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방은 어땠어요?”
“우리 기숙사 방의 절반 정도 크기야. 화장실도 따로 있어서 지내기에 나쁘진 않지만 역시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으니…… 경비 직원들이 주는 책과 신문을 보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어. TV도 라디오도 없으니까. 밥도 그 사람들이 갖다 주었고.”
여양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정말로 감옥살이나 똑같은 대접 아닌가. 겨우 고등학생에게 이런 가혹한 처벌이라니, 인권 침해 아닌가? 하지만 여양은 자신의 이런 심정과 불합리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금윤이 인터뷰를 통해 그가 겪은 현실을 드러낸다면 이에 분노한 학생과 교사가 이사회에 불만을 제기하여 이런 잘못된 제도가 없어지도록 만들 수도 있겠다, 라는.
잠시 말없이 세 사람은 식판을 들고 저녁으로 뭘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배식대로 들어갔다. 식당은 늘 뷔페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덜어서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패스트푸드 점의 트레이처럼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식판을 하나씩 들고 배식대로 가면 밥, 국, 반찬 같은 한식만이 아니라 국수, 우동 등의 분식에 빵, 피자, 샐러드 등의 양식도 각각 원하는 양을 접시에 담을 수 있도록 해놓았고 물만이 아니라 차와 과일 주스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도록 했지만 식당 안에 음료수 자판기는 없었다.
여양은 녹차와 물을 반씩 섞어서 컵에 담으며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음료수 자판기를 없앴다’는 안내 문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차피 매점에 가면 자판기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식당에서 이런 성의를 보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자리에 앉고 보니 우연처럼 메뉴가 제각각이었다. 여양은 밥과 김치, 미역국에 계란부침이라는 전형적인 한식인데 마트료나는 우동과 샌드위치와 샐러드, 금윤은 피자 한 쪽과 카레 소스를 얹은 닭튀김에 스파게티와 샐러드라는 푸짐한 차림이었다.
“징벌방에선 맨날 밥이랑 국만 줘서 피자가 그리웠어.”
금윤은 수줍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포크로 피자를 찢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여양은 수첩을 꺼내어 지란과 체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밥 안 먹었으면 여기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학생 수첩은 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를 보내는 것과 비슷하게 특정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학년과 반, 이름만 알면 보낼 수가 있으나 보내는 이의 이름도 표시되므로 익명 메시지는 불가능했다. 또한 학급이나 학생회, 특활부를 위한 별도의 게시판이 존재하여 그곳에 글을 올리고 답글을 달 수도 있으며 특정인끼리만 볼 수 있는 게시판도 만들 수가 있다(가령 학급 게시판은 그 반 학생과 담임교사만 접근 및 열람이 가능).
금윤도 입을 우물거리며 자신의 룸메이트와 반 친구에게 귀환을 알렸다. 메시지함에 신규 메시지가 잔뜩 들어 있어 열어보니 친구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응원의 글들이 가득했다. 그래도 기다려준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왔다.
“금윤아!”
아아아아, 하고 뒤를 길게 빼면서 노래하듯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통통하지만 귀여운 2학년생이 종종 걸음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를 본 순간 금윤의 얼굴이 확 밝아지며 화색이 돌았다.
“나영아!”
“금윤아아~! 잘 지냈어?”
둘은 두 손을 마주잡고 흔들면서 꺄꺄 소리내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잠시 후에야 조금 진정된 듯한 금윤이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자신의 룸메이트를 둘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원나영이야. 몸만 크지 아직 애라니까.”
“아이~, 나도 이제 2학년인데 뭘.”
“저녁 먹었어?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
“마침 친구들이랑 저녁 먹으러 온 참이었어. 내가 불러올게, 다같이 먹자아~.”
나영은 즐거워서 못 참겠다는 듯 연신 방긋거리며 말했다. 여양은 그저 지켜보면서 참 밝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같이 있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은 그런 상대랄까. 입에선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이 흘러나왔고, 손은 늘 박수를 치거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등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빨간 플라스틱 테를 두른 안경이 눈에 띄었고, 머리는 파마를 했는지 자글자글 볶았고 조그만 헤어핀을 여러 개 달았는데, 액세서리도 그렇고 몸동작도 그렇고 덩치만 커진 초등학생을 보는 것만 같이 귀여웠다.
어느새 나영이 몰고 온 반 친구들로 금윤은 둘러싸인 형국이 되어 여양과 마트료나는 말없이 식사만 했다. 군중 속의 소외랄까, 심심해진 여양은 괜히 다른 사람들이 밥 먹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거나 하면서 밥을 먹었다.
눈에 띄는 사람들은 제법 있었다. 노란 머리 혹은 짙은 피부의 유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구석엔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얼굴에서 입밖에 보이지 않는 소녀도 있었다. 얼핏 보는 순간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일순 심장이 멈추고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짧은 충격이 지나고 나자 놀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 TV를 뚫고 나오는 사다코와도 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처음 봤을 때야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얌전히 앉아서 국수를 먹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좀 코믹해 보였다. 시커먼 머리카락의 커튼 사이로 하얀 국수가닥이 한 줄기 빨려 올라가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저 아이, 1학년인데, 듣기로는 얼굴에 흉터가 있대. 화상인가, 교통사고던가? 둘 중의 하나일 걸.”
갑자기 오른쪽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신문부의 제갈승미가 옆에 앉아 있었다.
“어, 언제 오셨어요?”
“그렇게 놀랄 거 없어. 난 그냥 너희들 찾다가 배가 고파서 밥 먹으러 왔을 뿐이니까.”
승미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올리곤 식판에 담아온 닭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다시 보니 얼굴이나 손목에 붕대를 감은 모습이 보여서 다친 게 맞는 것 같았다. 이렇게 흘깃거리는 것도 실례인 듯 하여 승미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그는 음식을 씹으면서 말을 이었다.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고 할 생각은 없지만,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일에 대해선 알려주는 것이 우리 신문부의 일이니까, 금윤의 인터뷰는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할 생각이야. 여기엔 이의 없지?”
여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겠지만 교내 신문은 월요일 발간이니까 이번 주 토요일 안에는 인터뷰를 할 생각이야.”
“아까 잠깐 들었는데, 진짜 감옥과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학생에게 이렇게 심한 처벌을 가해도 되는지, 신문에서 꼭 다뤄주셨으면 하네요.”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 기숙사 제도 학교라고 해도 학생에게 정학 처분을 내릴 때 별도의 방에 가두고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학교는 최소한 우리나라에는 더 없을 거야.”
“그렇죠. 중국이나 중동이라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