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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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르's Review

 

 

하루 24시간, 1440, 86400. 지구 안에 있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전해지는 이 시간의 마법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지구의 자전 주기에 따라 모든 이들이 정해놓은 ‘1=24시간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길에 올랐으며 오전 9시 업무를 시작하고서는 오후 6시에 시계 바늘이 도달하기를 바라며 바쁜 월요일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 24시간의 법칙이 조금씩 깨어지게 된 것은 바로 슬로잉 현상이 시작되면서부터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 누구도 대체 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한 것인지 모르지만 조금씩 이상 현상들, 하늘을 날던 새들이 추락을 하고, 하루의 시간이 24시간이 아닌 30시간, 나중에는 심지어 70시간까지도 늘어나고 있고 일몰과 일출은 예측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 인간은 슬로잉 증후근에 걸리게 된다. 또한 이전보다 추락하는 것은 더 빠르게 떨어졌으며 그에 따라 움직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힘을 주어야 하는 등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지구 안의 모습을 보면서 그럼에도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또 지금의 우리를 보는 듯 해서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이 소설은 지구의 자전주기가 어느 순간 점차 늦춰지면서부터 지구 상에 나타나고 있는 변화들에 대해서 당시 11살 소녀였던 줄리아의 눈을 통해서 들려주고 있다. 공상 과학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며 외면할지 모르지만, 그런 이들에게 나는 현재 지금의 지구 상에 나타나고 있는 이상 기후의 현상 속에 아등바등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들이기에 마냥 픽션의 세계라고만 칭할 수 없는 것이다.

 10 6, 일단의 전문가들이 비밀을 공개햇다. 물론 우리는 모두 이날을 기억한다. 그들은 어떤 변화가, 그러니까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했는데, 그때부터 우리는 그것을 슬로잉이라고 불렀다.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중략
)
 
하지만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하루는 이미 밤 시간이 오십육 분이나 늘어나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길모퉁이마다 삼삼오로 모여서 세상의 종말을 외쳤다. 심리 상담가들이 학교를 찾아왔다. 옆집의 발렌시아씨가 통조림과 생수를 차고에 가득 채워 넣는 모습도 보았다. –본문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나 오래 전에 한반도의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마트마다 라면이나 생필품들을 사재기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실제 전쟁이 난다면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을까, 하며 집에 쌓여져 가는 라면과 쌀을 보면서 그저 멍하니 바라만보고 있었는데 이와 비슷하게 줄리아 역시도 조금씩 달라져가는 일상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기 보다는 그저 그 안에 속해서 서서히 변해가는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변화되어 가는 일상들을 전해주고 있다.

 지구의 자전 주기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하루가 24시간을 넘어 점점 길어지는 날이 계속 될 수록 사람들의 혼란은 가중되게 된다. 시계는 이전처럼 동일하게 12시간을 기준으로 바늘을 가르키고 있지만 밖의 풍경은 아침이 될 시간인데도 여전히 깜깜하거나,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태양이 솟아있는 현상들이 계속되고 있고 그리하여 각 국가는 클락 타임으로 생활할 것을 국민들에게 권고하게 된다. 클락 타임이란 말 그래도 자전 주기가 늘어나게 되면서 하루의 기준이 늘어나는 것과 상관 없이 무조건 하루를 24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생활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줄리아는 암흑과 같은 나날에 등교를 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수업을 하는 날들이 왕왕 일어나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클락 타임으로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리얼 타임으로 지내고 있는 이들은 소외되거나 아니면 그들만의 도시인 서케이디어로 이주를 하고 있다. 물론 클락 타임의 생활권에서 리얼 타임으로 지내는 실비아 선생님과 같은 이들도 있지만 이들은 남들과 다른 삶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수 많은 사람들의 위협을 받게 된다.

 고래만 자기장이 필요한 게 아니야.”
골짜기 가장자리에 이르러 보도에 들어설 때 세스가 말했다
.
우리 인간에게도 필요해. 아빠가 그러는데 자기장이 없으면 인간은 모두 죽는대
.”
 
하지만 그날 내 귀에는 세스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오후 내내 세스 모레노와 함께 있다니……. –본문

 리얼타임을 살고 있는 현재의 나의 삶으로는 그저 어쩜 이런 일이!’라며 탄식만을 하며 바라보고 있는 그들의 삶 속에는 여전히 우리와 같은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 전쟁과 같이 아픔과 고통만 가득할 것 같은 곳에서도 사랑과 희망이 피어나 그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지듯이 기적이라기 보다는 재앙에 가까운 이 나날 속에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줄리아의 할아버지나 세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야만 했고 줄리아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을 맛보아야 했으며 해나와도 결별을 했지만, 그녀는 세스와의 두근거리는 나날들을 안고 있었으며 지금은 그와 헤어진 상태이지만 어느 순간 기적처럼 나타날 그와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 이야기가 회색조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닮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잿빛이지만 그 안에서 빛나고 있는 영롱함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이 들어 읽고 나서는 묵직하게 밀려드는 따스함을 느낄 수가 있다.

 오랜만에 신나게 읽어내려 간 소설책인 듯 하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줄리아의 이야기를 통해서 과연 나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에 대한 돌이켜 보는 것은 물론, 현재의 줄리아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해본다.

 

 

 

독서 기간 : 2014.10.11~10.12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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