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장-폴 디디에로랑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매일 책을 읽어주는 남자라니. 그의 존재를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지긋이 미소가 띄워진다. 출퇴근하는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혼잡하면서도 개개인이 스마트 폰에 빠져 옆에 누가 있는지에 대한 관심도 없는 바쁜 일상 속에 그 적막을 깨는 이가 나타나 고요한 그 안에서 나지막이 책을 읽어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아침의 서막인데 이토록 내가 꿈꾸는 일을 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길랭 비뇰이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늘 들고 다니는 가죽 서류가방에서 종이 서류철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서류철을 연 그는 두 개의 솜사탕 빛깔 같은 분홍색 압지첩 사이에 끼어 있는 종이들 가운데 첫 장을 꺼냈다. 윗부분 왼쪽 가장자리가 반쯤 찢어져 잘려나간 종이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 매달려 흔들거렸다. (중략) 길랭은 여느 아침처럼 목을 가다듬기 위해서 마른 기침을 몇 번 한 후, 큰 소리로 낭독을 시작했다. –본문

 새벽 6 27. 어디론가 바삐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낱장의 종이를 꺼내 들고서 그는 사람들에게 그 안에 담긴 활자를 읽어주고 있다. 낱장의 종이를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는 그는, 책 파쇄기를 운전하는 기사로 책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해야만 그의 삶이 지속이 되는 슬픈 운명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

 어릴 때부터 심술쟁이 꼭두각시라는 뜻의 길냉 기뇰이라 놀림을 받았던 소년은 유년시절에 대한 트라우마로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삶을 추구하고 있지만 책을 읽어주는 그 새벽의 시간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만의 시간이다. 재활용 전문회사에 있는 그로서는 책을 파쇠해야 하지만 그 파쇄기에서도 살아남은 낱장들을 보며 살아있는 살갗이라 부르는 것을 보아도 그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그가 작동시켜야 하는 체르스토르 500은 그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괴물로만 비춰질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기계 작동 중 동료 주세페의 사고를 목도했으니. 그에게는 파쇄기는 책은 물론 사람까지도 범할 수 있는 죽음이 가득한 기계일 뿐이다.

  그런 그에게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으니 지하철에서 마주한 할머니들을 위해 양로원에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리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가

길랭 비뇰. 실술쟁이 꼭두각시라는 뜻의 길냉 기뇰이라는 놀림을 수도 없이 받던 아이. 그래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는 평범하지 않는 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책을 읽어주는 것. ‘자연자원 처리 및 재활용 전문회사에 몸담고 있는 그는 매일 책과 종이를 파쇄. 요리, 역사, 소설 책 등 그의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출판계 임원이라 착각. 체르스토르 500을 작동시키는 것이 그의 마주하게 되는 석류빛의 USB는 그 이전의 그의 삶이 적막 속에 가득한 사막이었다면 이 USB를 주운 이후로 따스한 햇살이 감도는 초록의 정원처럼 변해가게 된다.

 문을 열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그 한 시간은 내 시간이다. 손님들이 올때까지 캠핌용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전날 써놓을 글을 다시 읽거나 컴퓨터에 입력하면서 보내는 나만의 시간. 나는 그 글들이 하룻밤을 지나면서 한껏 부풀어 올라 아침이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빵 반죽처럼 밤새 숙성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글들을 컴퓨터로 옮기는 지금 이 순간,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내 귀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린다.  본문

 쇼핑몰에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있던 쥘리가 바로 그 USB의 주인인데 매일 조금씩 그녀가 써 내려가던 이야기가 USB에 담겨 있었고 그 이야기를 읽은 길랭 비뇰은 그녀를 찾아가기 위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삶의 활기를 안고서 조금씩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다.

 한 마디 덧붙이면, 얼마 전부터는 희미한 생각을 생기있게, 심각하고 금언한 것을 덜 진지하게, 겨울을 덜 춥게, 참을 수 없는 것을 견딜만하게,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추한 것을 덜 추하게, 요컨대 나의 삶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람은 쥘리, 바로 당신입니다. –본문

 단 한번도 마주한 적 없던 이에 대해서, 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 역시도 책을 읽을 때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마주할 때면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 등, 그 무한대의 이야기에 매료되기도 하니 길랭의 두근거림이 전해지며 점점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토록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다니. 책을 읽는 내내 책을 말아야 할 이유를 안고서 꽤나 열심히 읽은 이 책이 따스하게 가슴 속에 자리 한 듯 하다.

 

 

아르's 추천목록

 

페넘브라의 24시 서점 / 로빈 슬로언저


 

 

독서 기간 : 2014.10.23~10.2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