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혹시, LXG라고 아시나요?”
“유학생들의 사교 모임 아닌가요? 이름만이라면 들어봤는데.”
“그 LXG 아이들과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글쎄요. 워낙 매일같이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서……. 누가 LXG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요. 아, 대표라는 메이브 학생은 잘 알아요. 안다고 해도 가끔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정도지만.”

“혹시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나요?”
“그것도 글쎄요. 메이브와 함께 다니는 유학생들이 사건에 대해 물어보긴 했어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제 마음대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죠. 이렇게 교장 선생님의 대리인이라는 자격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여양은 속으로 한송이 교장 만세를 외치곤 질문을 이었다.

“당시의 일은 기억하고 계시죠? 가령 시신의 얼굴이라든가……”
“얼굴, 이요? 그리 끄집어내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쉽게 잊을 수는 없겠죠.”
“얼굴이 붉었나요? 충혈되어 있었던가요?”

처음 얼굴이란 낱말을 입에 담았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찌푸린 표정을 지었으나 금방 생각을 정리하며 얼굴을 폈다. 눈만 살짝 치켜뜬 자세로 잠시 생각하던 선지는 다시 마주보면서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확실히 그랬네요. 목 주위도 그렇고, 얼굴과 감긴 눈가에 피가 고여서 붉었어요.”

이 부분은 의사의 증언과 일치했다. 더 캐물을 필요도 없었다.

“옷이 찢어지거나 손에 상처 같은 건 없던가요? 나영 선배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은 어디에 있었죠?”
“파자마 차림이었는데 특별히 심하게 구겨지거나 찢어지진 않았어요. 안경은…… 안경은 발치에 떨어져 있었고, 시신을 병원으로 옮길 때 누가 밟을까봐 내가 책상 위에 올려놨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밤새 누군가 그 방에 들어갔다 나갔는지 알 수 없을까요?”
“사실은 알 수가 없어요. 기숙사의 CCTV는 출입구와 옥상에만 설치되어 있어서 내부는 볼 수가 없죠. 처음엔 내부에도 설치하려고 했는데 학생들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어서 취소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렇군요……. 발견 당시 창문 상태는 어땠나요?”
“나도 방이 1층이라 외부인의 침입 여부가 신경이 쓰였는데, 확실히 잠겨 있었어요. 크래들에 꽂혀 있는 학생수첩도 확인을 했으니까, 침입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좋겠죠?”

여양의 어깨가 늘어졌다. 점점 기운도 의욕도 얼음처럼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새로운 증거, 의혹을 풀어줄 새로운 사실은 드러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던 것 아닐까. 나영이 살해되었다면 범인은 바로 옆에 있는 금윤 밖에는 생각할 사람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수학 주관식 문제의 답은 0과 1 같이 단순명료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답이 0.74235와 같이 나왔다면 계산 과정에서 뭔가 잘못하지 않았나 살펴봐야 하지 않은가. 여양은 지금 자신이 명확한 정답을 외면하고서 대신 복잡하고 어려운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보 같고 미련하다. 스스로에 대한 욕설을 퍼부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써본다.

“아! 사진하니까 생각이 났어요!”

선지가 돌연 손뼉을 치면서 소리를 쳤다.

“그게, 처음에 이사회에서 사진을 요구하길래 출력을 해서 주었어요. 전 당연히 뽑아서 준 것인데, 어제 카메라를 통째로 달라고 해서 줬지요. 디지털 카메라니까, 메모리 안에 사진은 저장되어 있던 거예요.”
“그렇다면, 설마 저장된 사진이……?”
“제가 출력하려고 PC로 데이터를 옮겼는데, 그게 아직 저장되어 있어요. 즉 사진을 갖고 있다는 얘기죠.”

가만히 듣기만 하던 승미는 수첩에 조그맣게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건 사실 그림으로, 눈에서 별처럼 과장된 빛을 반짝이는 여양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 여양의 눈에선 정말로 빛이 번뜩이는 듯 했다.

그 다음엔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무리 교장의 대리인이라고 해도 고등학생에게 목을 맨 교우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선지와,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필요하다는 여양이 팽팽하게 맞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유연해 보이면서도 실은 완고함을 잃지 않는 원칙주의자 선지의 승리였다. 보여는 주되 출력은 할 수 없다, 시신이 찍히지 않은 발견 당시 방의 풍경이 담긴 사진은 출력해주겠다, 라는 합의를 도출하고 세 사람은 경비실로 향했다.

기다리던 확실한 물증을 보고 손에 넣게 되어 두근두근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말로만 들었던 증언을 확인하는 것일 뿐이었다. 사진으로도 창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무가치한 일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지민과 선지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음은 분명하지만, 혹시나 착오를 일으켜서 잘못된 증언을 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사진은 모두 아홉 장으로 방문에서 본 목을 맨 시신의 모습에서, 늘어진 발이 바닥에 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사진, 바닥에 눕힌 시신, 잠긴 창문 등을 증거로 남겨놓았다.

그 중에서 여양은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한 후 찍은 빈 방의 모습이 담긴 세 장의 사진을 받아서 경비실을 나왔다. 그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승미가 입을 열었다.

“어때? 뭔가 알 것 같아?”

여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죠. 제가 무슨 명탐정도 아니고, 저 혼자 궁리해봤자 나오는 것도 없어요. 지난번처럼 친구들이랑 상의해보려고요. 좋은 힌트나 단서를 얻거든요.”
“확실히 브레인 스토밍을 하면 혼자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여양은 브레인 스토밍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발길은 자연스레 식당으로 향했고 마침 저녁 배식이 시작되고 있던 참이어서 곧바로 밥을 먹기로 했다. 여양은 수첩을 꺼내 지란과 마미, 금윤에게 밥을 같이 먹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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