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뒤쫓은 진실
학생회관 건물은 서도의 서쪽 끝에 있다. 현관이 있는 정면으로는 학교 건물, 남쪽으로는 도서관으로 향하는 벽돌길이 깔려 있고 길의 양쪽은 과수들이 가로수의 역할을 겸하며 늘어서 있다. 건물 뒤쪽, 서도의 가장자리에는 포도와 감귤밭이 펼쳐져 있어 과일들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영글었다.
영화궁의 학생회관은 순수하게 학생들을 위해 제공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대학교의 것과 비슷했다. 학생회실, 회의실, 음악과 연극 등의 연습실, 특별활동 부실, 요리연습실, 과학 실험실 등이 모여 있으며 여럿이 모여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작은 회의실과 개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습실이 구비되어 있어 학생들은 특별한 제한이 없이 수업이 끝난 후나 휴일에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이 시험공부를 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중고등 및 대학교와는 달리 영화궁의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의 역할을 비교적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학생들에게 충분히 공부할 장소를 제공해주는 학교의 넓고 편리한 시설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영화궁에서는 메뚜기족이나 자리 지키기 같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으니, 오히려 시험기간이라고 해도 학습실에는 자리가 남아돌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여양은 학생회관의 복도를 걸어가며 들려오는 온갖 소음과 잡음에 귀를 기울였다. 특활 부실이 늘어선 양쪽 문 안에서는 토론하는 소리, 잡담을 나누는 소리, 웃음소리, 말다툼을 하는 소리, 기타 줄을 튕기는 소리, 앰프에서 나는 잡음, 장구를 두드리는 소리, 자작 라디오에서 나는 잡음, 물이 끓는 주전자 주둥이에서 나는 피리 소리, 믹서를 돌리는 소리,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소리 등이 한데 뒤섞여 5.1채널로 울려 퍼졌다.
복도를 걸어가는 자기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리듬으로 삼아서 듣고 있자니 불협화음을 절묘하게 엮어낸 인더스트리얼 장르의 음악을 듣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신문부는 지하 1층에 있었고, 교실 두 개 정도의 크기의 큰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인쇄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조용하지만 분명히 신문의 인쇄를 시작하면 지금껏 들린 모든 소음을 잠재워버릴 정도의 큰 소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노크를 해봤지만 응답이 없어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 보니, 안에는 열띤 토론을 하거나 기사 작성에 여념이 없는 여고생 기자들의 정열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책상 위에 신문을 깔아놓고 자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한 명, 교과서와 참고서를 펼쳐놓고 공부 아니면 숙제를 하는 사람이 두 명 있을 따름이었다.
“오! 벌써 왔네.”
유일하게 알고 있는 얼굴, 숙제를 하던 제갈승미가 고개를 돌리며 아는 척을 했다.
“잠깐만 거기 앉아서 기다려줄래? 숙제가 다 안 끝나서.”
여양은 순순히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비록 아무도 신문부원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부실은 확실히 신문부 다웠다.
여기저기 쌓인 종이와 신문, 모니터에 잔뜩 붙은 포스트잇, 화이트보드를 빼곡히 채운 기사의 제목이나 회의 내용 같은 메모들. 환기가 잘 안 되는 지하실다운 퀴퀴한 냄새와 특히 종이와 잉크 냄새가 가득했다.
멍하니 턱을 괴고 앉아 있자니 숙제가 끝났는지 둘이는 책을 덮고 손가방에 넣는다. 한 학생은 작별인사를 나눈 뒤 그대로 부실을 나갔고, 승미는 취재수첩을 들고서 여양의 옆으로 와서 앉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안경을 밀어 올리며 눈에서 기대감이 담긴 빛을 뿜어내며 물었다.
“자, 그러면 무슨 일로 나를 만나자고 하는지 들어볼까?”
“사실은, 기대하신 것과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원나영 선배 사건 때문에 물어볼 게 있어요.”
“호오? 그 사건은 왜?”
“금윤 선배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죠?”
흐음, 하고 승미는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반쯤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너하고는 밀고 당기기 같은 게 안 될 것 같다, 라고 반쯤 혼잣말처럼 운을 띄우고는 말했다.
“사실은 알고 있어. 네가 그 사건에 흥미를 보이는 이유도 추측이 되고. LXG와 있었던 일 말이지? 우리 부원 하나가 그걸 목격하고 대화를 적어왔어. 걔의 기억과 속기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었어.”
“저도 대충 예상은 했어요. 신문부에서 이 사건을 모를 리가 없다고. 그래서 말인데, 돌로리스가 언급한 증거와 사진에 대해서 신문부에선 알고 있었나요?”
“아니, 전혀. 만약 우리가 알았다면 그걸 신문에 싣지 않았을 것 같아? 어떤 외압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렇게 쉽게 굽히지 않아.”
“그렇지만 그 사건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지 모른다는 의혹은 그 전부터 있었어요. 그리고 금윤 선배가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잖아요. 그런 의혹을 신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우리가 신문을 통해 길금윤이 범인이 아니라고 기사를 쓸 수는 없어. 왜냐하면 현재로는 금윤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없는 것만큼이나 금윤이 범인일지 모르는 가능성도 있거든. 여기서 한번 정리해볼까?”
승미는 수첩을 펼쳐 잠시 뒤적거리더니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우선 주변의 증언. 우리는 금윤을 비롯해서 평소 나영과 친하게 지냈던 반 친구들을 골고루 인터뷰했다. 그들 모두 하나 같이 나영이 목숨을 끊기 전날까지 밝고 기운차 보였다고 말했어. 이전에도 전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자살을 암시하는 언행을 보인 적이 없다고 증언했지.”
여양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날 저녁시간에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본 스스로가 입증할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미소와 목소리엔 꾸밈이 없었고 슬픔을 감춘 기색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