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풍경이라는 거짓말
김기연 지음 / 맥스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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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시작은 분명 여행이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서두를 꺼내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다른 이야기로 빠져 또 그 속에 푹빠져들게 된다. 그러니까 시작은 여수의 어느 섬에서 시작했으나 끝은 다시 일상 속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이어져 오는 것인데 그 이어짐이 자연스럽기에 조용히 따라가다 보면 또 어느새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된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무언가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페이지의 맨 상단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에 반해 이 책은 옆으로 글자를 뉘워서 시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평범한 그저 한 편의 산문집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뛰어 넘은 것은 아마도 그 처음 이 책을 마주했던 첫 장면때부터였던 것 같다. 무언가 다른 책과는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은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되었고 생경하기는 하지만 낯설지 않은, 그래서 계속 그 문체에 빠져드는 그의 이야기는 매혹적이게 느껴진다.

고인돌 옆구리마다 싹이 돋고 있었다. 어찌하여 죽은 자들의 땅에 푸른 생명이 거침없이 밀고 나오는가 싶었다. 넑고 편한 터는 제쳐두고 하필이면 거무데데하고 오래된 무덤 곁에 터를 잡았을까.

쪼그려 앉아 내 시선이 아닌 그들 높이로 주변을 더듬는다. 그들에게 바위 곁은 척박한 땅, 거친 환경이 아니다. 햇빛도 잘 들고 바람까지 피할 수 있는 명당이다. 제 삶에 딱 어울리는 곳임을 저 생명들은 오랜 경험으로 터득했을 것이다.
잘 살수만 있다면 그곳이 무덤 곁이면 어떻고 들판이면 어떤가. -본문

그저 지나갈법한 풍경 속에서도 그는 삶의 꼬투리를 하나씩 물어다 전해주고 있다. 사소하다 못해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그 순간들을. 아스팔트 위의 작은 새싹이 자라는 것을 보며 신기하다,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머리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그 찰나에 대해서 저자는 그 순간들을 현재의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침대는 삐걱거리며 자신의 늙음에 대해 하소연했고 나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일어날 시간이 되었으나 몸은 뿌드드했다. 물 한잔 들잌켜고 밖으로 나섰다. 새벽의 공간은 아득한데 새들의 목소리는 정오처럼 명랑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 몇몇이 오르내린다. 문을 닫아 건 상점과 식당들을 지나쳐 느긋한 걸음으로 일주문 방향으로 향한다. -본문

움직일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을때면 최대한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그 소리가 나지 않기만을 바라며 잠에 들었다, 라는 것이 평범한 나의 일기라면 그는 침대으 삐걱거리는 소리마저도 침대 스스로가 자신의 늙음에 대해 하소연하는 소리라 말하고 있다. 나에게는 소음인 그 순간이 그에게는 새벽을 깨우는 순간으로 승화되고 있는데, 매번 마주하는 평범한 일상들이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양차이가 나게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풍경으로써 어부의 그물질은 멋진 춤사위다. 바다란 무대에서 벌어지는 춤판, 펄떡거리는 근육의 춤판이 파랑 위에 일렁인다. 생의 찬연함은 풍요안에만 있지 않다. 지치고 힘든 일상의 끈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생을 향한 뜨거운 연민과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본문

어부의 고된 노동을 바라보기 보다는 배에 쌓이는 바다의 양식을 보며 그저 뿌듯해하며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호사만을 그리고 있는 나에게 그는 어부의 어깨 위에 얹혀진 무게를 바라보고 있다. 뿌연 안개가 가득한 곳에서 계속되는 물질마저도 아름다운 춤이라 말하는 그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더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도무지 느껴보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그의 언어를 통해 들으며 똑같은 공간안에 이토록 다른 시간들이 흘렀던가를 되돌아 보게 된다.

여행으로 시작되었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 속의 순간들을 들려주는 그를 보면서, 나도 한때 마주했던 것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잠시 동안 새로운 공간 안에 다녀온 듯한 그의 글을 읽으며 바쁘게 지내왔던 오늘에 위안을 얻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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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변주곡 / 황경신저

독서 기간 : 2014.10.1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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