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러분들이 나영 선배의 목에 난 상처가 찍힌 사진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요. 하지만 사실이라고 치죠. 어쨌든 그 정보는 신문부에서도 모르고 있던 기밀이고 외부로 새어나간 적이 없으니까요. 그걸 안다는 것은 의사 선생님 아니면 사건을 목격한 직원과 접촉했다는 뜻이고, 손선지 씨는 메이브 선배와 만났다고 진술했어요.
그때 선배의 에메랄드 아이가 힘을 발휘한 거겠죠. 스스로 신이 내린 눈동자며 마법사 가문의 후계자라고 말하고 다닌 분이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죠? 죄송하지만 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직접 말씀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동요하고 분노하는 네 명의 멤버들과 달리 메이브는 여전히 침착해보였다. 잠시 눈을 감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한숨을 내쉬듯 대답을 했다.

“내 능력을 인정해주니 고마운데.”
“선배님!” “선배!” “메이브!”

멤버들의 놀라는 혹은 나무라는 듯한 외침이 이어졌다. 하지만 메이브는 이미 결심한 듯 했다.

“여기까지 알고 왔다면 더 감추거나 모르는 시늉을 할 상황이 아니겠지. 그러니까 우리 모두를 모아놓고 밤중에 찾아오는 용감한 행동도 할 수 있을 테고. 우리 LXG를 보고도 시선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교사 중에서도 소수, 학생이라면 학생회장과 부회장 정도야. 그런데 신입생의 입장으로 이렇게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는 건 그만한 무기가 있다는 이야기지. 그렇지?”

메이브의 시선이 여양에게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고양이의 것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몸을 옭아매는 듯 했다. 하지만 여양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저 안광에 녹아들어간 초능력이 자신에게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피어올랐지만, 억지로라도 참으며 버텼다. 잠시 시선을 교환한 후, 메이브는 체념한 투로 말했다.

“난 시선이 마주친 상대를 잠들게 할 수 있어. 깨어난 후에는 그 사실을 잊어먹도록 만들 수도 있고. 하지만 소문처럼 거창한 초능력은 아니야. 난 그저 그 사람을 잠재우고 디카에 담긴 사진을 들여다보았을 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순순히 자신이 한 일을 시인한 것은 물론 여양에게 있어 좋은 수확이었다. 그렇지만 메이브의 이 증언이 수수께끼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었음은 아직 본인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보인 여양의 표정이야말로 회심의 미소 자체였다.

“감사합니다. 선배 덕분에 의문은 풀렸어요. 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게 있네요. 대체 나영 선배를 죽인 건 누구죠? 여러분들도 모른다면 그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게 되는데 말이죠.”
“그걸 우리가 안다면 이러고 있을 리가 없잖아? 당장 경비 직원이나 신문부에 알려주겠지.”

카밀리아의 대답은 지당했다. LXG 본인들이 범인이 아닌 한, 그걸 감출 이유는 없다. 하지만 금윤을 협박하여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 점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여양은 모두를 불러 모은 것이다. 이제 이야기할 때가 왔다. 그날 밤의 진상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아직 범인의 정체를 모릅니다. 하지만 전 그 외에 대해서는 알 것 같아요. 여러분이 마미, 그러니까 마트료나를 이곳으로 불러낸 밤에 나영 선배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습니다. 분명 범인이 보낸 메시지겠지요. 새벽 1시에 기숙사 밖에서 만나자는 내용일 거예요. 전 나영 선배의 수첩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지워지고 없더군요.
나영 선배는 1시에 기숙사를 나가서 범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미리 갖고 있던 끈으로 목을 졸려 숨지고 말았죠. 몸에 다른 상처가 없는 것으로 봐서 싸우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습 혹은 방심한 사이에 당했겠죠.
그 후, 제가 마트료나를 데리고 이 방에서 나간 후 여러분 중에서 두 사람이 건물을 나갑니다.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죠. 여러분은 마트료나 다음엔, 나영 선배와 만날 예정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선배는 그 1시간 전에 이미 다른 누군가와 만났고, 그에게 목숨을 잃었지요.”

카밀리아가 메이브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돌로리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순 없었다. 그 모습을 멀거니 보면서 여양은 말을 이었다.

“바로 카밀리아 선배와 돌로리스 선배, 두 사람이 나영 선배를 만나기 위해 약속한 장소로 갔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것은 이미 숨이 끊어진 선배였지요. 두 분은 아마도 곧 나영 선배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아요. 하지만 두 분은 자신들이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살인 혐의를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직접 들을 생각이지만, 덕분에 그 해괴한 자살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죠.”

여기서 청중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연사처럼 잠시 말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메이브 이외의 네 사람은 애써 시선을 피하고 외면하는 듯이 보였다. 메이브만은 표정이 굳어졌지만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았다.

“아마도 두 분은 메이브 선배와 연락을 주고받았겠죠. 여기까지 생각하면 그 시각에 메이브 선배가 금윤 선배의 방에 있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어요. 누구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여러분은 나영 선배의 죽음을 자살로 꾸미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두 분이 선배의 시신을 옮겼고, 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이 창문을 열고 시신을 받아서 방 안으로 집어넣었겠죠.
1층이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이로써 창문이 잠긴 이유도 알 수 있었습니다. 열려 있다면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은 커튼으로 선배의 목을 묶고, 창문을 닫아 잠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작은 실수가 있었죠. 창문 밖으로 커튼 자락이 살짝 삐져나온 거죠.”

돌로리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가 양 옆의 사람의 얼굴을 초조한 듯 바라보았다.

“전 사건 현장을 찍은 사진을 출력 받아서 보관하고 있는데요, 직접 보시면 알 거예요. 커튼의 길이가 짧아서 목을 둘러도 발이 땅에 닿을 정도이기 때문에 자살을 하려면 끈의 길이를 가급적 최대한으로 늘여야만 합니다. 그러니 닫힌 창문에 일부가 끼어서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데도 그대로 놔두고 목을 맨다는 것은 부자연스럽죠. 이건 아마도 너무 서두르다가 생긴 실수일 거예요. 아마도 혹시나 들킬까 싶은 마음에 방의 불도 껐을 테니 어쩔 수 없었겠죠.
그러면 발견 이후의 상황을 볼까요? 밤새 이런 소동이 일어났는데도 깨지 않고 잠에 빠져 있던 금윤 선배가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에 목을 맨 나영 선배를 발견하고 경비실에 알립니다. 직원들이 숨진 것을 확인했고, 의사 선생님이 시신을 병원으로 옮겼죠. 확인 결과 유서도 없고 전날까지 아무런 징후도 없던 나영 선배가 돌연 자살했다는 점, 창문이 잠겨 있었다는 점, 방은 다른 사람이 드나들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자연스레 금윤 선배가 의심을 받았죠. 여러분은 목에 난 이중의 상처를 언급하며 자살이 아닌 교살이었음을 드러내며 의혹을 부풀렸고요.
이상한 것은 이사회의 대응과 태도인데요, 이렇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마무리 짓고 사건을 서둘러 끝맺으려 합니다. 교사나 직원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려서, 교장 선생님의 대리인 자격을 얻은 다음에나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있었지요.”

단숨에 쏟아내듯 말을 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메이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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