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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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매주 수요일 업데이트되는 빨간 책방팟 캐스트의 흑임자 김중혁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잰걸음으로 출퇴근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서 일까. 실제 그를 마주한 적도 없지만 이미 나는 그를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목소리가 귀에 익어버린 탓에 그의 이야기인 <메이드 인 공장>으로 처음 그의 글을 읽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들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심지어 음성지원이 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이 읽는 내내 피식 웃음이 난다. 그의 이야기에서는 묵묵한 듯 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따스함이 깃들어있어 편안하게 읽어내려 갔는데, 학창 시절이 아니고서야 어느 곳을 견학 한다는 것이 쉽지 많은 우리에게 그는 다양한 공장을 다녀와서 그 모습들을 알알이 전해주고 있다.

주변만 슬쩍 돌아보아도 수 많은 공산품들이 널려있다. 매일 쓰는 것에서부터 가끔 사용하는 것들, 때로는 그런 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기 마련인데 완제품이 되어버린 그 물품들을 마주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나는 그 물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이 곳으로 도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생각은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저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졌겠지, 라는 생각과 공장이라 함은 높은 굴뚝이 있고 그 굴뚝에서 연기만 피어 오르는 모습만을 상상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생동감 넘치는 공장의 실제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 작은 마을에서 지냈다는 그로서는 커다란 공장에 대한 환상마저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공장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기에 나의 생각 속 공장의 모습도 한정적인듯 한데 어찌되었건 물품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가 그 물품이 만들어지는 공장을 견학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바로 제지공장이었는데 소설가인 그로서는 종이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것이기에 그가 제지공장으로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 것에 대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본다.

제지 공장의 숙명도 비슷한 것 같다. 고대 이집트의 커다란 수초 파피루스에다 문자를 적기 시자간 인류는 석판, 밀랍, 가죽, 종이에다 수 많은 글을 남기며 진화해왔다. 인간의 진화를 위해 자연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나무를 잘라내고,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ㅇ하여 종이를 건조 시키고, 펄프를 표백하기 위해 많은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글씨를) 쓰기 위해 (나무를) 부스는 일은 과연 옳은 일인가. 쉽게 답할 수 없다. –본문

하루에도 수 십장의 A4용지를 쓰는 것은 물론 전자책보다는 종이로 된 책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나 역시도 일년에 몇 십 그루의 나무를 사용할 텐데 그러한 종이가 어떻게 나무로부터 만들어지는지, 나의 손 아래서 사라져가는 나무들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듯 하다. 그저 대가를 지불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별 죄책감 없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제지 공장의 위압감을 고스란히 전해주던 그는 종이를 쓰는 것에 대한 상념을 던져주고 있다.

엘피가 갑자기 많이 팔려서 시디나 음원 판매를 앞지르는 일을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엘피의 먼지를 닦으며 음악을 듣는 일도 없을 것이다. 곡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옳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엘피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뭐 잊고 있는 건 없는지, 너무 많은 걸 줄이고 압축하는 바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까지 줄인 것은 아닌지, 우리가 한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음악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질문을 던지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본문

차마 입 밖으로 되내기도 민망하기만 한 콘돔공장과 브래지어 공장을 지나, 김중혁 작가의 작업 공작소, 가방 공장을 넘어 LP 공장에 도착하게 된다. LP판에 대해서 TV를 통해 종종 본적은 있지만 내 두 눈으로 실물을 본다거나 두 귀로 그 날것의 소리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브라운관을 통해서 마주한 것이 LP의 전부인데, 우리나라의 유일한 LP공장이라는 엘피팩토리는 이곳은 일반적인 공장에 대한 상식을 뒤엎어버리는 전무후무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이윤 창출을 위해서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지만 이 곳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얻은 수익이 고작 200만원이란다. 그것도 공자을 가동하는 날보다는 닫혀 있던 날이 더 많았던 이 공장의 존속 이유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지만 잊혀져 가고 사라져가는 그 와중에도 LP 공장을 닫지 않고 있는 이 곳의 존재의 가치를 따지는 것 역시 우리 스스로 너무나 계산적이 되어 버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기에 한편으로는 씁쓸한 나의 단편을 보게 된다.

공산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우리의 삶에 문제가 발생한다거나 이상이 생기거나 하는 일들은 없을 것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그 공산품들을 사고 쓰는 평범한 일상을 변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하나하나의 공장들을 마주하게 된 후부터는 손에 집히거나 눈에 보이는 것들부터 과연 이건 어디서 왔을까, 라는 생각들에 빠지게 된다. 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또 생각들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부터 무언가 물품들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긴다는 점에서도 즐겁게 읽은 책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 안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그가 만난다는 지인들에게 풀어 놓을 생각이라고 하니, 그의 지인이 아닌 그저 독자인 사실이 조금 서글프게만 다가올 뿐이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그 이상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유쾌하면서도 신선한 이야기였다.

독서 기간 : 2014.10.28~10.3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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