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는 무척 친절해졌답니다. 커다란 화분을 구해와서 거기 나를 심어주었어요. 일요일이면 오전 내내 베란다 문턱에 걸터앉아 진딧물도 잡아줘요. 내가 수돗물을 싫어한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그렇게 피곤해만 하던 사람이 아침마다 물통 가득 뒷산 약수를 길어와서 내 다리에 부어준답니다. 얼마전에는 기름진 새 흙을 한아름 사와서 갈아주었어요. 비가 내린 다음날, 오랜만에 도시의 공기가 깨끗해진 새벽 녘이면 창문과 현관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바꾸어준답니다.

<내 여자의 열매,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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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8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a95 2004-09-1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강 소설 무척 좋아합니다.. 컴컴한 어둠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요.. 편안한 기분이..

플레져 2004-09-18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의 최근 중편을 읽었는데 문체가 좀 달라진 것 같더라구요.
여전히 식물에 관한 소재는 담아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