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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 진짜 내 삶을 찾아가는 일곱 여자 분투기
하이힐과 고무장갑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표지 속 그녀는 뭔가 당당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마흔이라고 하기엔 젊어 보인다지만 마흔의 그녀들에게 보고 싶고 기대하는 바는 이러한 당당하게 그들의 자리를 영위하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아직 나에게 마흔이란 숫자는 10년이란 시간이 남아있다. 그 전에 먼저 서른이란 숫자에 익숙해져야 할 터인데 아직까지 낯설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스무 살 초반만 해도 서른이 되면 무언가 자리 잡혀 있고 멋진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은 현재의 나로 하여금 두려움과 공허함만을 감싸 자리잡고 있다. 마흔을 앞두고 혹은 그 시간 속에 있는 그녀들에게서 나는 지금의 혼란을 떨쳐버리고 재도약 할 수 있는 힘을 고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마흔이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내 앞에 다가왔다. 전문성과 성숙함, 단단한 배포로 무장한 채 흔들림 없는 자기 길을 갈 거라고 믿었던 마흔이란 나이. 하지만 나의 마흔은 달랐다. 스무 살의 어설프고 나약하고 이기적인 모습에선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젊은 날의 당당함과 무모한 도전 정신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어처구니 없는 초라함. –본문
하이힐과 고무장갑. 20대에겐 하이힐을 신고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시간들이라면 40대언저리인 그녀들에게는 하이힐에 고무장갑이 추가되었다.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묘한 조합을 그녀들은 충실히 각 아이템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들의 역할은 점점 더 늘어난다. 가정에서는 엄마로서, 부인으로서 혹은 미혼일 경우에는 딸로서 그녀들은 자신의 나이가 주는 중압감과 현실에서 요구하는 바람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들을 끊임없이 독촉해야만 한다.
마흔인 그들에게 생물학적인 여자의 의미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라지고 ‘아줌마’라는 존재로만 남아있기 마련이다. 사회에서는 상사에게는 달콤한 부하로서 부하에게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퇴근하자 마자 엄마로서 제 2의 야근을 해야 하는 그녀들에게 남는 것은 제로섬의 법칙뿐이다. 어느 역할에서나 척척 해 나가는 원더우먼 같은 그녀들을 원한다지만 그들도 사람인지라 매사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기엔 버겁다. 직장과 육아라는 두 개의 추를 두고 마냥 저울질만 할 수 없는 그녀들의 서글픔이 아려온다. 나는 결혼이라는 관문만을 통과하면 무언가 달달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나 보다.
튀어나온 살들을 큰 옷으로 감추듯 덮어 두고, 모른 척하고 싶었단 중년의 불안과 나이 듦의 서글픔이 어느 날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낱낱이 내 앞에 드러났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중년의 흙바닥 위에 시인이 엎드린 순간 나도 그랬다. ‘물고기 같이 울었다’라는 구절 앞에서는 나 역시도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나를 덮친 중년의 피곤과 허탈함에 나는, 놀랐다- 본문
세월 속에 숫자가 늘어나고 내 이름이 사라지고 수식어로 대체 된다고 해서 여자로서의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의 순간이 아득하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그 마음들을 끄집어 내어 드러낼 시간이 없을 뿐이다. 여자로서 사랑을 원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까 만은 전쟁 같이 빠르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사랑에 대해 태무심하게 만들어 버린다.
가끔 텔레비전 속의 소재로 종종 등장하는 남편의 외도에 대한 그녀들의 견해는 한 번쯤 살다 보면 발생하게 되고 언젠가 그는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라 한다. 사실 나는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이해가 되질 않는다. 무던하게 기다리고 있는 혹은 그저 마음을 놓고 있는 다는 그 시간을 이해하고 싶지도 이해 할 수도 없는데, 글쎄. 연륜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그녀들은 묵묵하게도 이 시간을 견뎌왔고 지나왔다. 아직 터널의 입구에도 다다르지 못한 나에겐 아득히도 멀기도 하고 내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지만 과연 내 앞에 이러한 일들이 나타났을 때도 나는 처연하게, 지혜롭게 그 시간을 지나갈 수 있을까?
내게 다가온 사랑의 세 번째 모습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 특히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로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하던 마음은 나의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세 번째 모습이다. 이런 사랑은 참 힘들다. 그런데 때로는 그런 사랑을 하게 될 때가 온다. 그때 나는 사랑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그의 사랑을 축복할 순 없지만 말없이 지켜보고 견뎌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견뎌냄’이 내가 나의 자유를 사랑하듯 그의 자유를 사랑하는 방법이기에. –본문
아직 가보지 못한 마흔의 그녀들을 보며 나는 미래의 나를 보기 보다는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엄마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엄마가 마흔이란 그 격정의 시간을 보낼 때 나는 나의 미래만을 걱정하고 있었을 뿐 그 당시 그녀의 시간은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보였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도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을 테지만 매번 쳇바퀴 속 일상 속에 엄마는 엄마의 공간이 없었다. 하루 정도 가게를 본다고 외출을 감행하시는 엄마한테 그 하루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하 생색을 냈었는지. 단 하루의 외출도 마음 편히 못해보신 엄마를 떠올리며 안식 휴가를 떠난 그녀의 이야기는 비수처럼 다가왔다.
내 두통의 원인은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과 긴장이었다는 것을. 그 동안의 나는 완벽하게 내 역할을 소화해내야 내 자존심을 지키는 줄 알았다. 가족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좀 도와달라고 손 내밀지 않는 동안 내 몸이 먼저 지쳐가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결혼 안식 휴가, 많은 여자들이 생각은 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다. 내가 없으면 우리 애들은 어쩌지? 남편은? 혹시 내가 너무 무책임한 행동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대자면 백 가지도 넘는다. 떠나기 좋은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영원히 떠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본문
시간이 흐를수록 고려해야 하는 문제의 폭이 더 넓어지고 있다. 마흔인 그들이 현재의 나를 보면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야, 나도 그 나이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어’ 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내가 지금 20대 초반의 그녀들에게 말하듯 말이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듯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곤 하지만 그녀들은 그녀 나름대로 멋지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디든 정답은 없을 게다.
얼굴은 지나온 삶을 오롯이 담는 그릇이라고들 한다. 나의 마흔을 위해 지금부터 나의 일생을 닮을 나만의 잔을 어떠한 형태로 채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과 많이 다르진 않을 것 같다. 그 무엇도 정해지지 않고 지금과도 별 반 다르지 않을 내가 있을 테지만 나의 마흔이 기다려진다. 바둥거리며 살고 있다곤 하지만 하이힐과 고무장갑이 잘 어울리는 그녀들이 위대해 보이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뭘 했다’라는 결론은 생각하지 마라. ‘내가 하고 있다’라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결국 무엇이 되는 것이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