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에 비로소 홀로 섰다 - 논어에서 배우는 인생 수업
조광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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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서른이라는 나이가 과연 내 인생에 오기는 올까, 라는 아득했던 그날의 기억에서부터 그럼에도 서른이 된다면 사회적으로는 어느 정도 안정된 자리를 구축하고 한 가정의 주인이 되어 20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막막한 가능성이었다면 30대의 나는 그 가능성을 거머쥐고서는 바람을 타고서 휘휘 날아가는 풍랑 속의 거대한 배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실 속의 서른이 된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망망대해 속에서 여전히 출렁거리고 있고 대체 어디서부터 이 모든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할지에 대한 막막한 물음에 대해서 <나는 서른에 비로소 홀로 섰다>는 잔잔히, 그러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찬찬히 알려주고 있다.

일생의 계획은 젊은 시절에 달려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달려 있다.
젊어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아침에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 한 일이 없게 된다. –공자의 삼계도운 본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욕망은 가득하지만 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저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빌어 무조건적인 비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이 욕망이라는 것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한다면 더욱더 성장해나갈 수 있는 길이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즐기는 것이란 가르침대로 아직 젊은 우리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 더 많기에 우리가 안고 있는 욕망을 즐길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함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  사람다움을 가르치는 윤리 교육이 가장 먼저라는 뜻이다 지식 습득은 사람됨의 근본을 익힌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자의 과정의 훈육은 또한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의미하기도 한다. 큰 틀의 방향만 알려주고, 그 다음은 자기 스스로 최상의 방법론을 찾아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사람됨의 근본에 힘쓰도록 가르치고, 나아가 사회인으로서 의연하게 처세하도록 가르쳤으면 그것으로 자녀 교육은 족하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지식과 지성과 쌓아가고 도를 깨닫는 것은 자녀의 몫이다. 본문

학창시절에는 남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아 이른바 명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남들보다 성공하기 위해서만 아등바등하고 있던 우리에게 심심치 않게 들리는 뉴스 속 암담한 사건들을 보노라면 과연 성공만을 바라고 달려온 우리 사회가 현재 건강한 모습인가에 대한 의구심만이 던져진다. 사람다움보다는 성공의 길이 옳은 것이라 생각하며 친구보다도 성적은, 주변의 사람들보다도 연봉의 숫자를 높이기만 치중했던 우리에게 과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길로 들어서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물음을 던져주는 것이다.

 늘 바쁘게만 달려왔던 나의 어제를 둘러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서른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인생의 의미가 그 동안의 혼란과 압박이 있었기에 지금의 울림이 뜻 깊게 다가오는 것 같다. 혹여 또 다시 길을 잃어 종종거리게 될 때면, 이 책을 펼쳐놓고서 다시금 다짐을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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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 / 이경우, 우경임저


 

 

독서 기간 : 2015.03.09~03.1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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