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모두들 꺼림칙한 기색을 보이며 섣불리 나설 생각을 안 하자 결국 자신이 하겠다며 선지가 나섰다. 컴퓨터를 조작하여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CCTV의 영상을 불러내었다.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로 향한 상태로 여양에게 물었다.

“시간은 언제부터로 할까요?”
“모두 잠이 든 후에 이동했을 것이 분명해요. 밤 10시……? 아니면 12시 이후부터? 새벽엔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6시 이전에 나가는 경우는 없겠죠?”
“그렇다면 일단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로 하죠. 일단 한 네 배 정도로 빨리 돌려볼게요.”

밤 12시에는 로비를 어슬렁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제법 보였다. 그들은 모두 종종 걸음으로 둘셋씩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빨리 돌린 영상 속의 소녀들은 축지법을 쓰는 듯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1시쯤 되니까 로비와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로 회청색의 어둠에 덮여 있는 텅 빈 공간만이 보였다. 옅은 비상등의 빛만이 가장자리에서 푸른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화면 속 세상은 정지된 사진 같았다.

선지는 속도를 더 올려서 다섯 배, 여섯 배로 빠르게 돌렸다. 순간 시커먼 그림자 훌쩍 나타났다 사라져서 정지시키고 뒤로 돌려보니 손전등을 든 양복차림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날의 당직 근무자였다. 키가 크고 긴 머리를 뒤로 묶어서 선지와는 전혀 달라보였다.

“전날 당직자의 모습이에요. 들어보니 이후로 잠을 잤다고 하네요. 저는 다음날 아침 6시에 교대를 했는데, 자고 있더군요. 아시겠지만, 원래 자면 안 되는데, 모두들 잠을 자요. 드나드는 학생도 없을 것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잠이 안 와서 돌아다니는 정도일 테니까 라고 가벼이 생각해왔던 거죠.”

약간 변명에 가깝긴 했으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곳은 사방이 바다로 막힌 섬이다. 안에 사는 사람은 학생과 교사, 교직원들뿐이다. 수상하거나 낯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더라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만큼 이번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거나 해결하지 못했다는 과오를 남기기도 쉬울지 모른다.

“앗, 잠깐만요!”

멍하니 손에 턱을 괴고 반쯤 졸던 여양이 별안간 외쳤다. 오랫동안 정지 화면처럼 보였으나 아까처럼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 것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 뒤로 돌려서 속도를 줄여 재생하자 로비를 지나 출입문으로 향하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여양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파자마 위에 덧입은 코트 차림, 구불거리는 헤어스타일, 안경, 통통한 몸집.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원나영의 모습이었다.

선지도 여양 못지않게 놀랐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영상이긴 해도 죽은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비이성적인 두려움과 신비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여양은 자신의 손끝이 떨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 모습을 가리켰다.

“나영 선배의 모습이에요.”
“나도 알아보겠어요. 방에서 발견 당시에 안경은 쓰고 있지 않았지만 틀림없어요. 그런데 어째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거지? 시간은 새벽 1시……”

선지는 수첩을 꺼내어 시간을 기록했다. 여양은 속으로 외쳤다. 체링의 말이 맞았어, 역시 CCTV에 뭔가 있었던 거야! 오래 지나지 않아 그러한 확신을 더해주는 증거가 늘어났다. 약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또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힌 것이다. 이번엔 한 명도 아니고 두 사람이었다. 작은 키와 훤칠한 키,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금발. 화면 오른쪽 아래에 있는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 2시가 넘은 시각. 여양 자신이 마트료나를 LXG의 손아귀에서 데리고 나온 직후로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숙사에 설치된 CCTV는 이것 하나뿐이다. 건물 밖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궁금함과 조급함으로 다시 빨리 돌려봤지만 화면은 무심하게도 텅 빈 입구만을 비추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나니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뒷모습만이지만 어느 정도 신원 파악은 가능했다.
선지가 조심스레 누군지 알아보겠냐고 물어봐서 여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복이 아닌 사제 코트를 입은 키가 훤칠한 쪽은 분명 카밀리아고 작은 쪽은 돌로리스일 것이다. 이후로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다른 사람은 들어올 줄을 몰랐다.
어느덧 6시가 되어 화면이 조금씩 밝아지고 작은 키에 단발머리를 한 선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후에 일찍 일어난 학생 몇 명이 체육복 차림으로 밖으로 나왔다. LXG의 다른 세 사람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왜 돌아오지 않은 걸까. 6시까지 모두 본 후에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특별히 부탁하여 6시 이후의 기록도 보기로 했다. 이후에도 기숙사로 들어오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운동을 했던 체육복 차림의 뒷모습이 보일 뿐. 그때 혼자서 들어오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놀랍게도 교복 차림이었고,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거의 허리춤까지 내려와 있었다.
여양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으나 일단 화면을 멈추고 프린터로 출력해달라고 부탁했다. 밤중에 나간 적이 없는데도 지금 들어왔다는 것은 밤 12시 이전에 기숙사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고 이 사건과 연관이 없다고 해도 그냥 놔둘 수 없는 문제기 때문이다.

“뒷모습밖에 없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징벌감이에요. 기숙사에서 잠을 안 자고 다른 곳에 있었다니.”

선지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지만, 여양은 왠지 이 소녀가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밤중에 기숙사를 나간 후 돌아오지 않은 원나영은 자신의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그 뒤를 따라 나온 LXG 다섯 명 중에서 둘만 들어오고 셋은 오리무중이다.
그렇지만 뒤엉킨 실타래와 같은 상태에서 한쪽 끝은 붙잡은 느낌이었다. 이제 살살 잡아당겨서, 묶이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풀어나가면 분명 풀려나오리라. 여양은 저 수수께끼 같은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잠긴 창문, 바닥에 떨어진 안경, 목에 난 이중의 상처, 밤중에 기숙사를 나온 나영와 그 뒤를 따른 LXG 멤버들. 되돌아온 것은 총 여섯 명 중에서 단 둘. 그리고 정체모를 한 명.

그리고 잠에서 깨지 않은 금윤, 증거 사진을 손에 넣은 LXG. 이 둘을 잇는 해결의 실마리는…… 마법? 에메랄드 아이의 마법!

“일단 기록해두는 것이 좋겠어요.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까 정지한 화면과 함께 출력해주세요.”

선지가 프린터를 만지고 A4지에 컬러로 뽑은 사진을 건네주자 여양은 가볍게 감사 인사를 하고 덧붙이듯 물었다.

“저기,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있어요. LXG의 메이브와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죠?”

선지는 질문의 의도를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여양의 희망사항에 가까운 답변을 해주었다. 이걸로 재료는 모두 모은 셈이었다. 이제 원하는 맛을 내기 위해 요리하는 과정만 남은 셈.

여양은 나영과 LXG가 나가는 모습, 두 멤버와 누군지 모르는 뒷모습이 찍힌 장면을 출력받고 경비실을 나왔다. 이제 준비는 끝났고 한 가지 증명해야만 할 가정만이 남았다. 그것은 바로 에메랄드 아이, 본인에게 확인해야만 했다.

어느새 시간은 12시가 넘어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지만, 무거운 몸과 달리 정신만은 멀쩡했다.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기쁨과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가벼운 흥분이 온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고백을 앞둔 설레는 기분과 흡사했다.


(제7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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