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자신을 위해 애써준 여양을 앞에 두고 그런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울 정도로, 마트료나는 초월랑을 생각해왔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그 LXG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았어. 여왕이 되고 싶어서 욕심을 내는 사람은 절대 여왕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걸. 여왕은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착하고, 모든 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해.
그리고 내가 아는 그럴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마트료나 바로 너야. 너만이 될 수 있어. 네가 말했잖아? 초월랑을 동경한다고. 그에게서 바라던 미래를 보았다고 했잖아. 그때 내가 비밀이라고 한 결심이 있었지? 그게 바로 이거야. 너를 여왕의 권좌에 앉히겠다는 거.”

생각해보면 여양은 늘 자신의 곁에 있었다. 곤란하고, 외롭고, 슬프고, 힘들 때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었다.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웃게 해주었다. 어둠을 밝혀주었다.

그랬는데, 자신은. 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던 자신은.

“그렇게 굳은 표정 짓지 마. 넌 나를 대신해서 얼굴만 내미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내가 네 이름으로 권좌에 대한 도전장을 내미는 셈이니까, 너무 부담 가지진 마.”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 아팠지만 마트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을 위해 헌신한 이 사람을 마주본다. 참으려고 해도 눈가가 흐려진다.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가늘게 흔들렸다.

“솔직히 떨리고, 자신이 없어……. 메이브 선배가 물러났다고 해도, 전임 학생회장님이 있고, 북도그룹의 3세가 있고, 쟁쟁한 선배들이 후보로 나와 있는데 내가 나간다고 해도 잘 될까?”

“그건 걱정하지 마. 그런 걸 생각하는 건 내 몫이니까. 너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만 믿고 있어. 나를 믿고 따라오기만 해줘. 반드시 너를 여왕의 권좌에 앉힐 테니까.”

마트료나는 어느새 눈을 촉촉하게 적신 눈물을 소매로 훔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를 믿을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네가 그걸 원하고,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나도 네가 원하는 걸 원하고 네가 믿는 걸 믿을 거야. 그럴 거야. 왜냐하면 널 믿으니까.”

“나도 널 믿어. 그리고 널 원해. 하지만 넌 나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돼. 그러기에 너는 너무 아깝거든. 그래서 난 너를 여왕으로 만들려는 거야. 내 가슴이 이렇게 아프고 쓰라리지만, 내가 널 독점하는 건 그보다 더한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믿음. 굳건하지만 너무나 간단히 도망가는 한 마디. 다시 움직이는 시선. 여양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한다. 말을 하지 않고 담아두기엔 너무나 크게 부풀어 올라,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내게 작은 부탁이 있어. 들어줄래? 내 작은 욕심이라고 해도 좋아. 꼭 들어줘.”

마트료나는 무슨 부탁이냐고 되묻지 못했다. 너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여양의 두 손이 마트료나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았고, 서서히 목으로 올라왔고, 가늘고 부드러운 목을 쓰다듬듯 거슬러 올라가, 양 뺨을 가볍게 감싸 쥐고는, 그 자세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이마가 혹은 코가 부딪히겠다고 생각한 순간, 두 사람이 맞닿은 곳은 이마도 코도 아니었다. 입술이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바람의 소리도 벌레가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숨을 죽인 비상등의 깜박임과 달과 별의 숨소리만이 있었다.

여왕님은 그렇게, 자신의 첫 키스를 마트료나 M. 불가코프에게 바쳤다. 비록 마트료나의 첫 키스 상대는 그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이 자신의 감정을 퇴색시키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행위는 가벼운 충동과 욕심의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상대에게 바친다는 증거로 마주 댄 입술이다. 그래서 숨소리마저 가라앉은 그 조용한 밤에, 눈을 감고 상대방에게 모든 걸 맡긴 그 모습은 마치 고결한 의식과도 같아 보였다.
군주의 앞에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기사처럼, 그의 어깨에 검을 얹고 자신의 기사임을 선언하는 군주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상대방에게 내어주며 자신의 체온과 숨결과 마음과 영혼을 남김없이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둘의 숨결은 하나로 섞이고 보이지 않는 끈이 되어 서로의 영혼을 이어주리라.

그 순수하고 신실한 감정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일컫는 ‘사랑’에 가장 가까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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