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서는 오해했다. 비주류 연애 블루스라니. 우울한 인생들이 모인 우울한 연애담 정도겠거니, 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 책 매일 조금씩 읽어오며 제목 보면 대충 감이 오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일함은 책을 펼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확인되었고 책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이 이야기는 일반적인 연애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따분하거나 뻔한 연애이야기가 아닌 흥미 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치는 것들이기에 과연 이 안에 우리가 알고 있는 연애 이야기가 있는 걸까, 라는 착각을 할 만큼이나 긴박함이 넘쳐 흘렀으며 달달하거나 혹은 비주류라는 제목에서 주는 일명 찌질함 따위는 없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제목 자체가 반전 그 자체인 셈이다.
성욱과 혜연의 이별 장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더라면 그야말로 연애 소설의 이야기라 생각했겠지만 시작은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한 남자가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며 시작한다. 위층에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 생각하며 경비원과 함께 올라간 그 곳에서 그는 한 여인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데, 갑작스레 초반에 등장하는 한 여인의 죽음은 성욱과 혜연의 이별과 더불어 터덜터덜 걸어 나오던 성욱의 앞에 들이닥치는 사건으로 서서히 잊혀지게 된다.
성욱은 다치지 않은 손을 품속에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8시 42분. 영화가 8시쯤 끝났으니 정류장에서 그 많은 일이 벌어지는 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인생이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는데. 오늘 일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7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난생처음으로 깡패와 싸웠으니까. 그뿐이랴. 사람이 죽는 것까지 보았다. 옳은 일을 하려 했던 것이지만, 지금에 와선 괜히 나섰다는 생각만 들었다. –본문
혜연과 헤어진 후 만나게 된 성욱의 앞에 나타난 수정. 그녀를 따라 영화관에 들어설 때만해도 그는 자신의 인생에 이토록 엄청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영화관에 나온 이후 수정에게 말을 걸며 또 다른 로맨스가 시작되겠거니, 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도 이럴 수가, 라며 혀를 찾으니 말이다. 갑작스레 등장한 한 뿔테 안경을 쓴 남자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는 수정을 향해 몸을 던진 성욱은 그의 일생 중에 단 한번도 꿈꾸지 못했던 일들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는 ‘재미없어’라며 그에게 이별을 고했던 혜연에 대한 반항과 일탈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끼어들게 된 사건 속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속속 들어나고 있었으니 수정을 잡으려 했던 그 뿔테남이 사채업계의 대부 방성환의 아들 방성태였던 것이다.
철창 신세를 지게 된 방성태를 두고 방성환은 장일도에게 이 사건의 중심인 수정과 성욱을 추격하라는 요청을 하게 되고 그렇게 장일도와 이석구는 물리고 물리는 게임을 계속해 나가며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팽창되어 간다.
수정은 약이 든 백팩을 고쳐 멨다. 그녀에게 나은 단 하나의 무기. 이것만 있으면 놈들과 싸울 수 있다. 수정은 이를 악물었다. 우릴 우습게 생각했지? 언제라도 죽일 수 있다고. 죽는다고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하찮은 인간들이라 생각했겠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 하찮은 인간에게도 나름의 한 방은 있다. 반드시 후회하도록 만들어주겠다. –본문
방성태가 키워왔던 뷰티 샵이 알고 보니 마약관련 약물을 다루고 있었다는 것, 그로 인해서 한 여성이 죽음으로까지 다다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서막에 올랐던 한 여인의 죽음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여인이 수정과 함께 이 모든 것들을 도모했다는 것이 서서히 올라오게 되는데 이 모든 것들의 꼬리가 장일도에 의해서 풀어지게 되는데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면 갈수록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그러나 이젠 알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 사귀는 것보다 스스로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어느 시점에서인가 성장을 멈췄고, 주변의 소중함을 모른 채 하루하루 낭비하듯 살았갈 뿐이었다는 걸. 인영과의 시간마저 내 삶의 소모품처럼 생각하고 함부로 다루었다는 걸 알겠다. 본문
비주류 연애라는 제목과는 달리 마지막 장을 덮으면 성욱이란 인물을 곱씹어보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한 여자를 위해서, 그는 진심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그녀를 구하는 모습에서 재미없고 지루함을 안고 있던 출판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자의 모습에 이내 또 설레게 되니, 저자의 바람대로 그가 흘려 놓은 로맨스의 후폭풍에 제대로 빠지게 된다. 후속편이 나와도 좋을 이 이야기의 끝에서 과연 성욱이 어디로 가게 될지, 혼자만의 상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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