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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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붉어지는 얼굴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차마 이 책을 마음 놓고 펼치지 못하면서도 또 그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수선거리는 전철 안에서도 부지런히 읽어 내려간 듯 하다.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조선시대의 여성들의 덕목 중 투기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보면서, 일부다처제가 자연스러웠던 그 당시 과연 그것이 가능이나 할까, 라는 생각에 머리를 갸웃거리곤 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다른 이를 품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저 수긍해야 했던 그 시절은 권력과 지휘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나날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여자들에게는 피 말리는 현실이 눈앞에 있을지언정 언제나 꾹 참고 지내며 안으로만 곪아 삭히는 삶이 여전히 내게는 버겁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자유롭던 남자들과 수 많은 제약을 안고 살아야 했던 여자들이 함께하던 조선시대에 남성과 같이 자유분방한 사랑을 꿈꾸던 어우동은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호기심의 대상이자 취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자 또 한 편으로는 자신들과 같은 삶을 지향하고 있기에 위험한 인물임이 틀림 없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어우동은 그야말로 그들에게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는데, 파란한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정열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그녀의 모습이 생경하기도 하지만 훗날 그녀에게 드리울 미래는 마주한 지금은 그저 아련한 마음 만이 가득하다.

무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어미와 아비는 한시도 목소리를 낮출 줄 몰랐다. 제 목청을 돋우느라 남의 말을 듣지 못했다. 기억이 생겨난 때로부터 항시 그러했기에, 그녀는 다른 집들도 모두 가족끼리 이야기할 때 핏대를 세워 고래고래 악을 쓰는 줄로만 알았다. 그 악다구니 속에 깊은 침묵이, 음습한 비밀이 곰팡이처럼 피어났다. –본문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던 그녀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언제나 싸움으로 물들어 있는 벗어나고 싶은 악몽일 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를 힐난하는 것은 물론 하나 뿐인 오라버니마저도 이 싸움의 흙탕물을 더 흐트리고 있으니 그녀가 속해 있는 가족은 이름만 가족일 뿐 오히려 남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더 단란하고 알콩 달콩하게 지낼 수 있을 그녀만의 가정을 원했을 것이다. 이 간절함 앞에 드리운 것은 기생에게 빠져 그녀를 버린 지아비가 전부였지만 말이다.

 허망하지 않은가, 그 찰나의 쾌락에 목숨을 걸다니!

 그 찰나가 내겐 영원이었어요. 몸과 몸이 섞일 때에만 느낄 수 있었죠. 아무에게도 훼손당할 수 없는 나, 조롱 당할 수 없는 나, 학대 당할 수 없는 나…. 오직 나뿐인 나. –본문

 그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 받은 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 피어나기를 자청하고 나섰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들이라 모두가 말하는 사랑만을 쫓아 가는 불나방과 같은 삶의 서막은 종친의 처이자 사족의 딸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녀의 목을 옥죄어 오는 아득한 결말 따위는 그녀를 도무지 붙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누구와 함께했었나 그 수를 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녀를 아는 이들은 많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진정으로 안아준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색사만을 쫓아 가는 것처럼 그녀의 모습들이 오히려 더 과장되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이름을 세긴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돌아서는 순간에는 갖가지의 이유로 그녀를 떠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만의 성이 있는 곳에 여자로서 그 세계에 뛰어든 것이 그녀의 죄라면 죄일 것이다. 다른 여인네처럼 속이 문드러질지언정 혹은 중국의 여인들처럼 발이 썩어 들어갈지언정 남자들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았더라면 그녀에게는 적어도 당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안위는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에게 그러한 삶을 강요하도록 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그야말로 사랑 속에 살고 팠던 그녀가 그 순간들만이라도 행복했기를, 다시금 바라며 조용히 책을 덮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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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인 / 김경민저


 

 

독서 기간 : 2014.10.20~10.2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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