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만에 대해서 그저 이름만 들어본 것이 다인 나로서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주한다는 것은 프랑스 대표 작가이자 페미나 바카레스코 상을 수상한 저자인 미셸 슈나이더가 안다면 통곡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슈만에 대한 애정은 그저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 문장 속 하나하나에는 슈만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그려져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슈만의 음악이다, 라는 것도 구분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도 못했거니와 과연 그에게는 어떠한 삶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는데 그저 음악가로 알고 있던 그의 삶이 늘 회색조였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쉬이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누이인 에밀리에의 자살 소식과 그의 형과 형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의 삶을 계속해서 어둠 속으로 밀어넣게 하고 있다. 그의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는 그에게 평온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의 이 고통은 오롯이 그의 음악 속에 녹아들게 된다.
서둘러 필사된 이 음악은 꿈속에서는 근사하게 보인 문장이나 생각이 잠에서 깨고 보면 생기 없는 반사광에 지나지 않는 것과도 같다. 가까운 곳에도 먼 곳에도, 안에도 밖에도, 먼 곳이 내부에 마드는 상처 속에도 없는 이 음악은 하지만 동시에 도처에 언제나 있다 한계 없이 너무나도 온전하고자 하기 때무에 거의 아무것도 되지 않는 음악. 그 음악은 '있다'. 절대적으로, 끔찍하게도. -본문
음악에 그에게 힘이 되었다기 보다는 삶에 대한 탈출구 같은 의미가 아니었을까. 그의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 무언가 느껴지는 처연한 마음은 그가 있었던 삶의 무게가 이 안에 고스란히 녹여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처를 담은 음악은 활자를 넘어 수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는 것은 그의 날것 그대로의 것이 담겨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로베르트, 당신 정말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싶어요?"
"그래."
그는 단지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는 이미 낯선 나라에 가 있었다. 강 저쪽 기슭에.
다음날은 사육제 날이었다. 라인 강이 그 잿비 물속에 푸르스름한 얼음 조각들을 실어왔다. 슈만은 밖으로 나갔다. -본문
그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사는 동안 기쁨의 찬양보다는 늘 아픔을 안고 있어야 했던 그에게 드리운 무거운 삶의 무게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모습을 넘어 모든 것을 던져두고 떠나야만 했던 이유들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악보에 남겨 져 있던 또렷한 글씨는 그가 세상에 전해주고 싶던 마지막 이야기였을 것이다. 세상에 그의 음악이 여기서 끊어졌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이 세상을 가는 마지막만큼은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을까. 어두운 그의 삶이 이 책을 통해 빛을 본 지금만큼은 그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덜어졌기를 기원해 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