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란이 지적한 대로 금윤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은 자고 있어서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크지도 않은 방에서 룸메이트가 몰래 자살을 했다면 몰라도 누군가 들어와 옆에서 자던 사람의 목을 조르고 커튼에 매다는 일을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을까. 보통은 저항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느라 큰 소리가 날 것이고 그 서슬에 깨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여양은 얼른 변명거리를 생각해보았다.

“만에 하나 말야, 범인이 이런 범죄의 경험이 있거나 해서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창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고 있는 나영 선배의 목에 끈을 두른 후 비명을 지를 틈도 주지 않고 재빨리 목을 졸랐다면……? 그런 다음에 금윤 선배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시신을 들어 커튼에 목을 묶어 자살로 위장한 다음에 창문을 닫아 잠그고 방으로 나갔다. 어때?”
“야, 이 학교에 무슨 암살의 전문가라도 있다는 거야?”

지란은 여전히 누운 채로 툴툴거렸다. 물론 여양 자신도 만화 같은 소리란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금윤이 범인이라는 가장 쉽고 편한 결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럼 어쩌라고? 넌 무슨 뾰족한 생각이라도 있어?”
“있으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기자 불러다가 학교 신문에 대문짝하게 내지. 사실 진상은 이렇다! 하고 말야.”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다, 그래.”

여양은 지란의 종아리를 찰싹 소리가 나게 때렸다. 골똘히 생각하던 금윤이 말했다.

“정말 미안해. 어째서 나는 그날 밤에 깨어나지 않았던 건지, 꿈도 안 꾸고 그저 깊이 잠들었던 기억밖에는 없어. 왜 그랬을까?”
“그건 마법의 힘 때문일 거예요.”

돌연 체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지만. 뜬금없이 마법이라니? 궁금함이 넘쳐흐를 듯한 모두의 얼굴을 보며 체링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탐정은 진상을 알아도 미리 말을 하지 않아요. 이야기의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하지만 저야 뭐 명탐정도 아니고, 제 생각이 반드시 맞다는 보증도 없으니 미리 말씀드릴게요. 일단 CCTV에 무언가 있음은 확실해요.”
“그럼 마법이라는 건 뭐야? 설마 누군가 마법으로 나영 선배를……?”

세상 모든 밀실 살인을 허무하게 해결하는 그야말로 마법 같은 해결책이 과연 존재한다는 것일까. 방 밖에서 저주나 마법의 힘으로 방 안의 사람을 죽인다든지? 하지만 체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신이 내린 눈동자, 에메랄드 아이의 마법이죠.”

이어진 체링의 말은 여양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의 진상을 보여주는 듯 했다. 어둡고 흐린 영상이 돌연 밝아졌다. 누군가 커튼을 젖혀 막혀 있던 빛의 흐름을 방 안으로 끌어들이기라도 한 듯이.

“좋았어! 지금 당장 CCTV를 확인하러 가겠어!”

여양은 주먹을 불끈 쥐며 벌떡 일어났다. 미쳤냐, 9시가 다 되었어, 하는 지란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일은 시간을 끌수록 금윤에 대한 의심만 커질 뿐이다. 한시바삐 해결해야 한다. 그런 생각만이 가득했으니, 시간이 문제될 리가 없는 것이다.

모두들, 심지어 금윤마저도 내일 가라고 했으나 여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교장의 문서만 챙겨서 방을 나섰다. 마미와 금윤이 뒤따라오며 같이 가겠다고 말했지만 애써 거절했다.

“여럿이서 몰려가면 되레 역효과가 날 것 같아요. 이 문서를 지닌 제가 교장의 대리인으로서 비밀스럽게 행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상대방도 부담이 덜할 거예요. 보통은 CCTV의 영상을 학생에게 보여주거나 하진 않잖아요?”

금윤은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미는 추울 거라며 자신이 입던 스웨터를 입혀 주며 조심하라는 말을 더했다. 여양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자신감을 표하고는 종종걸음으로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마트료나의 걱정스런 눈빛이 그의 뒤를 조심스레 좇았다.


* * * * * * * * * *


어느 정도의 예상은 했지만, 경비 직원들은 난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부분 퇴근을 하고 당직 근무자를 포함하여 서너 명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긴 했으나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교무주임에게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분량이 너무 많아서 보기가 힘들다며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여양은 단호했다.

“제가 밤을 새서라도 확인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학생을 여기에 밤새 붙잡아두는 것도 그들에겐 곤란한 일이었다. 원칙적으로 밤 10시 이후엔 기숙사 밖을 나가는 것은 물론 방밖을 나가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정문의 유리문은 10시에 직원이 잠그지만, 직원들이 밤늦게 퇴근하거나 순찰을 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문을 잠그지 않은 채로 놔두고 있고, 문 옆의 경비실에 직원 한 사람이 상주하도록 되어 있으나 대부분 10시가 넘으면 숙직실로 들어가 잠을 잔다. 아이들은 10시가 넘어도 태연히 밖을 드나들고 로비에서 자판기 음료를 뽑아 마시고 잡담을 나누곤 했다.

CCTV 영상을 확인한다는 것은 그런 잘못된 관행을 겉으로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직원들이 흔쾌히 보여주고 싶을 리가 없던 것이다. 그들의 고민을 깬 것은 손선지의 결단이었다.

“할 수 없어요. 이건 중대한 문제이고, 살인 사건일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지금 이 사건 때문에 지금 누명을 쓰고 의심을 받고 있는 학생이 있다고요! 교장 선생님도 진실을 규명해서 학생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싶어 하셔서 저에게 대리인의 권한을 주신 거라고요! 저는 부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교장의 대리인 자격으로 요구를 하러 온 겁니다.”

여양이 그렇게 쐐기를 박으니 직원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더 막는다면 살인 사건의 해결을 방해하는 것이며, 교장의 대리인에 협조하지 않는, 즉 교장의 뜻에 거스르는 것이 되는 셈이니까.
아무리 교장이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비서인 교무주임이 교장과 함께 행동하며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있으니까 대리인 역할을 맡는 데에는 그의 승인도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실제로는 교무주임 몰래 받은 직인이지만). 그러니 교직원 중에서 사실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교무주임을 거스를 수 없는 경비 직원들은 그 말에 따라야만 하는 입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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