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아침, 등교를 하여 자기 자리로 간 금윤은 순간 멈칫했다. 책상 위에는 몇 장의 포스트잇과 쪽지가 붙어 있었고, 책상 한 가운데에 굵은 매직펜 같은 걸로 커다랗게 써놓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살 인 자」

쪽지에는 온통 욕과 비난과 저주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네가 죽였지?’ 같은 추궁부터 시작하여 ‘나영이를 죽인 건 너야!’ 같은 단정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문체는 다양했으나 품고 있는 내용은 동일했고, 한 낱말로 압축한다면 바로 책상에 쓴 글자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 해놨는지 의자 위엔 압정들이 날카로운 침을 뻣뻣하게 쳐들고 있었고, 의자의 등에는 「나는 친구를 죽인 년입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압정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금윤은 말없이 의자 등에 붙인 종이를 뜯어내고 의자를 살짝 들어 기울였다. 하지만 압정은 달라붙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고, 자세히 살펴보니 본드로 붙여놓은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붙인지 오래 되지 않아 완전히 굳진 않았기에 볼펜을 꺼내어 밀어내듯 떼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의자에 앉아 포스트잇이며 테이프로 붙인 쪽지들을 다 걷어내었지만 책상 위의 글자는 지울 수가 없어서 연습장을 올려놓았다.

그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책상의 위치가 조금 변한 듯이 느껴졌는데 자세히 보니 금윤의 자리를 중심으로 그 앞뒤좌우에 있던 책상들이 훨씬 더 멀리 물러나 있었다. 마치 금윤의 주위 공간에 결계가 쳐져 근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들 스스로가 멀어진 것이고 근접을 못하는 건 금윤 쪽이다.

사례 2.

담임선생님이 오시고 조회시간이 되어서야 반의 분위기가 이전과 흡사해졌다. 그 전까지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무언가 수군대며 가끔 불길한 눈빛을 금윤을 향해 보내곤 했다. 나이프 사건으로 인한 고초를 겪고 돌아온 후에 자신을 미쳤다고 여기며 꺼리던 아이도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반갑게 맞아준 친구들도 있었다. 그 대표자격인 사람이 바로 나영이었는데, 그는 이미 세상에 없고, 다른 친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돌변한 뒤였다.

어쩌면 이 글자와 압정을 준비한 건 그들일지도 몰랐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마음의 상처를 깊게 받았고 금윤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테니까. 하지만 그 근거가 떠도는 소문일 뿐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현 상태에서 금윤은 용의자로 의심을 받을 뿐 아무런 정황도 증거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소문이 퍼진 상태에서 이미 금윤은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군중은 늘 희생양을, 먹잇감을 찾는 법이다. 자기들의 안전과 단결을 위해, 공고한 체제의 수호를 위해 기꺼이 제물을 단두대에 올려놓는 것이다. 혼자라면 하지 못할 그런 생각과 행동이 모두 함께라는 이유도 너무나도 쉽고 강력하게 전파되고 실행된다. 눈사태처럼 한 번 일어난 이상 중간에 사그라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래서 조회가 끝날 무렵 한 아이가 용감하게 손을 들고,

“선생님! 저 무서워서 수업 못 받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사람 죽인 살인자랑 함께 공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라고 말했을 때 아이들은 맞아요, 맞아요 하고 너도나도 동의의 의견을 표명하였다. 담임 선생님은 조용히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으나 그 역시 금윤을 확실하게 변호하지는 못했다. 그러긴커녕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원나영 학생에 대한 문제는 이사회에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명확한 발표가 있기 전까지 기다리세요.”

담임의 말은 학생들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사회는 자살로 결론짓고 쉬쉬하며 덮어두려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부검이나 현장조사 같은 것은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방은 다 치웠고 시신은 병원에 안치되어 부모의 인도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이사회의 미온적이고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한 대처는 학생들의 의혹을 더 부풀려줄 뿐이었다.

학교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알려지면 학교의 평판이 나빠진다. 영화궁 고등학교는 재벌가나 정치인 등의 자녀가 많이 다니고 있어 그들의 후원에 의지하고 있어 학교의 이미지를 좋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사회 측은 조사를 하지 않고 경찰도 부르지 않은 채 덮어두려는 것이다. 이것이 학생들의 추측이다.

결국 아이들은 말로만 그랬을 뿐 실제로 수업을 거부하거나 교실을 나가지는 않았다.

사례 3.

괴롭힘 다음은 따돌림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아이들은 교실 안에 마치 금윤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금윤이 앉아 있는 책상과 의자를 포함해서 그 주위의 원형 공간이 거대한 기둥 혹은 구멍이 있는 것처럼 아이들은 주위를 둘러서 이동을 했고 자기들끼리만 웃고 떠들고 숙제를 베끼고 서로의 연습장에 낙서를 하면서 놀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모두들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교실을 빠져나갔고 금윤 혼자만이 남았다. 이미 밥을 먹을 생각도 들지 않던 금윤은 책상 위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묻었다. 뱃속은 허전했으나 식당에 가서 전교생에게 지금과 같은 취급을 받느니 굶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차가운 시선, 일부러 무시하는 태도, 등 뒤에 칼을 감춘 듯 도사린 악의.

교실 안은 그런 것들로 가득 차 끓어 넘치는 냄비 속인 것만 같았다. 몸이 터져나갈 듯 답답하다. 하지만 금윤은 참고 또 참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바로 이 모든 오해가 깨끗이 풀어질 때가 곧 올 거라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아무런 근거도 이유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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