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깊숙이 퍼져나갔다. 여고생들 사이에서 비밀이라는 낱말은 그리 큰 의미도 강한 구속력도 가지지 못한 허울에 불과했다. ‘이건 비밀이야’, ‘너에게만 하는 얘긴데……’,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 같은 머리말을 달고 시작하는 비밀 이야기들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소녀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없는 고립된 세상에서 그들은 고전적인 방식인 밀담(주로 교실과 식당의 구석자리와 화장실과 기숙사 뒤뜰에서 벌어지는)과 쪽지(읽고는 바로 찢어서 버리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에 의존했다.
교내에 비치된 학습용 컴퓨터와 학생수첩을 통해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는 있지만 공개된 게시판에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저 소문에 대한 간략한 언급은 있었으나, 쉬쉬 하는 은밀한 분위기를 금세 눈치 채고는 꼬리를 감추며 말을 흐리기 일쑤였다.
그 소문의 내용은 아주 짧고 간단명료했다. 「자살했다던 원나영은 실은 살해되었다. 그 범인은 바로 룸메이트이자 나이프 사건을 일으킨 길금윤이다.」
그렇다면 왜 소녀들은 이러한 의혹을 겉으로 드러내어 사실여부를 명확히 밝히자고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폐쇄된 사회를 지배하는 이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에서 기인한다.
우선 이사회는 이 사건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자는 의견을 묵살하고 스스로 처리하여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는 개교 이래 한 번도 외부인(즉 남성)을 교내로 들이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러하겠다는 이사회의 뜻에 다른 것인데, 가족의 면회나 취재 및 인터뷰, 외부 강사 초청, 졸업식 등의 행사를 위해 교내로 들어온 소수의 외부인도 전원 여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자의 비율이 높은 경찰의 진입을 거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만약 경찰측에서 학교의 방침을 이해하여 여경만을 보내겠다고 해도 거부하겠다는 말인지, 그에 대한 이사회의 입장은 밝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질문을 감히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동안 이사회의 이러한 방침에 반발한 학생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학교가 물리적으로도 폐쇄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모든 통신망마저 장악되어 있음을 알고는 무력함을 깨달으며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실감하는 예정된 결말을 맞곤 했다.
설치된 모든 전화는 내선으로 이어져 있어 심지어 119를 눌러도 교내의 경비실로 연결이 된다(이것이 법을 위반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무시당했다). 인터넷은 오직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그것도 실시간 감시(어떤 웹사이트에 접속했는가는 기본이고 키보드로 입력한 글자까지 전부 기록되는데, 역시 이것이 보안상 문제가 있다는 항의는 가볍게 무시당했다)가 되고 있는 소수의 컴퓨터를 통해서만 이용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딴짓’을 못하게 하려고 철저하게 통제된 상태였기에 학생들은 자기 미니홈피에 몰래 접속만 해도 경고창이 뜨는 것을 보고 질색을 하곤 했다.
학교의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사건이 일어난지 사흘이 지난 월요일, 이미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있으면서도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사회에선 덮어두려 하고, 교사들은 수수방관이니 학생들은 마음껏 추측과 의심과 억측과 오해를 잔뜩 뭉쳐서 눈싸움을 하듯 사방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 눈덩이에 얻어맞는 것은 오직 한 사람,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있는 길금윤이었다.
도서관의 1층 로비에는 신문을 철해놓고 있어 무료로 볼 수 있었다. 교사들을 위해 교무실로, 직원용으로 직원 휴게실과 경비실로 배달되는 분량 등을 제외하면 사실 학생들이 신문을 볼 수 있는 공간은 도서관이 유일했다.
몇 대 되지 않는 TV와 함께 섬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신문이지만, 지리적 특성상 아침에 발간되는 일간신문은 저녁때에나 볼 수가 있었다. 식재료 등의 물품을 배달하는 선박이 토,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하루에 한 번 오는데, 주로 오후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오기 때문에 그때 신문이 같이 도착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입수가 쉽지 않은 신문은 며칠 밀려서 한꺼번에 오기도 하는 등 수급이 원활하지 않는 상태였다. 영화궁 고등학교는 약 열 종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만 매일 오는 것은 절반 정도였고 그 외에는 이삼일 치를 몰아서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월요일 오후에 도서관에 가도 원하는 신문을 볼 가능성은 낮았다. 그렇지만 여양이 지금 보려고 하는 신문은 다름 아닌 학교 신문이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없었다. 영화궁 고등학교의 학교 신문은 신문부 주임 교사가 발행인 자격이고 신문부 학생들이 취재 및 기사의 편집을 도맡아서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발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학교에 큰 사건이나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호외를 발간하고 있으며, 문예부와 합동으로 문집, 행사 안내 책자 등을 만들기도 하고 취재에는 방송부 등 다른 부서와 협력하기도 한다. 기사의 편집 및 칼럼 등에 있어서는 학생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사실 신문부는 학생회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클럽으로 학생회 회의에 참여하여 회의록 작성 및 결과보고에 대한 협력을 하고 신문지상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듯 학교 신문이 단순히 학생들의 클럽 활동일 뿐만 아니라 학교의 공식적인 보도 매체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을 접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한 관심사가 얼마나 폭발적인지 알 수 있는 증거로 오늘 나온 신문은 나온지 반나절도 안 되어 씨가 마른 듯 자취를 감춰서 찾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인기가 없어서 교사(敎舍) 1층 로비와 식당, 기숙사 입구에 설치한 배포대에 1주일 내내 먼지를 덮으며 색이 바랜 채 쌓여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여양은 신문이 남아 있는 마지막 장소인 도서관에 온 것이다. 신문부원과 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찾아가서 남은 게 있으면 달라고 부탁할까 생각도 했지만 인터뷰를 거절했던 주제에 너무 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막상 오니 그런 생각이 도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벌써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신문을 펼쳐 놓고 마구 떠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