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CEO가 하느님이며 직원이 천사들이라는 전제만으로 이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아름다운 모습만이 떠오르는 천사들이 결국은 하느님의 직속 직원들이었다니. 한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그 모습이지만 그 한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오늘도 회사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지내야 하는 내 모습들과 오버랩되며 격한 공감이 들끓어 오르게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천사의 손길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모습이 과연 이 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어떻게 그려지게 될지. 설렘 가득히 안고 있는 페이지를 넘길 수록 그 안에서는 유쾌함과 신선함이 밀려들고 있다.

<쓰나미는 걱정하지 말게나.> 하느님이 송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지.>

일라이자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터덜터덜 카펫을 밟으며 나왔다. 문밖으로 나서려는 찰나, 뭔가 이상한게 그녀의 눈에 띄었다. 하느님의 집무실 귀퉁이에 거대한 서류 무더기가 쌓여 거의 그녀 키만 한 높이의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일라이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무더기를 자세히 살펴봤다. 서류가 모두 낯익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기도문 무더기였다. 그것도 모두 긴박성 7등급으로. -본문

수취부에서 기적부로 승진한 천사 일라이자는, 기적부에 도착한 첫날 코드 블랙을 마주하게 된다. 인명 손실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일라이자는 하느님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에게 다가가게 되지만 하느님이 인간이 올린 기도문을 한쪽으로 쌓아만 두고 있을 뿐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보다는 그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 경기 승패나 록밴드를 결성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인 그가 변화하기 바란 일라이자의 바람은 결국 지구 파괴라는 결정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천국주식회사의 CEO인 하느님이 지구를 탄생시킨 것은 크세논 개스라는 귀한 원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회사 역시도 이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업이 어느 정도의 성공 가도를 오르게되면서 느슨해진 틈 속에서 재미를 위해 탄생시킨 '인간'이 지구에 점점 늘어가게 되면서 천국주식회사 속의 천사들은 이제 인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이뤄주기 위해서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CEO인 하느님은 인간에 대한 특별한 정이라기 보다는 한 때의 호기심이었기에 그에게 우리의 소원은 그저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어찌되었건 매일은 인간들의 소원에 소소한 기적들을 불러일으켜 그들게 행복은 전해주며 밤새 눈코뜰 새 없이 일을 하던 천사들은 하느님의 이 결정에 오히려 잘 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다. 늘 바쁘게 움직이는 천사들 덕분에 인간에게 전해지는 기적에 대한 진실은 알지 못한 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하느님을 탓하며 되려 지지도 마저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은 격분하게 되고 천사들은 점차 지쳐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구 파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천사 일라이자와 하느님은 이 중대한 결정을, 수 많은 인간들이 올린 기도문 중 한 달 안에 하나라도 이뤄지게 된다면 없던 일로 하겠다는 협상이 이뤄지고 일라이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레이그와 함께 샘과 로즈의 사랑을 이뤄주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게 된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천사들이 버스를 붙잡아 주지 않는다면 그 두 사람은 그곳에 발이 붂일 상황이었다.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화면에서 고개를 돌리며 무관심한 척했다. 벨기에에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왜 관심을 갖겠는가? 곧 전 세계까 폭발할 예정인데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계속 힘겹게 전진하자. -본문

. 지구의 존속 여부가 인간들의 사랑에 달려 있다는 것과 그들을 바라보는 천사 일라이자와 크레이그가 아등바등하는 모습이라든가 하느님이 점점 철이 들어간다는 것에서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는 이 이야기는 하느님인 CEO와 직원이 천사라는 형태를 하고는 있지만 우리네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나서 생긴 하나의 후유증(?)이라면 주변에 전해지는 작은 기적들을 보노라면 어디선가 일라이자나 크레이그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싱긋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편하게 웃으며, 그러면서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았던 이야기 덕분에 오랜만에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열고 읽은 책이었다.

아르's 추천목록

신이라 불린 소년 / 멕 로소프저

독서 기간 : 2015.01.07~01.0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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