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 선생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권을 다 읽은 것이 아마 이로서는 2번째인듯 하다. 그 동안 짧은 단문들로 그의 이야기를 마주하던 나로서는 꽤나 부지런을 떤 셈인데 그 단문들을 이전부터 계속 일거왔기 때문인지 그의 이 이야기가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쓰러질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이라는 제목 때문에라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탄탄대로 위를 걸을 수 있기를 내심 바라곤 하지만 인생의 언저리에서는 불쑥 불쑥 등장하는 장애물들로 인해서 쿵 하니 그 앞에 부딪혀 멈춰서야 할 때도 있고 빙 돌아 그 곳을 지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러한 나날들이 있다고는 하나 언제나 나의 앞에 있는 장벽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 중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러질 때면 다시 툴툴 털고 일어서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가 쉬이 생각할 수 있는 것임에도 쉬이 따라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더욱 강하게 반응하게 된 듯 하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지만 늘 어렵게만 빙 돌아 지내고 있는 나날들에 대해서 휘휘 털어 내보고자 이 책을 조용히 열어본다.
누군가에게 ‘잊어버린’ 사람이 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잃어버린’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 잊어버린 사람은 이름도 모습도 기억되지 않을 정도로 무가치한 존재지만 잃어버린 사람은 최소한 아쉬움이라도 불러일으켜서 찾고 싶은 존재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본문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나의 세계는 점점 더 편협해진다. 전화번호 속의 숫자는 더 늘어났을지언정 실제 연락할 수 있는 이들의 숫자는 더 줄어드는 것이 현실인데 그렇게 하염없이 넘어가는 전화번호부를 볼 때면 답답한 마음까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수 많은 전화번호 속에 실제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은 별로 없다는 그 가벼움은 내가 지금껏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에 대한 반증이기에 자연히 고개가 숙여지는데 지금이라도 연락해볼까? 라는 생각과 구태여 지금 와서 연락을 해야 하나, 라는 양가적 감정이 함께 하는 지금,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닌 잊어버린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가 있을까, 하는 상념에 빠져본다.
남에게는 춘풍같이 대하고 나에게는 추풍같이 대하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는 따뜻하게 처신하고 나에게는 냉엄하게 처신하라는 뜻이겠지. 자신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다. 그리고 호감은 성공을 부른다. –본문
남에게는 배려 깊게, 나에게는 단호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 내가 행하는 모습은 나에게는 너무도 관대한 잣대를, 타인에게는 한 없이 냉철한 잣대를 드리우며 잘잘못을 따지는 내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나는 누군가의 행태를 판단할만한 재목인가를 뒤돌아 볼 때면 간담이 서늘해지곤 한다. 말을 아껴야지 하면서도 금새 그 사실을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는 내 모습은 언제나 타인에게는 추풍을 넘어선 한겨울 바람과 같은 존재였고 그래서 현재의 나는 쓸쓸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하다 .
어떤 이들은 이외수 선생의 글을 보며 괴팍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거침없기에 속이 시원하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글들을 읽는 동안 제법 많은 시간 고개를 끄덕거렸던 나로서는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드러낼 수 없는 카타르시스의 정수를 느끼는 듯 하다. 콕 꼬집어 이야기하기에 때론 그것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내가 마주하기 꺼려했지만 실제의 진실이기에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