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으로 나영이 방에서 자살을 했다는 부자연스러운 점. 기숙사 방은 수첩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그 수첩은 나영의 침대 밑 크래들에 꽂혀 있었어. 룸메이트인 금윤의 것도 마찬가지고. 따라서 그 방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밀실 상태였단 말이지? 교직원이 마스터키로 들어갈 수 있다지만, 일단은 직원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생각해봐야지. 이 섬에서는 경찰이나 다름없는 존재니까. 의사와 경비 직원을 믿을 수 없다면, 우린 여기서 멀쩡하게 살아갈 수가 없을 거야. 자, 그럼 그 다음으로. 그 방은 1층이니까 창문으로 드나들 수는 있을지 몰라. 하지만 아침에 발견했을 때 창문은 잠겨 있었어.”
“잠깐만요, 너무 빠른데요.”

“뭐야, 너 받아 적고 있었어?”
“신문에 실렸던 방의 사진, 더 크고 뚜렷한 컬러 사진으로 받을 수 없을까요? 다른 각도로 찍은 것도 있겠죠?”

“너 우리 라이벌 신문이라도 낼 생각이야?”
“정보는 많을수록 좋아요. 뭐가 맥거핀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체링에게 들었던 말을 금방 흉내내어 자신이 한 말인 것처럼 폼을 잡아봤다. 승미는 맥거핀의 의미를 알고 있는지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대답했다.

“뭐, 좋을 대로 해. 아무튼 문도 창문도 잠긴 상태에서 룸메이트가 옆에서 자고 있는데 목을 매다는 바보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생각하면 금윤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냐. 하지만 더 생각해보면,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받을 것이 뻔한 상태를 만들어놓는 바보 역시 없겠지? 살인을 저질렀다면 증거는 없애야 하고 알리바이는 만들어야 하는 게 당연지사니까. 마침 1층이니까 창문도 열어놓고 나영의 수첩을 방의 바깥에 던져놓는다든지 해서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 아니겠냐, 하는 점이 금윤이 범인일 가능성을 낮춰주고 있어.”

여양은 동의의 뜻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에 돌로리스가 꺼낸 새로운 정보가 더해져. 목에 남은 이중의 상처. 즉 나영은 커튼에 목을 매고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다른 끈으로 목이 졸려서 죽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타살 쪽으로 확실히 기울어지면서 금윤의 범인 가능성이 도로 높아지는 거지. 밀실 안에 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영의 목을 조를 사람은 달리 없으니까.”

밝은 얼굴이 도로 흐려졌다. 여양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다. 자신이 겁도 없이 금윤의 무죄를 밝혀내겠노라 덤벼들었지만 솔직히 자신감과는 별도로 그 일을 해낼 가능성이 높은지를 냉정하게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 어떻게 생각해? 이제는 네 쪽에서 말할 차례야.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왜 너는 길금윤이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너희들이 언제 그렇게 서로를 믿을 만큼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금윤이 주장한 알리바이 정도는 들었겠지?”

승미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 여양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자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무엇을 들었는가.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다. 신문에서 읽은 기사, 금윤에게서 들은 말. 그것이 전부. 결국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무모한 용기와 근거 없는 믿음 하나만 갖고 덤벼든 것이다.

돌연 앞이 막막하고 두려워졌다. 겉에서 보면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숲이지만 들어가면 갈수록 길을 잃은 숲은 어두운 미지와 공포의 미궁으로 변한다. 여양은 숲 한 가운데에 들어선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달은 길 잃은 방랑자였다.

“흠. 네 얼굴을 보니 대답은 안 들어도 될 것 같아. 하지만 앞으로 어쩔래? 우리 신문부의 기자들도 취재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거야?”

무슨 뜻이냐는 표정을 짓는 여양에게 승미는 좀 더 알기 쉽게 말했다.

“이미 우리는 나영의 시신을 발견한 직원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지만, 상부의 지시라며 대답을 거부했다. 의사 선생님도 마찬가지고. 그들의 입을 열려면 이사회의 힘이 필요해. 아니면 적어도 교장 선생님 정도의 ‘빽’이 있어야 한단 말이지.”

저도 모르게 쥐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앉아 있을 순 없어요. 뭐라도 해야지. 이사회의 승낙이 필요하다면 가서 부탁이라도 해볼 게요.”
“아서라, 아서. 이사회가 일개 학생을 만나줄 리도 없어. 여왕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여왕도 없는 때이고. 학생회장이라면 되려나. 일단 빈나련을 설득해서 교장을 만나러 가.”
“교장 선생님을……?”

승미가 안경을 고쳐 쓰며 약간은 교활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부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란 기대감을 안은 미소였다.

“그래. 로리 교장을 구워삶아서 대리인 자격으로 사건의 조사를 맡는다면 직원들도 무시하지는 못할 걸. 이제 여기까지 알려줬으니 신문부 취재기자인 나의 동행을 거부할 순 없겠지?”
그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지만, 여양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숲 속을 헤매다가 반가운 표지판을 발견한 셈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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