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임벨 소리)

마경 _ 영화궁 고등학교!

마경,익희 _ (동시에) 방과후 교내방송!

(시그널 음악)

마경 _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재학생 분들은 새로운 교실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서 기쁘고 설레실 거예요. 저도 학기 첫날부터 방송을 시작하게 되어서 무척 설렙니다. 저는 2학년 1반이 되었어요! 방송부원 마경입니다. 우리 방송부에 말이죠, 경사가 생겼어요.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방송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찾아온 신입생이 있지 뭐예요. 안 그래도 3학년 선배들이 졸업하면서 부원이 줄어서 폐부 위기까지 맞은 우리는, 어서 와~! 하고 두 팔을 벌려 맞아줬죠. 그래서, 바로 여기에, 제 바로 앞에 모셨습니다! 자, 자기소개해주세요.

익희 _ 안녕하세요. 1학년 3반, 오익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숙이다 마이크에 이마를 살짝 부딪치는 소리)

마경 _ 우후후. 귀여워라. (웃음)

익희 _ 죄, 죄송합니다. (쑥스럽게 웃는다)

마경 _ 어떻게 방송부에 들어올 생각을 다 했어? 아니, 너무 너무 착하고 바람직한 일이지만, 보통은 학기가 시작되고 나면 선배들이 붙잡고 권유도 하고 그러잖아?

익희 _ 말씀드렸듯이, 전 중학교 때도 방송부였어요.

마경 _ 이 방송 들으시는 학우들은 모르니까 제가 다시 말씀드릴게요. 우리 익희 양은 장래 아나운서나 성우가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부터 방송부를 했고 교내방송도 혼자서 진행하고 그랬대요. 어머나, 엘리트네.

익희 _ 아녜요. 별 거 아니었어요, 중학교 교내방송 정도야…….

마경 _ 우리 방송부는 안 그래도 사람이 없던 판에 이런 인재가 들어왔으니 그냥 묵힐 수야 없잖아요? 그래서 당장 오늘부터 두 사람이 함께 방과후 교내방송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저 밖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계신 우리 디렉터 겸 엔지니어 겸 작가 겸 해서 혼자 다 하고 있는 사람이 방송부의 일당백, 공양이에요. 공양이 그러자고 했으니 해야지? 방송부 일은 쟤가 다 하고 있거든.

익희 _ 부장님은요?

마경 _ 우리 활어 부장님은 지금도 교내 어딘가를 촬영하고 계실 걸.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그냥 내버려두고~.

익희 _ (작은 목소리로) 부, 부장님을 내버려두는 건가요…….

마경 _ 사실 우리 교내방송이 크게 두 종류 있거든. 점심시간이랑 방과후. 일단 점심시간 방송은 나 혼자 하기로 했어. 아무래도 선생님들도 들으시니까 얌전히, 점잖게 학생들의 사연도 읽어주고 클래식 음악도 틀고 그렇게…… 뭐랄까, FM 라디오풍?

익희 _ FM인가요…….

마경 _ 그리고 이제 방과후 방송은 지금처럼 릴랙~스하게 가는 거야. 어차피 들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걸랑? 시간도 형식도 정해놓은 게 없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돼.

익희 _ 그럼 작년에도 이런 식으로 했나요?

마경 _ 응. 작년엔 신입생인 공양이랑 나랑 교대로 방송을 했다니까. 활어 선배는 그때도 카메라 들고 돌아다녔고, 3학년 선배들은 입시준비 때문에 활동을 거의 안 했으니까. 엄청 힘들었다구~. 그치만 이젠 이렇게, 귀엽고 똑똑한 후배가 들어왔으니, 나도 릴랙~스, 릴랙스!

익희 _ 어우, 과찬이세요.

마경 _ 자,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할까나……. 오늘 입학식 어땠어?

익희 _ 입학식요? 강당이 엄청 크고 깨끗했어요.

마경 _ 그치? 이 학교 아직 십 년도 안 되었으니까. 시설들이 다 깨끗하고 좋아. 수영장 안 가봤지? 여름에 기대하렴.

익희 _ 정말 기대돼요. 참, 교장 선생님은 언제 봐도 놀라워요.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마경 _ 글쎄, 교무주임 선생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 물어봐도 안 가르쳐주고. 열 살은 안 넘었을 걸?

익희 _ 어떻게 교장이 되셨을까요?

마경 _ 그건 뭐 우리 학교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해두렴.

익희 _ 대형 모니터로 교장 선생님 모습이 나온 것도 대단했고요, 관현악부 선배님들이 애국가랑 교가랑 연주하는 것도 멋졌고요, 재학생 대표로 연설하신 학생회장님도 너무 멋있었어요.

마경 _ 빈나련 선배님이 좀 많이 멋지시지. 차기 여왕 후보 1순위잖니.

익희 _ 근데 저도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었는데요, 우리 학교에는 학생회장 말고 여왕이라는 직책이 있잖아요. 정확히 둘이 어떻게 다른 거죠?

마경 _ 음……. 그래, 첫 방송에 걸맞는 화제인 것 같아. 과연 엘리트! (웃음)

익희 _ 아우, 그만 하시라니까요.

마경 _ 마침 이 방송을 듣는 신입생들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네. 학생회장과 여왕의 차이라면……? 대통령과 왕의 차이, 라고 할까?

익희 _ 하지만 이 학교가 왕국은 아니잖아요.

마경 _ 아, 그래. 영국이나 일본을 생각해봐. 그 나라엔 왕이 있고, 또 총리나 수상이 있잖니? 그리고 우리나라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총리나 수상이고 왕은 아니지? 그것과 비슷해. 우리 학교는 말이지, 여왕이 학생회장을 지명해서 뽑을 수 있어. 학생회의 찬반 투표를 거치긴 하지만, 학생들의 투표로 정하는 것이 아냐.

익희 _ 아……. 그런가요?

마경 _ 영국이나 일본의 왕을 보고 그러잖아.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우리 학교의 여왕도 마찬가지야. 학생회에 관련된 실무는 학생회장이 맡고 있고 여왕은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야. 학생만이 아니라 이 학교, 섬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란 얘기지. 그래서 여왕은 학적상으로 학생회가 아니고 이사회 소속이 돼. 그래서 이사회 건물에서 열리는 중요 회의에 참석할 권리를 가진대. 이거야 나도 안 가봐서 어떤 회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익희 _ 그래도 뭔가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마경 _ 그치? 그리고 학생회장은 반드시 2학년이 학기 초에 임명되어 1년간 맡도록 정해져 있지만, 여왕은 종신제도야. 즉위하는 순간 졸업할 때까지 계속 여왕인 거지. 졸업하고 나면 새 여왕을 뽑는 거고.

익희 _ 그럼 1학년이 여왕이 되면 3년동안 죽 여왕으로 있는 거네요?

마경 _ 근데 선배들에게 들어보니까 그런 경우는 없었대. 대부분 3학년이었고, 2학년이 여왕이 된 경우도 예외적인 일이라고 하니까. 학생회장을 맡았던 사람이 여왕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았대.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이름도 알려지고 지지도 받으니까 그렇겠지.

익희 _ 그럼 여왕은 어떻게 뽑나요? 투표로요?

마경 _ 투표를 두 번 하게 돼. 후보는 추천인 열 명만 있으면 누구든 될 수 있지만, 학생 전체가 투표를 해서 일정 이상의 표를 얻어야만 결선에 나갈 수 있대. 근데 결선투표는 비밀리에 치뤄진다는 거야. 왕은 뭐 뽑는 게 아니라 정해지는 거라나? 듣기로는 가톨릭 교황 선출을 따라한 거라는데, 이사회에서 정한 사람들이 폐쇄된 공간에 모여서 뽑힐 때까지 계속 투표를 한대.

익희 _ 그러다 영영 안 뽑히면요?

마경 _ 그건 나도 모르겠어.

익희 _ 비밀리에 하면 부정행위가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마경 _ 지난번 투표에선 CCTV로 투표장 모습을 보여줬어. 내 기억으로 일주일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사람들이 투표실 안에서 먹고 자면서 나가지도 못했지 뭐니.

익희 _ 작년에 투표를 했나보죠?

마경 _ 응. 전임 여왕인 초월랑님도 2학년 때 학생회장이었고 3학년이 되어 여왕에 선출되셨거든. 정말 예쁘고 인기도 많은 분이셨지.

익희 _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여왕 선출에 관심이 많은 거였군요. 반 아이들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

마경 _ 어머나, 그래? 신입생들도 벌써 알고 있구나?

익희 _ 네. 며칠 전에 신입생 중 한 명이 여왕이 될 거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일이 있다고, 다들 그 얘기 하던데요.

마경 _ 아아, 그거 나도 들었어. 우리 활어 부장님이 특종을 잡았다고 뻐기던 그 일 말이지? 학교가 온통 그 이야기로 화제만발~ 이라는 느낌? 우리 방송에선 나중에 여왕 후보들을 모셔서 인터뷰도 하고 그러거든. 그 신입생도 나왔으면 좋겠다. 혹시 같은 반이니?

익희 _ 아뇨. 제가 듣기로 예술계열 특기생이라고 하던데요.

마경 _ 그럼 6반이겠구나. 우리 학교는 학년 공통으로 1에서 3반이 문과, 4와 5반이 이과, 6반이 예과거든. 그림, 음악, 무용, 연기 같은 특기생들은 다 예과에 들어가.

익희 _ 체육계열은 없나봐요.

마경 _ 응. 아쉽게도 없어. 사방이 바다고 수영장도 크니까 수영선수를 데려오면 참 좋을 텐데, 그치?

익희 _ 선배님, 바다는 좀…….

마경 _ 자, 그러면, 응? (잠시 마이크에서 떨어져서 작은 목소리로 대화) 우리 방송 디렉터인 공양이 그만 끝내자네요. 그럼 방과후 방송은 끝~.

익희 _ 예? 벌써요?

마경 _ 너도 내일부터 수업 시작하니까 준비도 하고 예습도 하고 바쁠 거 아니니? 오늘은 푹 쉬고, 잠 많이 자고, 내일 본격적으로 방송하자, 응?

익희 _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마경 _ 자, 그럼 학우 여러분들도 잘 쉬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세요. 고등학교 시절은 중요하답니다. (웃음)

익희 _ (기어드는 목소리로) 남 일처럼 말씀하시네요…….

마경 _ 영화궁 고등학교 방과후 교내방송은 이만 마칠게요. 진행자는 마경, 그리고?

익희 _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 오익희입니다, 아니 오익희였습니다!

마경 _ 그럼 안녕~!

익희 _ 아, 안녕!

(마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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