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컵을 두 손으로 쥐고 만지작거리던 마트료나가 마침내 푹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힘없이 늘어졌던 눈에 총기를 되찾고 있었다.
잠에 취하고 어둠에 두려워하며 선배들에게 억눌려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기만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트료나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인질로 붙잡힌 채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던 그 얼굴, 늘 미소 띤 얼굴로 맞아주던 그 얼굴, 슬프고 외로울 때 언제나 옆에 있어준 그 얼굴. 여왕님의 얼굴. 기억 속의 그가 속삭인다. 그 말이 겁쟁이인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며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입을 연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전 LXG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건배를 권하던 메이브의 손이 공중에서 멈추더니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초록빛 눈동자가 파충류의 것처럼 싸늘한 냉기를 담고 마트료나의 흑갈색 눈동자를 쏘아보았다.
“어째서지?”
참다못한 돌로리스가 일어나서 마트료나를 향해 다가갔다. 비록 키는 더 작았으나 무시무시한 기세에 위축되어 마트료나는 절로 몸을 움츠렸다.
“야, 너 미쳤어? 이런 기회를 거절하겠다니, 제정신이야? 모든 유학생들이 들어오고 싶어서 애원하고 매달리고 있는 거 몰라? 설마 너도 그 빈나련의 팬이야? 그게 아니라면 감히 신입생 따위가 LXG를 거스르려 할 리가 없는데.”
아니라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아름답고 당당한 빈나련의 모습에 어느 정도 마음을 빼앗긴 것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나련과 메이브가 라이벌 관계라는 건 영화궁의 학생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그렇지만 다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메이브가 자신의 눈에 담긴 힘을 자신하며 사람을 예단하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트료나에게도 여자의 직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메이브를 비롯하여 카밀리아, 돌로리스, 자신을 데리고 온 두 사람까지.
이 사람들에게는 자신과 맞지 않는 느낌과 분위기가 있었다. 야심과 욕망, 독선과 우월감이 느껴졌다. 이들이 여왕이 되고 영화궁을 지배(자신들의 표현에 따르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생각해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LXG에 대한 소문은 퍼져 있었다. 유학생이 아닌 한국 학생들을 깔보고 얕잡아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골라서 집단 괴롭힘을 주도하고, 교사들로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거물들의 딸임을 자랑하며 교칙을 무시하며 멋대로 행동하고 있다든지 하는 등등.
“흠…….”
메이브는 잠시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자신의 예상보다 더 심지가 굳은 아이였다. 마침내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바막과 스웨터가 마트료나의 양팔을 붙잡았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겐 벌을 줘야지. 제법 자신이 있어 하는 모양인데, 얼마나 더 고집을 부릴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며 메이브는 손을 뻗어 마트료나의 파자마 위를 더듬었다. 마트료나의 얼굴빛이 붉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피부 위의 잔털들이 일제히 일어섰다. 손가락이 상의의 단추를 풀고는 열어 젖혔다. 그리곤 하의를 단숨에 발목까지 내렸다. 학교에서 지급한 평범한 디자인의 연한 살구색 브래지어와 하얀색 팬티가 촛불의 빛을 받아 수줍게 드러났다.
으윽, 하고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으나 양쪽에서 단단히 붙잡고 있어서 아무 소용없는 반항일 뿐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카밀리아가 손을 등으로 집어넣어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었고, 돌로리스가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메이브의 손가락은 배꼽 주위를 훑었다.
“아주 좋아. 날씬하고 군살이 없어. 돌로리스처럼 야위지도 않았고, 카밀리아처럼 단단한 근육질도 아니야. 손톱으로 긁으면 벗겨질 듯 부드러운 피부야.”
메이브는 찬탄의 말을 늘어놓으며 마트료나의 허리와 배를 더듬어갔다. 마침내 브래지어가 바닥에 떨어지며 감추었던 작은 비밀이 드러났다. 소녀의 작은 손에도 쏙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였다. 카밀리아가 히죽 웃었다.
“역시 동양인의 피가 섞여서 그런가. 가슴은 작은데? 그래도 롤리타보단 크군.”
짓궂은 마지막 말에 돌로리스가 금방 반응을 보였다.
“그 작은 가슴을 만지고 핥고 빠는 게 누구인데 그래?”
“그건…… 네가 제일 만만한 상대니까 그렇지!”
“흥! 내 테크닉이 최고라고 말했던 건 또 어디의 누구시더라?”
돌로리스가 심술궂게 받아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와중에도 메이브의 거침없는 손가락은 이제 팬티의 양쪽 허리께를 붙잡고 있었다.
“자, 이 속은 어떨까?”
“그만둬요! 그만두…… 으읏!”
단호하게 말했으나 마트료나의 팬티는 무릎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완전히 나신이 된 것도 아니고, 강제로 벗겨진 추한 모습으로 마트료나는 다섯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폭우처럼 쏟아져 몸 곳곳을 파고드는 수치심과 굴욕감으로 차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흐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영 아니군. 이제 우리 LXG에 반항하는 게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 알겠지?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이것도 우리 환영식의 일부라고. 너도 곧 우리와 함께 즐기게 되겠지. 그때가 되면 내 이 손가락이 그리워서 찾아오게 될 거야. 후후.”
메이브의 자신만만하고 요염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카밀리아와 돌로리스의 손가락이 마트료나의 몸을 탐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메이브는 술을 입에 대었다.
“잘못했다고, 받아들여 달라고 부탁할 때까지 멈추지 마.”
메이브가 두 사람에게 명령했다. 카밀리아는 말 안 해도 그럴 거라며 입맛을 다셨다. 마트료나는 신음소리 하나 흘리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찢어져 피가 쏟아져 나올 듯 연약한 입술이 파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