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화가들 사계절 지식소설 4
박석근 지음 / 사계절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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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눈 앞에 아름다운 명화가 있다 한 들 그것을 바라보는 두 눈에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 그것은 한 점의 그림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전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갔을 때에도 세계 3대 뮤지엄이라는 명소 안에 수 많은 걸작 앞에서 나는 그저 아름답다 혹은 거대하다 등의 생각밖에 갖지 못하였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보면서 책에선 느낄 수 없었던 붓 터치감이나 색채가 이러했구나 란 생각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곳에 가기 전에 좀 더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미술이란 과목에 대해 필기 시험을 보는 날이면 이 그림이 어떤 시대에 탄생되었으며 그 시대의 특성이 어떠하고 대표하는 화가들은 누구이며 등 단순 암기하는 과목일 뿐이었다. 그 속에 흐름이나 왜 이러한 시대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작가의 의도나 사상에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는 부분들이었다. 그래서 인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습자지 마냥 얇게 도포되었던 지식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으며 언제나 미술이란 것은 내겐 어려운 존재일 뿐이었다.

이 책 속의 철수는 미술을 전공으로 목표하며 대학 입시를 위해 미술 학원을 다니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미술을 원하는지, 미술이란 게 무엇인지 제대로 인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혼란에 빠져있을 때 수상한 화가들과 시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청소년들을 위한 미술에 관한 지침서와 같은 책이라고 하지만 내 눈높이에도 알맞은 수준이라 오랜 만에 책에 매료되어 본 듯하다.

이집트의 벽화는 이전에도 몇 번 본적이 있다. 그 전반적인 분위기는 익히 알 고 있었지만 그림에 담긴 포즈에 대해서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이집트 화가들은 사람을 그릴 때 앞모습과 옆모습을 결합시켰다고 하는데 특징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부분들을 골라서 그린 것으로 한 것이다. 얼굴은 옆모습이지만 눈은 정면을 보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가슴은 앞에서 본 모습, 허리와 발은 옆에서 본 모습으로 실제 이런 자세를 취하기는 불가능 하지만 그 화가들에 있어서는 가장 완벽한 사람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그리스의 조각가들에게도 오랜 동안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인간의 생동감을 불어 넣은 작품이 폴리틀레이토스의 창을 든 청년이라고 한다.

그리스 신전이나 피라미드. 비너스 상에 반영된 황금 비율이 현대에 와서 밝혀 지는 것들을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에 이토록 철저한 비율을 적용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작품에 대한 열정을 기반으로 한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정신 덕분이었으리라. 8등신의 법칙이 적용된 밀로의 비너스는 현재 두 팔이 사라진 상태라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편안하면서도 아름다운 비너스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이 걸렸을까?





노트르담의 꼽추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배경이 되는 성당이 이토록 아름답고 그 안에 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줄은 몰랐다. 아마 실제로 가서 본다고 해도 웅장하고 견고한 장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겠지만 내면에 담긴 알찬 의미들은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성당의 정문에 조각되어 있는 것들이었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하나의 장식으로 눈길 한 번 주고 지나쳤겠지만 수상한 화가에 의해 최후의 심판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맨 위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려는 듯한 예수가 엄숙하게 앉아 있어. 그 아래에는 천사 미카엘에 의해 저울질된 영혼의 무게에 따라 천당 행과 지옥 행이 결정되는 모습이 표현되고 있고, 맨 아래에는 죽은 사람들이 천사들의 트럼펫 소리에 깨어나 관 뚜껑을 열고 일어나 심판대로 향하는 모습이 있지

근데, 왜 입구에 이런 내용을 조각한 건데요?”

이곳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이는 최후의 심판을 떠올리며 마음가짐을 다지고, 지은 잘못이 없는지 돌아보라는 의미인 거지. 그만큼 이곳은 신성한 공간이니까.” –본문

라오쿤 군상. 이 작품이 기원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라오콘과 그의 아들을 두 마리의 바다뱀의 공격을 받고 있다.  독뱀에 물려 죽는 순간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을 보며 실감나는 표정을 보며 대리석으로 어찌 이렇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란 경이로움을 느꼈는데 사실 이 작품은 그것보다도 기존의 생각을 깨고 탄생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미술의 역사에도 기틀 위에 새로이 시도되는 도전 정신이 점차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그러한 도전이 또 다른 역사로 연명되는 것을 보면 현재의 진화가 역사의 주춧돌이 되는구나 란 생각이 든다.

 기존의 생각에 의하면, 신화의 한 장면을 상상해서 그리는 것은 미술의 일이 아니었어요. 현실에 있는 것을 화폭에 옮겼죠. 그러나 <라오콘 군상>은 현실에 없는 것, 즉 신화 속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서 작품을 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인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전통에도 반기를 들었어요.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끔찍한 순간을 꾸미거나 미화하지 않고, 고통을 생생하게 표현했어요.” –본문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절친한 친구가 어느 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보고 온 소감을 들려준 적이 있었다.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선 순간 모든 사람들이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으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경이로움에 푹 빠져서 봤다고 했다.높이 14미터, 13미터에 400여명이나 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는 내용을 보면서 그 크기에 압도된 것일까 란 생각을 했었는데 7년이란 시간을 들여 이 작품을 제작한 미켈란젤로의 집념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이며 생동감 있는 모습들, 인간의 욕망을 그림으로 완전하게 표현한 그의 작품을 보며 그는 이 거대한 화폭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완성한 것이리란 생각에 존경스럽다 란 마음과 실제 이 작품은 두 눈으로 보고 싶다 란 생각을 간절히 갖게 해주었다.

밀레의 만종은 감자를 수확한 그들의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을 그린 줄만 알았는데 사실은 바구니 안에 있던 것은 감자가 아니라 갓난 아이였다고 한다. 바쁘고 고된 일상 속에 아이를 차마 마저 일터로 데리고 와서 일을 해야 했던 그들의 서글픈 일상이 담겨 있는 것이란다. 그래, 그제서야 이 두 남녀의 뭔가 서글픈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감자를 수확한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아닌 자신들의 처지의 비관은 아니지만은 자신의 아이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 아이도 계속 이러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그 안타까움이 서려있는 듯 하며 이전에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너무나도 유명한 마네의 풀 밭 위의 점심식사’. 여자만이 누드화로 나타나 있어 이색적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는 그 당시 시대에 있어서는 커다란 논란이 된 작품이라고 한다. 비단 여자의 누드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꼬집는 풍자적인 내용의 작품으로 이 전에는 벌거벗은 여인이 비너스가 아닌 경우 외설로 치부했다고 한다. 비너스의 누드는 아름답고 경건하지만 그 이외의 누드는 외설이라고 보는 시각은 다분히 흑백논리 적인 사고 방식으로 그러한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관람객들을 향해 벌거벗은 여자는 오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장면이 외설로만 보이는가? 란 질문을 하는 듯이 말이다. 또한 이 그림은 남자 관람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지 못했는데 그 당시의 중산층 남자들에게도 아내 이외의 애인을 두는 것이 사회 전반적인 흐름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그려져 있으니, 그들은 마네의 그림을 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이중생활을 덮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마네를 비난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란 생각에 미치자 마네의 대범하고도 철저히 분석적인 작품 속 그의 손길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는 피카소의 작품을 보면서 그가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그의 작품을 이해한 적은 없는 듯하다.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서도 매혹적이기 보다는 뭔가 조각조각을 내어 다시 이어 붙이기를 한 듯한 느낌에 어색하기만 했었는데 이것은 그가 입체주의로 들어설 것이란 전주곡과 같은 작품이라고 한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원근법도 없고 인간의 이상적인 형태도 사라진 이 작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원근법이란 하나의 방식만이 아닌 것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기원전의 이집트의 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는 이집트의 벽화 속 모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변화를 시도하게 되며 이러한 시도는 게르니카라는 작품에서 여실히 들어난다

전쟁의 비참함을 다룬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림만 봐서는 꽤나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다. 무차별 폭격에 의해 무너진 마을 안에서 자신의 아이를 울부짖으며 찾는 아이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마냥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황소, 놀라 비명을 지르는 사람까지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마을의 풍경 안에서 당시의 고통과 비극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자신이 실제 겪은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분노를 가득 담아 이 화폭을 완성하게 된다.

화가는 내면이 눈으로 사실을 보고, 그 느낌을 캔버스에 표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비극을 나의 비극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감성이죠. 비록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현대 사회에는 그러한 자세가 무척 중요할 거예요.” –본문

뒤샹의 샘이란 작품은 또 한번 미술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깨뜨렸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그리거나 만들어 낸다든지 혹은 그 안에 자신의 신념을 담고 새로이 창조해야 하는 것이 예술에 대한 나의 견해였다면 뒤샹은 그러한 생각에 빠져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 변기를 통해서 역설하고 있다. 이것이 소변기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 쓰임새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고 있기에 이 물건은 아름답다기 보다는 생활하는데 필요한 하나의 물품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면 뒤샹은 그 안에서 고정관념을 탈피하면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예술가는 더 이상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오. 이미 완벽하게 아름다운 형태를 갖춘 기성품이 있는데 굳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 필요가 없지.” –본문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내가 미술사를 통달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중세시대에는 어떠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어떠했으며 낭만주의, 인상주의 등의 단어에 발목 잡혀서 알아봐야겠단 시도 조차를 포기하려 했던 비관적인 자세는 벗어날 수 있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로의 시간 동안 이상한 미술가들을 따라 여행하면서 미술에 관한 전반적인 흐름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서 다른 작품들에 대한 관심마저 가지게 되었다.

미술이라는 영역뿐만 아니라 현재의 모든 것들은 이전의 것들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도전 정신으로 만들어진 결과일 것이다. 미술에 관한 이해를 돕고자 읽게 된 책 한 권이 이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신호탄 같은 역할을 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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