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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태어나는 순간이 흰 빛깔의 영롱함이라면 죽음은 흑백의 까마득한 느낌이다. 색으로 인간의 삶을 표현한다고 하면 암에 걸려 절망에 빠진 이브 엔슬러라는 그녀의 이야기를 표지로 마주한 순간 나는 회색조의 삶을 예상했다. 그러니까 삶과 죽음이라는 일련이 순간 속에서 죽음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 듯한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무언가 초연하면서도 경건한 마음과 측은지심을 가지며 바라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삶에 암이라는 존재가 퍼지기를 상상한 적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 불운의 그림자를 짊어지게 되었으니 나는 그녀를 초연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콩고에 도착했을 즈음 이미 나는 이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여성애 대한 폭력이라는 전염병을 충분히 목격했다. 그러나 나는 콩고에서 몸의 종말, 인류의 종말, 세계의 종말을 목격했다. 군대와 기업은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학살, 조직적 강간, 고문, 여성과 여자아이의 말살을 전술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성 수천 수만 명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과 몸의 기능, 몸의 미래가 형편없이 망가졌다. 자궁과 질이 영원히 파괴된 것이다. –본문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이 모든 생각들이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강렬하다 못해 파격적이고 파격적이면서도 그 안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도무지 가늠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회오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동안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책을 바라보게 된다.
그녀는 회색조의 빛을 띄며 처연하게 자신의 삶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검붉은 빛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으며 너무도 강한 그 모습에 압도되는 것은 물론 때론 두려움이 느껴지기까지 하다. 과연 그녀의 이 모든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 일까. 내가 생각하던 환자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니 그 어떠한 이들보다도 되려 더 강한 이 아우라는 대체 어디서부터 흘러 나오는 것일까.
콩고의 성흔처럼 수 많은 이들의 여성들의 고통을 마주해왔던 그녀의 몸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다. 상처를 가진 자와 상처를 보듬어 주는 자로 콩고의 여인들의 마주해왔다면 이제는 도리어 상처를 가진 자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게 된 이브는 처음에는 자신의 병에 흔들리는 듯 했지만 다시금 일어서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채식주의자로 지냈던 지난 날을 넘어 사자처럼 햄버거를 물어 뜯고 있으며 어린 시절 이외에 손에 잡아 본적이 없던 붓을 들고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리하여 이전에는 차마 알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나무를 통해서 마주하게 된다.
병마만이 온 세상을 뒤덮은 로체스터에서도, 화학치료를 위해 포트를 자신의 쇄골에 이식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늘 강자의 모습으로 서 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수천 여명의 여성들의 아픔을 차양막 아래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던 국제사회와 지식층 여성, 영부인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그 현장 속에 들어가 움직이며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다 드러내며 스스로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화학치료는 당신에게 하는 게 아니에요. 암에게, 과거의 모든 죄악과 당신 아빠에게 하는 것이고, 강간범과 몸의 침입자 모두에게 하는 거예요. 그들을 독살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거죠. 당신에게 투사되었지만 절대 당신 것은 아닌 악을 모두 정화할거예요. 당신의 회복력과, 치유를 향한 당신의 몸과 영혼의 마술적인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어요. 당신이 할 일은 화학치료가 당신 안으로 치고 들어온 침입자를 죽여 없앰으로써 당신의 순결을 구하러 오는, 당신과 공감하는 전사라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거예요. 당신에게는 몸이 여러 개 있어요.사랑과 보살핌을 통한 이 변형의 시간으로부터 새로운 몸이 태어날 거예요. –본문
자신을 강간했던 아버지를, 그 사실을 외면하기만 했던 어머니를 용서하고 자신보다 더 많은 아픔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여성들을 향해서 그녀는 다시 움직이고 있다. 남들에게 맞추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지금이 소리쳐야 할 때라고 그녀는 더 크게 소리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야말로 그녀가 마주했던 참혹했던 현장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10억명의 여성 중 3명에 한 명은 성적 학대나 폭력을 경험했으며 이것이 실제 우리의 현실이기에 최소한 그 현실을 마주해야 할 의무는 있지 않을까.제 몸을 불살라 이 모든 것들을 전해주는 그녀는 혁명의 전사처럼 느껴진다. 아무쪼록 그녀의 광활한 목소리가 더 널리 퍼지길 바라본다. |
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 / 쥘리 보니저
독서 기간 : 2015.01.14~01.15
by 아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