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님아~! 우리 여양이 도서관에 있었쩌? 책 빌리려고?”

마트료나는 발을 구르며 경쾌하게 달려오더니 여양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아이를 얼르는 엄마처럼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여양의 기분은 거기에 맞춰줄 정도로 좋지를 않았다.

“으응. 오늘 나온 신문을 보려고.”

마트료나의 얼굴에도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자살 사건……?”

여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해? 난 아무래도…… 아무래도 이상해. 우리 그 원나영 선배를 그날 저녁에 만났잖아? 그렇게 밝게 웃고 친구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그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내 생각도 너랑 같아. 하지만 그게 바로 문제의 원인이야. 그 때문에 금윤 선배가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어.”

여양의 심각한 목소리에 마트료나의 얼굴도 따라서 굳어졌다. 마주보는 그의 눈동자는 차갑고 눈빛은 매서웠다. 마트료나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무, 무슨, 뜻이야?”
“사실은 직접 만나서 물어봐야 알 일이지만, 덕분에 금윤 선배는 지금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된 셈이야. 전혀 자살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자살을 했다면, 같은 방에서 살고 있고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의심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너…… 너 그럼 설마 금윤 선배가…… 나영 선배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
“아직 그렇다고는 말 안 했어. 일단 직접 본인에게 물어볼 생각이야.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내게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한 가득 믿음이 있거든.”
“하지만 금윤 선배가 그런 짓을 했다면 어째서 자기가 발견을 해서 신고를 하는 거야? 눈에 띄고 의심을 사는 일을 일부러 할 필요가 없잖아?”
“왜냐하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갑자기 체링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어느새인가 두 사람의 뒤에 와서 서있었다. 뜻밖에 놀라는 표정들을 보자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얼른 변명했다.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두 분이 보여서 말을 걸려고 했다가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아까 꺼낸 말의 뒤를 이었다.

“우리가 사는 기숙사의 방은 불완전하게나마 밀실이거든요. 방을 여는 열쇠는 안에 사는 두 사람의 학생수첩. 그러니 둘 다 방 안에 있으면 밖에서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죠. 하지만 경비실에는 비상용 마스터키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밀실이라고 표현했어요. 그래도 경비직원분들은 경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니 일단 믿어야겠죠.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한정한다면, 방 안에서 일어난 사건인 이상 최초 발견자는 룸메이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네 말 대로야. 그러니 만약 룸메이트를 죽이고 싶다면 절대로 방 안에서 죽여선 안 되지.”

여양의 말에 체링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고 말했다.

“그렇지만 신문을 보면 금윤과 나영 선배의 방은 1층에 있어요. 창문으로 출입이 가능한 상태죠. 창문은 안에서 잠그도록 되어 있으니 그날 잠겨 있었는지 여부를 알아볼 필요가 있어요.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우발적인 범행인 경우가 있죠. 여양이 말한 대로 계획된 범행이라면 절대로 방 안에서 살해할 리가 없지요.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자수를 하고 싶지 않아 자살로 위장하는 거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금윤 선배가 살해했다면 그건 사전에 벼르거나 계획했던 게 아니란 말이지. 하긴 아무리 어리석어도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방 안에 둘만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짓을 할 리가…….”
“자살로 위장했다면 시체에 폭행 등의 흔적이 있을 거예요. 신문엔 검시나 부검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알 수가 없지만요.”
“요즘 분위기가 흉흉해. 이사회에서 그냥 덮어두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여양은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머리를 긁적이고 발로 바닥을 문질렀다.

“둘 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여양과 체링은 무심코 돌아보았다. 마트료나가 반쯤은 화가 나고 반쯤은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가 죽였니 안 죽였니, 어떻게 그런 험악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니? 금윤 선배가 나영 선배를 죽일 이유도 없고 증거도 없잖아. 그런데 벌써 범인이라도 된 것처럼 함부로 막 말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아니, 마미. 그게 아니고, 우린 그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보는 거야…….”
“변명은 듣기 싫어. 너희들도 죽은 사람을 놓고 뒷담화를 하는 애들이나 다를 바가 없어!”

마트료나는 고집을 부리는 아이처럼 등을 돌렸다. 여양은 어떻게 말해야 마음을 달랠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래, 금윤 선배를 직접 만나서 들어보자!”

여양은 얼른 화제를 돌리기 위해 금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만나자. 지금 어디에 있니?」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답장을 타블렛으로 적어 보냈다.

「도서관 앞이에요. 멀지 않으면 오세요.」
「내가 갈게.」

메신저로 대화하는 것처럼 답장이 금방금방 왔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석양을 등에 지고 한 소녀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그 몰골이라 불러야 할 금윤의 상태를 보고 토라졌던 마트료나마저 할 말을 잊어버렸다.
거기엔 온몸이 푹 젖은 채로, 당장이라도 쓰러질듯 힘없는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인생에 지치고 영혼이 닳아버린 사람처럼 공허한 표정을 지은 길금윤의 모습이 있었다.

여양을 보자 희미한 미소를 띄웠지만, 당장이라도 혼이 빠져나갈 듯한 얼굴이었다. 여양이 달려나가자 그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세상에! 이게 무슨 꼴이에요? 바다에 빠지기라도 한 거예요?”

금윤은 그저 크게 숨을 들이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잠시만 앉아서 쉬고 싶은데, 안 될까?”

물론 그들은 그렇게 했다. 도서관 옆에 펼쳐진 잔디밭에 앉아서 그들은 잠시 바다 저편으로 가라앉는 태양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바다와 하나가 되어 녹아드는 태양을 떠나보내는 동안, 이미 반대쪽에는 달이 어두워지는 하늘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공포와 죽음을 낳았던 밤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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