이라는 것 혹은 자기에게만 있는 자기만의 고유한 별을 찾게 해주는 것이다.
p 35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의미로 고정될 수 있다면 이미 무늬도 아니다. 예술가의 고뇌는 여기서 시작된다. 즉 이 무늬에서 저 무늬로 이동하는 인간을 포착하다가 이곳에 있는 자신이 저곳을 봐 버린 것이다. 이곳과 저곳 사이에 걸쳐져 있는 자신은 분열을 겪는다. 저곳으로 건너가기 위해 이곳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익숙한 이곳에 대한 배반이며 변신이다. 혁명가와 예술가가 중첩되는 지점이다.
p 59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삼는 데에부터 진실은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한, 진실은 흔들린다. 남보다 좀 더 나은 것이 핵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자랑스러운가가 진짜 핵심이다.
p 106 모든 창의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공헌 등은 우선 자신이 확장되어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공적인 역할로 자리 잡은 경우들인데, 그런 일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하는 데서 생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하나의 수고가 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수고가 있어야만 세상은 더 나아지고 자신은 더 성숙해진다. 자신이 전체 세상으로 확장되는 일이자, 자신을 성숙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개별자로서의 자신과 전체로서의 세상이 서로 섞이고 일치하며 교류한다.
p 116 하지만 두 면을 동시에 장악하거나 두 면 사이의 경계에 처하지 않으면 전면적 인식이나 진보적 삶은 구현되지 못한다. 이것을 부정하다가 저것에만 빠지는 것은 부정의 고착화다. 지속 부정을 통해 부정을 살아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이탈이다.
p 161 그런데 한국에서는 인이라 하면 으레 어질다는 의미로만 새긴다. 논어를 읽을 때 혹은 중국 고전을 읽을 때, 인을 어질다는 의미로만 새기면서 스스로의 사유의 폭과 높이를 제한해 버리고 있다.
p 183 쉽게 말하면, 이익을 이익으로만 추구하면 안 되고, 이익이 도덕적 명분 위에 있어야 진짜 큰 이익을 취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업도 어느 단계에서는 윤리적이어야 더 큰 발전을 이룬다는 연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한다.
p 211 바로 ‘자본‘이라는 말이다. ‘돈‘이 ‘자본‘으로 성숙되는 사회는 발전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바로 정체되거나 후퇴한다. 자기가 가진 ‘돈‘을 ‘자본‘으로 승화시키는 활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비로소 ‘자본가‘라고 말할 수 있다.
p 224 ‘본질‘과 ‘기능‘ 사이에서 우선 기능만 다듬고 서두르다가 자초한 일들이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우선 대학만 합격하면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젊은이들에게 예의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았다. ...... 사람이라면 기능을 제어하는 더 근본적인 능력, 즉 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덕은 지식보다도 심부름이나 노동이나 여행이나 방황이나 지루함이나 실패의 경험이나 봉사나 자발적 독서 등에서 길러진다.
p 263 하지만 한국에서는 모두 다 천편일률적으로 이해와 분석에 관한 것으로만 채워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철학이 이처럼 독립적이지 못하다면, 우리의 모든 분야가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종속적 삶이 있을 분이다. 종속적 삶이 종속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자기 최면을 스스로 강화한다. 전체적으로 창의의 기운은 없고, 훈고의 답습만 있다. 철학은 이렇게 국가와 민족의 삶을 결정한다.
p 283 철학은 생각의 결과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철학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철학적인 높이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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