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까지 7일
하야미 가즈마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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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누군가와 영영 마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이별의 시간을 건네야 하는 날들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라고 그 시간이 촉박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그 동안 주어졌던 수 많은 시간들을 어찌하여 그토록 허망하게 지내온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은 왜 이토록 짧아야만 하는 것인지. 이 소설은 이 세상의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밖에 없는 부모님에 대한 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한이자, 너무도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이별의 순간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한 마디의 이 책에 대한 변을 남기자면, 슬픔에만 취해 눈물만 쏟는 그런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뭉클한 눈물보다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의 현실에만 취해 있던 모습들이 점차 하나로 모여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에 때론 비정하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에 마냥 슬픔기만 할 것 같아 외면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는 말을 먼저 전해주고 싶다.

 시작은 장어라는 단어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중년의 여성 이야기로 시작된다. 젊은 이들도 깜빡 하는 일들이 종종 있기에 별다른 일이 아니겠거니, 하고 바라본 레이코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점점 이상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전화를 받는 그녀의 모습도 그러하고 둘째 아들인 슌페이를 만나러 갔을 때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그녀의 모습, 며느리인 미유키의 임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사돈 댁과 함께 저녁을 하는 시간 동안 보여지는 그녀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가족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즉시하게 한다.

 그렇게 찾은 병원에서 레이코의 뇌 속에 그림자가 보인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7일이 고비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첫째 아들인 고스케, 둘째 아들인 슌페이, 그리고 레이코의 남편인 가쓰아키의 각각의 시선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천천히 다가가 퍼즐 조각을 하나 주었다. 그 빛바랜 살색을 보며 겨우 무슨 그림인지 생각해냈다. 형을 위해 일을 그만둔 어머니가 완성한,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였다.
 
슌페이는 그 그림이 너무 싫었다. 처음에는 퍼즐을 장식하는 행위 자체가 촌스러워 보였는데, 얼마 지나자 소녀의 초연한 눈매가 마음에 안 들었다.
 
만일 정말로 가족이 각각 맡은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다면, 이 소녀만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빚 독촉에 괴로워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불확실한 장래에 두려워하던 형의 모습도, 이 소녀만이 신처럼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본문

 자신의 가정 환경이 버겁기만 했던 고스케는 집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책임은 부모님의 몫이라며 그들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슌페이는 그 나름대로의 생각에 빠져 세상과의 타협보다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겠노라며 레이코의 마음을 쓰이게 했으며 좀처럼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할 줄 모르는 남편은 어느 새 집에만 오면 적막만을 유지하고 있는 채 레이코의 지갑에는 점차 대부 업체의 카드만이 쌓여가고 여기저기서 빚 독촉이 날라오게 된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이 진실을 바라보고자 하는 이 없었던 이들에게 어머니의 병은 모든 것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시발점이 된 셈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가고 있는 레이코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부모님의 부채를 보면서 7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어머니의 시간보다도 그들에게 드리운 돈의 무게가 이들 가족을 더 힘겹게 짓누르게 된다. 이 순간이 이 가족에게 드리운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인데, 아버지는 잠시 동안의 여행을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하고 슌페이는 엄마의 통장 속에 담긴 보험회사의 존재가 무엇인지 찾게 하고 고스케로 하여금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미유키에게 자신의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등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견뎌가며 각자의 군도 속에서만 살고 있던 이들의 간극을 조금씩 줄어들게 하고 있었다.

 기적 같았다. 어머니만이 아니다. 겐타가, 미유키가, 아즈사가, 아버지가, 형이 있다. 이 집에서 어느 누구 하나 모자라지 않은 것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돌이켜보면 어머니가 쓰러지기 전에도 이랬다. 만나면 다들 즐겁게 웃고, 걱정 같은 건 없다는 듯 굴었다. 어머니가 빚을 졌을 줄은 상상도 못했고, 하물며 암에 걸렸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사람이 죽음과 등을 맞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어머니가 쓰러졌던 그날까지는 잊고 있었다. 어머니가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가족의 삶이 즐겁게 막을 내린 것은 아니다. 다음 순간에는 또 누가 쓰러질지 모르고, 누가 큰 빚을 진 게 드러날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만이라도 웃어야 한다. –본문

 다시금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는 느낌의 환호보다는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밀려든다. 7일이라는 시간을 넘어 54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이 시간이 계속되기만을 바라본다. 그들의 시간이 연장될수록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같이 연장되는 듯한 안도가 함께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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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간 : 2015.01.1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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