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년이라는 시간을 걸쳐 전해지는 5부작의 리플리 연작소설은 현대 문학사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을 그리고 있는 톰 리플리를 전해주고 있으며 그는 범죄 소설 속 가장 완벽한 사이코 패스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고 한다.
괴기 스러운 표지가 광기 스러운 무언인가를 전해줄 것만 같아 공포감과 과연 그 뒤에 숨은 주인공의 정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함께 안고서 마주한 이 소설은 만약 이 표지가 아니었더라면 그저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 시작은 너무 평범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프리처드 부부는 확실에 찬 표정으로 지나갔다. 데이비드 프리처드는 앞을 제대로 내다보지 않고 자신을 보며 운전하는 재니스에게 씩 웃어 보였다. 차가 벨 옹브르의 열린 대문 앞을 지나는 순간, 톰은 재니스에게 차를 멈추고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명령하듯 말하고 싶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그들을 겁주고 싶었지만 그런 명령을 내릴 일은 없었다. 차가 이미 서서히 지나갔기 때문이다. 톰은 흰색 푸조 차량의 번호판이 파리 것임을 놓치지 않았다. -본문
주인공인 톰 리플리는 아내와 함께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그에게 디키 그린리프의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분명 그가 죽였다고 생가했던 디키에게 아직 살아있다, 라는 목소리를 전해들은 것은 물론 주변의 프리처드 부부의 의심이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이 모든 것들이 그 부부가 꾸민 계략이라는 생각이 스치게 된다. 그리하여 리플리는 프리처드 부부가 누구인지에 대해 하나씩 찾아보게 되는데 그들은 생각보다 리플리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그것이 리플리의 과거 행적이라는 것에서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되게 된다.
이미 누군가를 죽인 그이지만 리플리에게는 그 어떠한 죄의식이 없다. 그저 과거 속 기억의 한 조각일 뿐 그는 오히려 상류 사회로의 진출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뿐, 과거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어떠한 죄책감마저 없이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다만 그의 신경을 거슬리는 프리처드만이 현재 그의 눈엣가시일 뿐이다.
남편인 리플리가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고 그저 눈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보는 내내 답답함이 밀려든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저 안고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겠지만 톰이 지난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가 말하는 과거의 범죄 현장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엘로이즈를 구해내야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밀려들게 된다
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에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프리처드 얘기를 엘로이즈에게 곧 알려야 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엘로이즈가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에 물어본다면 톰은 에둘러 대답하지 않을 참이었다. 엘로이즈가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아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본문
수 년 동안 비밀을 안고 있던 유골이 모습을 드러내자 리플리과 프리처드는 모로코와 영국 등을 옮겨 다니며 숨기려는 자와 파헤치려는 자의 모습을 대조시키며 계속해서 오벼주고 있다. 리플리가 전 동료들에게 프리처드 부부에 대해 알리는 모습이나 가짜 그림을 그린 화가의 약혼자를 만나는 등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보이는 리플리의 대범함은 그의 전반적인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는 리플리 증후군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벌인 범죄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 안의 톰은 그저 책 안에만 갇혀 영원히 살기를 바라게하는 섬뜩하면서도 그 때문에 정신없이 읽어내려간 이야기였다. 그 뒤의 톰이 또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만 왠지 모를 두려움은 금새 잊혀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