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 -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 시인의 시 읽기
장석주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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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학창시절 문학 시간에 시를 마주하는 순간이면, 이 안에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외워야 할까, 라는 생각에 푸념이 먼저 밀려들곤 했다. 나에게 있어 ''는 그 안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외우고 암기해야 하는 그야말로 주입식 학습의 산물이었고 그렇기에 ''는 늘 어렵고 버거운 것으로만 남아있다. 

 원체 책을 읽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시집을 왠만해서는 읽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읽어온 시집이 손에 꼽을 정도이며 그것마저도 통독이 아닌 발췌독으로 이뤄진 것이 대부분이기에 시를 읽어봐야겠다는 엄두 조차 가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인데 장석주작가의 이름이 낯이 익다는 그 하나의 기억만으로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를 읽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것은 시인의 일이 영업 판촉 인력의 일과는 다르다는 것. 영업 판촉 인력은 자기가 팔아야 할 제품을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시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중략) 

 공익성만을 따지자면, 시인들은 인류 문명 건설에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다. 평생 시가 뭔지 모르고 시집 한 권 읽지 않아도 사는데 불편한 일은 없을 테다. 시를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을 가르는 차이란 모자를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 정도로 사소한 것일 뿐.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를 읽지 않는 삶보다 시를 읽는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는 점이다. -본문 

 유쾌하면서도 담대하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의 문장들에 매료되었다. 그가 전해주는 시는 그의 문장으로 다시 전해지며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들이 오롯이 나에게 전달되고 그 이야기들을 바라보면서 시를 이렇게 바라보면 되는구나, 라는 생각과 시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다가갈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버거움이 조금씩 사그라들게 되었다. 

 이전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그 무언가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된 나로서는 이 안의 이야기들을 바라보면 볼수록 점점 가슴이 설레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난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지만 가난을 구조적으로 낳는 사회는 악이 선을 압도하는 타락한 사회다. 가난에 처한 사람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는 점이다. 돈의 속성에는 애초에 행복은 만들어낼 요소가 없다. 그렇다고 가난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가난은 굶주림과 사회적 기회의 상실을 낳고, 불만족과 고통을 만들며 우리 내면에 탐욕의 씨앗을 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이 우리를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만은 아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본문

 신경림 작가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보면서 그 안의 상징적 의미나 꼭 알아야 할 문학적인 요소들을 넘어서 이 안에 전해지는 먹먹함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듯 하다. 가난하기에 사랑마저 포기했던 그들은 그럼에도 다시 오늘을 넘어서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삶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을 뿐이다. 그 먹먹하지만 막막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현재의 이야기가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 많은 미사여구가 필요없이 담백한 언어의 고리는 그 어떠한 문장보다도 이 안에 사는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초식동물 이마에 돋은 뿔은 살상 병기가 아니다. 그 뿔은 평화와 위엄, 하고자 함이라는 신성한 가치의 상징이다. 장인수 이마에도 '온순한 뿔'이 돋아 있다. 뿔이 있으니 들이 받는 것은 핏속에 내장된 차가운 본성이다. 흑염소들의 기막힌 뿔 맛을 아는 드문 시인이니, 초롱초롱한 눈동자에 깃든 그 장난기, 그 천방지축의 기예, 그 천진한 지혜는 들판 학교 동문인 검은 염소들에게서 배운 게 분명하다. 시인은 염소의 벗이고, 염소와 같은 부류인 착한 짐승이다. 세상의 요청과 부침을 핥고, 비밀스러운 것들과 스스로 충만한 것들을 핥는 혀를 가졌다. -본문 

 장인수 작가의 <온순한 뿔>을 읽으면 그 안의 모습이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느낌이 든다. 어느 날 학교 앞에 등장한 염소들과 함께 하교하는 나와 천방지축처럼 보이는 염소들이 실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들이지만 그 찬란한 기억을 나누었던 당시의 염소들은 이제 그의 곁에 없다. 어린 시절 수 많은 추억을 나누었을 그들이 그가 자란 지금은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 안에 담긴 모든 시들을 하나하나 꺼내 놓고서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만큼 모든 조각들이 영롱한 제 나름의 빛을 품고 있다. 시라는 또 하나의 세계를 열어준 책이기도 하거니와 저자의 따스한 문체에 매료되어 정신 없이 읽어내려갔던 이 책을 통해서 시를 하나하나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시에 전혀 관심 없던 주변이들에게도 내가 느낀 감정을 함께 나누고픈, 그리하여 주변이들과도 이 안의 이야기를 같이 나눠보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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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의 시간 / 도종환저


  

 

독서 기간 : 2015.05.07~05.0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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