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1
무레 요코 지음, 김영주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터덜터덜, 아직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고 온 몸이 물을 흠뻑 담은 스펀지처럼 무거우면서도 발걸음을 회사로 재촉하며 걸어가고 있다. 무엇을 위한다거나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어제처럼 오늘을 맞이하는 나로서는 그저 오늘 하루만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의 일을 시작하고 있다. 

 매일 일탈을 꿈꾸면서도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때라고 나름의 위안을 전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 최면이 현실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움직여야 하기에 움직여야 할 뿐이니까. 그래서일까. 교코와의 만남은 엉뚱한 듯 하지만 언젠가는 꿈꾸는 나의 모습이기에 그녀의 소소한 일상들이 평범하지만 함께 하나 보면 또 휴식처럼 느껴져 계속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진다.

 그토록 예전 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했으면서 막상 닥치고 보니 이십 년 이상이나 몸에 밴 회사원 습성이라는 것이 좀처럼 없어지지 않아 당황스럽다.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뭔가 해야 해.” 하고 무심코 할 일을 찾게 된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 했을 때,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할 일이 하나도 없다는 허무함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본문

 교쿄가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위해 찾은 연꽃빌라는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쓰러지기 일부 직전의 위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름에는 모기떼에 시달리고 습기 때문에 곰팡이의 습격을 받는 것은 물론 겨울에는 바깥보다도 집안이 더욱 춥게 느껴져서 온몸을 칭칭 감고 난로를 켜지 않으면 안될, 게다가 화장실과 샤워장은 공동 사용이며 옆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마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아도 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이 공간이 대체 무엇이 좋다는 것일까, 라며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도 그녀가 선택한 세 평 남짓한 이곳이 처음에는 마뜩잖았으니 말이다.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이주할 수 있었지만 30만엔의 월세와 한달 생활비 10만엔은 그녀가 남은 여생 동안 자신이 모아둔 돈으로 생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녀는 어머니의 그늘에서부터 벗어나고파 했기에 이곳을 보자 마자 근사해요라는 말을 내뱉는 교코를 보며 그녀가 얼마나 이 시간들을 바라고 있었는지를 쉬이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선택은 그녀 앞에 드리울 문제들을 보며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지만 최악의 선택이라 자신을 탓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나가며 그 안에서의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오면서도 그래, 이 정도면 됐지, 하며 그녀의 행보에 나지막이 힘을 실어보기도 한다.

 이미 오랫동안 몸에 벤 습관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서도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라는 반문을 던지면서도 이웃인 사이토와 구마가이씨를 보면서 어떻게 보면 연꽃빌라라는 세상의 낙오자들과 함께 서로 다독이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따스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그 안에서의 의미들을 찾아가는 그들을 보며 찬란하지 않지만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교코가 회사 생활을 할 때도 큰 눈이 내린 적이 있다. 하지만 적당히 시간을 계산해 택새를 불러 그걸 타고 회사에 다녔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과거의 자신은 현재의 자신과 많이 닮기는 했지만,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유행하는 옷과 소품이라든가, 화장품이나 에스테틱, 네일 살롱이 어떻고 하면서 겉모습은 반듯했지만, 그것은 그저 예쁜 갑옷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그 갑옷을 벗고, 속에 있던 부드러운 알맹이가 그 자리에 있다. -본문

방안의 제습기를 설치하고 수시로 물을 비워줘야 하고 모기의 출현 때문에 방충망을 직접 설치하고 곰팡이 제거를 위해 손수 닦아내야 하는 수고스러움과 문을 닫아도 방안으로 들어오는 눈보라와 갑작스레 등장한 거대한 지렁이 때문에 방을 뛰쳐나가야 하는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안에서 새싹이 자라고 새들이 지저귀는 현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쏟아내는 잔소리가 우리가 견뎌야만 하는 현실이라면 그녀가 있는 세 평 남짓의 이 공간은 그녀를 감싸 안아주는 공간이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쓰러져 가는 남루한 공간이었지만 교코에게는 그녀 스스로의 생각과 시간을 갖게 해준 곳이었기에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과연 나의 연꽃빌라는 어디인지에 대해서, 당장이라고 이런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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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간 : 2014.12.02~12.0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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