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마트료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왕님은 물어보기도 전에 그 표정을 보고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를 알아채고 답했다.
“널 병원에 데려오고나서 의사 선생님에게서 이름을 들어서 알았어. 나도 너랑 같은 신입생이야. 여기 있는 우리 셋은 오늘 막 여기에 와서 몰랐는데, 이미 학교측에는 우리 사진이랑 신상명세 같은 것이 전부 입력이 된 모양이야. 병원에서도 우리 진료기록이 남는대. 그래야 치료하기도 쉽고 그렇겠지.”
“네가 나를 여기로 데리고 왔다고?”
“응.”
고개를 끄덕이자 돌연 마트료나는 돌아서며 왕님에게로 다가왔다. 의외의 행동에 놀라서 흠칫 물러서자 도망치기라도 할 듯이 양손을 꼭 감싸쥐고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이 어딘지 기억해? 내가 어디에 쓰러져 있었는지 알고 있어?”
“어, 응. 대충 기억하는데.”
“나를 거기로 데려다줘. 부탁이야. 거기가 어딘지,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지, 생각이 나질 않아. 제발 부탁할게.”
“글쎄……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벌써 해도 져서 어둡고……”
“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거기로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누군데? 같은 학생이야? 아니면 선생님?”
“교복을 입고 있었어. 아마도 우리 선배겠지.”
“그러면 나중에라도 교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안 돼! 그래서는 만날 수 없어. 분명해. 거기가 아니면 안 돼.”
왕님은 거절의 말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을 느꼈다. 그 이유는 무얼까. 이 소녀의 눈빛이 너무나도 애절해서일까, 목소리가 지극히도 간절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보는 사람을 어지럽게 만드는 예쁜 얼굴 때문일까.
“잠깐만. 어디를 가든 좋은데 오늘은 안 되잖아.”
모두의 시선이 지란을 향했다. 지란은 팔짱을 풀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8시부터 신입생 간담회라고. 잊었어? 이미 8시는 넘었으니 어차피 지각이겠지만, 아예 안 가면 나중에 한 소리 들을지도 몰라.”
“그래, 우리 빨리 가요!”
체링도 의자에서 일어나며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마트료나만이 문 앞을 가로막듯 서서 요지부동이었다. 이 자리에 마치 없는 것처럼 말없이 있던 의사 선생님이 하품을 길게 하더니 마트료나 앞으로 다가갔다. 저절로 경계하듯 몸을 움츠렸지만, 의사는 그의 곁을 지나 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병실을 나서다가 문득 생각난 듯 슬쩍 돌아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일단 교무주임에게 신입생 한 명이 여기 있다는 이야기는 해뒀지만, 너희들 세 명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으니까, 일단은 참석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바다에 빠져서 지금쯤 동중국해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니까.”
뜨악한 얼굴의 세 사람을 남기고 의사는 문을 닫았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기분 나쁜 농담이었지만, 새삼 자기들이 망망대해 한복판에 있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 왕님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그럼 할 수 없지. 마트료나, 넌 여기 누워서 한숨 더 자. 그곳은 내일 가자.”
“…….”
마트료나는 굳은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오늘 밤에 다시 거기로 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알았다. 겨우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다.
“나도 갈게. 같이 가.”
“너도 신입생 간담회에 참석하겠다는 거야? 오늘 온 사람들만 가는 것 아니었나?”
“맞아. 하지만 난 어차피 할 것도 없고, 길도 모르겠어. 그렇다고 여기 가만히 누워 있기도 싫어. 무엇보다…… 혼자 있기가 두려워.”
병원은 기숙사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해가 지고 어둡다고 해도 길을 몰라서 못 간다는 것은 핑계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혼자 있기 두렵다는 말을, 그것도 가냘프고 예쁜 얼굴의 소녀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왕님은 함께 가자며 손을 덥석 쥐었다. 당황스러워하자 천연덕스럽게 웃어보였다.
“어두우니까 조심해야지. 이러고 가면 안전해.”
어느새 나머지 한 손은 조지란의 손아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미소녀를 여왕님아 혼자 차지하게 놔둘 순 없지! 히히.”
“그럼 나는 어쩌죠? 어쩌지?”
“체링 너는 허리를 안고 졸래졸래 따라오렴.”
체링은 지란의 짓궂은 말을 듣고 조금은 부끄러워했지만 분위기에 이끌린 듯 용기를 내어 양손으로 마트료나의 허리를 붙잡고 열차놀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뒤따라갔다. 마트료나는 양손과 허리를 세 아이들에게 점령당한 상태로 반쯤 끌려가다시피 하며 걸음을 옮겼다.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워낙 구김 없고 밝게 웃는 아이들인지라 차마 화를 내거나 뿌리칠 수가 없었다. 맞닿는 피부의 느낌, 와닿는 따스한 숨결, 타인이라는 존재가 그렇게까지 기분 나쁘지만은 않다고 마트료나는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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