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화원의 외곽은 그만큼 높은 수벽(樹壁)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땐 이 문이 열려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안으로 들어갔었으니까.”
여양은 희미해지고 뒤엉킨 기억의 더미를 들쑤셔서 남아 있는 선명한 단편들을 찾아내려 애썼다. 커다란 문은 기억이 난다. 둥글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진 철문……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세 사람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고 이상하다는 느낌도 없이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바로크식으로 질서정연하게 가꾸어진 화원으로, 한겨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나무는 푸르고 꽃은 만발했다. 곳곳에 수벽과 토피어리로 장식된 보스케(수목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방)가 있고 그 사이사이는 수벽으로 만든 미로로 이어져 있다. 중앙의 큰 분수를 기점으로 폭이 좁은 운하가 외곽을 빙 두르고 있다. 이런 정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분명히 호화로운 카페트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은 어딘가 들어갈 만한 틈이 있을 거란 생각에 화원의 외곽을 천천히 걸었다. 문에 가까운 쪽은 높은 담벽이 있었으나 거리가 먼 쪽은 수벽으로, 더 먼 가장자리는 침엽수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나무 사이를 통해 얼마든지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좌우대칭의 엄격함 때문에 되레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비슷해 보이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양도 마트료나도 정확한 장소를 짚어내지 못했다.
다만 하나의 실마리는 마트료나가 증언한, 운하의 마지막 부분이다. 북도의 끝, 바다로 이어지는 정원의 끝. 물소리가 들렸음을 여양이 기억해 내었고, 마트료나가 분수를 떠올리면서 그들은 마침내 그 장소를 찾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무런 특이한 점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화원 그 자체가 주는 특별하고 신비로운 느낌 때문에 다른 모든 감정이 무뎌지는 듯 했다. 강렬한 향수가 주위의 냄새에 대한 코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붉은 화살표 - 마트료나가 들어온 곳
*붉은 가위표 - 두 사람이 만난 곳
*보라색 화살표 - 월랑이 곤돌라를 타고 이동한 방향
“이제 생각났어. 재학생 중에서 이 화원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여왕과 그의 동행자 한 명 뿐이야. 교직원이라 해도 정원사 등 관리하는 사람 이외에는 교사라 해도 멋대로 들어올 수는 없어.”
나련이 턱을 만지며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던 효범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눈으로 봐도 별다른 것이 없어. 운하의 끝은 삼각형으로 둘러싸인 수벽이 양 옆에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갈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람 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데 하물며 곤돌라를 타고 증발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럴까? 네 생각은 어때?”
나련은 여양에게 물었다. 여양도 딱히 발견한 것이 없기로는 효범과 마찬가지였기에,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중얼거렸다.
“글쎄요, 곤돌라를 엄청 빠르게 몰고 바다 멀리로 나가서 마트료나의 눈에 안 보였다…… 는 건 어떨까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느꼈는지 대꾸하는 사람도 없이 잠시동안 침묵의 장막이 그들을 감쌌다. 수벽을 손으로 쓸어보던 효범이 장막을 걷어내고 입을 열었다.
“곤돌라가 커브를 돌아서 시야에서 안 보이게 된 순간 이 수벽을 기어 올라갔을지도 몰라. 가지도 튼튼하고, 손과 발을 짚을 곳은 충분히 많으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다만 그렇게 빨리 올라갈 수 있는지…… 어휴!”
효범은 직접 시범을 보이려는 듯 나뭇가지를 붙잡고 힘껏 도약하며 올라가봤지만 사다리의 세 단 정도 높이도 올라가지 못하고 도로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나뭇가지는 너무 연약하고 나뭇잎들이 방해를 해서 암벽을 타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그는 옷에 뭍은 나뭇잎을 떨어내며 멋적게 웃었다.
“안 되겠네. 그냥 서툰 추리를 해보았을 뿐이야. 역시 아닌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어. 이 아이가 본 것은 단지 환각일지도 모른다는.”
나련의 단정적인 말투에 마트료나가 기겁하듯 놀라며 대꾸했다.
“저, 저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
“아니. 난 너의 말을 믿어. 믿으니까 여기까지 왔지. 내 말의 뜻은 너의 의도와는 달리 네 말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너는 이곳에 처음 와서 무척 놀랐다고 했어. 기절했다가 깨어난 후엔 그때의 일을 완벽하게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고. 이 장소를 혼자서 찾아내지도 못했잖아?
분명 너는 신비로운 주위 경관과 겨울에 맡기 힘든 풀과 꽃의 냄새에 취해서 환각 상태와 비슷한 몽롱한 기분이었을 거야. 그래서 월랑님은 그저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따라 바다로 간 후 외곽에 배를 대고 내렸겠지만, 넌 그저 꿈 속에서 애타게 뒤를 쫓아갔을 거야. 어쩌면 정말로 몇 걸음 내딛었을 수도 있지. 그러다가 차가운 물에 빠졌을 테고. 간신히 기어 올라왔지만 춥고 지쳐서 그대로 의식을 잃었고, 그 다음은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야.”
마트료나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나련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말 대로인지도 모른다. 불투명한 기억, 안개가 낀 듯 몽롱한 풍경, 환각처럼 어렴풋한 만남과 이별까지…… 모두 그의 백일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초월랑님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효범의 질문에 나련은 말없이 분수의 물줄기를 눈으로 좇으며 대답했다.
“내 짐작일 뿐이지만, 우리가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여왕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 북도니까, 월랑님은 저 이사회 건물에 계시지 않을까 싶어. 왜 졸업도 하지 않고 모습을 감추었는지는 아직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살아 계시다면, 여기 이곳에 계시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겠지.”
나련의 총명한 눈동자가 반짝였다. 효범은 그의 눈가에 맺히는 작은 물방울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가 알고 있는 나련은 신입생 두 명을 앞에 두고 눈물을 보일만큼 연약하지 않으니까. 얼른 하품하는 척을 하며 기지개를 켠 나련은 모두를 향해 말했다.
“어차피 지금쯤이면 누군가가 우릴 찾으러 올 거야. 그 전에 우리 발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