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자신이 눈을 뜨고 있던 동안에 원나영은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사람이 멀쩡히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은 죽음을 선택했다니, 그것도 당장이라도 달려갈 수 있는 짧은 거리에서.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군가는 태어나고 동시에 누군가는 죽는다. 인간의 역사와 긴 시간상에서 봤을 때는 늘 일어나고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직접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죽음을 겪었을 때 느끼는 안타깝고 쓸쓸한 심정은 비할 데가 없었다. 그건 아마도 몇 번을 겪어도 쉽사리 무뎌지지 않으리라.

여양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나영과의 짧은 만남을 떠올렸다. 안경테의 붉은 색이 선연하게 남아 있었고, 새침하게 웃는 얼굴과 살짝 들어간 보조개, 부끄러움을 타는 어린아이처럼 꼼지락거리던 손가락과 애교를 부리듯 앙증맞은 웃음소리가 또렷하게 재생될 정도로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스스로 목을 매었다? 그것도 자기 룸메이트가 옆에서 잠에 든 사이에? 불과 열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곁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자살이라니, 그것도 방 안에서 자살이라니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전날 보았던 그의 모습은 죽음을 생각한 사람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충동적인 자살 행위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커튼을 뜯어서 목에 묶고서 발이 땅에 닿는 낮은 자리에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칼로 손목을 긋는다면 모를까, 충동적으로 할 만한 행동이 아니다.
차라리 옥상에 올라가서 몸을 던지는 게 더 쉬울지도.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동안 시간이 있고, 그 사이에 충분히 생각한다면 충동이나 흥분을 가라앉힐 수는 있을 것이다.

커튼을 뜯고, 이것을 매달아서 목에 묶고, 키보다 낮은 높이에서 몸을 늘어뜨려 목숨을 끊는다는 일련의 행위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로우며 ‘죽기조차’ 힘든 일이다. 최소한 갑작스럽게 일어나 즉시 목숨을 잃은 사건은 아닌 것이다. 또한 바로 옆에서 룸메이트가 자고 있다. 어지간한 소리만 나도 잠에서 깨어 자살을 하려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을 비단 여양 혼자만 한 것은 아니었고, 바로 그 이유로 금윤이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룸메이트가 코앞에서 자살을 했다니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에서 시작한 의혹은 이내 금윤이 나영을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게 아니냐는 의심으로 변해갔다.
신문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더라는 식으로 짧게 언급만 해놨지만, 이미 이 생각은 전교에 빠른 속도로 퍼져 있은 후였다. 닭장 안의 닭들 사이에 조류 독감이 퍼지듯 소문은 학생들의 마음 속으로 급속히 전염되어 그런 생각을 확신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여양은 나중에 더 자세히 읽어볼 생각으로 복사기로 가서 자살 관련 기사 부분만 복사를 했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어 금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만나고 싶은데, 어디에 있어요?」

아마도 금윤은 자기 방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다짜고짜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는 행동은 예의도 아닐 뿐더러 지금처럼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에선 부담스러워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신문부며 방송부며 학생회며 온갖 곳에서 그를 만나려고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 안에 얌전히 앉아서 불청객들을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체링과 잡담을 나누다 도서관을 나왔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나중에 연락을 하기로 하고 일단 금윤의 연락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메시지가 왔다는 글이 떠서 얼른 창을 띄었더니 뜬금없이 보드 게임부에서 놀다 간다는 지란의 글이어서 김이 빠졌다. 이런저런 특활부를 돌아다니더니 이제는 보드 게임인가. 여양은 그런 특활도 인정해주는 학교가 좋은 건지 무관심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일정 기준의 학생과 담당 교사만 있으면 클럽 개설은 가능하고 다른 학교와 다른 심사나 까다로운 조건 같은 게 없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이 학교에는 요리부, 다도부, 보드 게임부, 패션부에 인형 연구부와 서브컬처 연구부까지 존재하지 않던가.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이슬람교도인 무슬림부도 있다니까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마침 특활 생각을 하다 보니 아직 어느 특활부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딱히 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전공이 있다보니 연극부에라도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수첩으로 검색을 했다.
학교의 조직도, 학생회 아래 특활부서 게시판. 학생 수는 적은 주제에 특활부는 무척 많은 편인데, 담당 교사만 섭외(?)하면 개설이 쉽기 때문에 한 명의 교사가 여러 클럽의 고문을 중복해서 맡은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부원의 숫자도 개설 기준인 다섯 명밖에 없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띄었다. 대체 인형 연구부는 무엇을 하는 부서인지. 인형을 수집하는 건지, 만드는 것인지, 여양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인원수가 많은 부서는 학업과 관련이 있는 영어 회화, 수학, 화학, 생물, 문예, 역사 연구, 컴퓨터 등이 있고 취미 분야에서는 독서, 합창, 합주, 원예, 사육, 요리 등이 인기였다. 신문, 방송이나 운동 분야 클럽은 인지도는 높은 반면 힘들기 때문에 참여자가 적은 편이었다.

또 메시지 도착 공지가 떠서 들여다보니 마트료나에게서 온 것이었다. 어디냐고 물어봐서 도서관이고, 길금윤을 만나려 한다고 대답하자 같이 만나자는 답장이 왔다. 도서관 앞에 서서 잠시 기다리니 손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마트료나의 모습이 보였다.
홀가분한 모습과 가벼운 발걸음을 보자 숙제나 예복습을 위한 책 한두 권만 들고 다니면 되는 이곳 생활이 정말 편리함을 거듭 느낄 수 있었다. 자기 또래들은 지금도 무거운 책가방에, 급식이 안 되는 학교는 도시락에, 또 어떤 곳은 신발주머니나 체육복마저 싸들고 주로 높은 산 중턱에 있는 학교로 낑낑대며 등하교를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자신의 행복한 처지에 감사해야 겠다는 마음이 든다. 여고생들의 굵은 다리는 학교의 입지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더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우스개로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최소한 이 학교에 널려 있는 날씬하고 예쁜 아이들을 보면 말이다.
보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여왕님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긴 아이로 전락하는 이 아름다운 소녀들의 화원에서, 그 중에서도 가장 빼어나게 아름다운 소녀를 마주보며 느끼는 이 감정은, 분명 나이와 성별마저 초월해서 와닿는 공통된 부분이 있으리라.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탐미, 가벼운 흥분과 설렘, 여기에 달라붙는 약간의 질투와 소유욕 같은 거친 잔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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