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이력 -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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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일상 속에 매일 마주하는 사물들, 예를 들어 핸드폰에서부터 TV, 소파를 넘어 회사의 책상 위에 가득 메우고 있는 파일에서부터 볼펜이나 스템플러까지. 매일 보며 쓰고 있는 것들이지만 너무 익숙하기에 그것들을 쓰면서 딱히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필요하기에 손에 잡히는 대로 쓰기만 하고 그저 제자리에 다시 두는 정도. 그것이 내가 사물에 대해 할애하는 시간의 전부일 것이다. 쓰고 제자리 두기란 짧은 시간들 말이다.

주변 이들에 대한 생각들은 계속하면서 내 주위에 있는 사물들에 대한 생각들을 미처 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저자의 <사물의 이력>은 그런 점에서 생경하면서도 그렇기에 보는 내내 잊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하게 다가왔다.

작년 연말 즈음, 내 자신을 위한 선물이란 명분으로 큰 마음 먹고 DSLR을 구입하게 됐다. 보급형으로 나온 거라 그나마 다른 카메라에 비해 비용은 저렴한 편이었지만 나에게는 거금을 주고 구입한 그 카메라를 실제 사용하게 된 것은 한참 후 여름휴가였으니 카메라를 6개월 이상을 묵혀둔 셈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간 나는 정신 없이 셔터를 누르느라 어느 새 경치를 보는 것도 잊어 버린 채 뷰 파인더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남은 건 사진 뿐이야 라는 생각으로 누른 셔터는 현재 나의 기억 속에는 거의 남아있는 것은 없고 그저 메모리 카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을 뿐이다.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는 엄청난 수량의 사진을 가지고 있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이미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 많은 이미지가 디지털카메라 안에 들어 있더라도 내가 모른다면 찾을 일이 없고 그렇다면 그저 저장된 데이터 중 하나일 뿐이다. 필름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와 정반대로 편리함이 신중함을 잃게 만든 것이다. –본문

저자의 말마따나 필름 카메라를 썼던 예전의 기억들을 돌이켜 보노라면 인화를 하기 전까지는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꽤나 고심해서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 장의 필름 속에 한 장의 사진이 각인되어 나오기까지, 필름뿐만 아니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담기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았으니 사진을 찍는 행위에 있어 경건함 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한때는 모든 이들이 썼던 필름 카메라가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사용되고 있다니. 집 어딘가에 모아두었던 필름들이 문득 떠오르게 된다.

 

 집을 짓는 재료에 대해서 그 동안은 잘 생각해보지도 않았다지만 이 책 안에서 벽돌과 시멘트를 마주하면서 어느 샌가 주변에 벽돌로 집을 짓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돼지 삼형제>의 이야기 속에서 짚, 통나무, 벽돌로 각각 집을 지은 형제들 중 가장 튼튼한 벽돌로 지은 집 안에서 함께 살았던 이야기를 보노라면 당시 가장 튼튼한 건축 재료는 벽돌이었을 텐데 어느 새 그 자리를 시멘트에 내어 놓고서는 조금씩 그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흙은 오늘날의 벽돌에 이르기까지 긴 역사를 지나면서 서서히 변화해왔다. 그 중에서도 점토에 밀짚이나 거름을 섞어 만든 어도비 벽돌은 기원전 7600년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흙벽돌은 주변에서 손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비를 맞으면 약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기원전 3500년경에는 불에서 구워낸 벽돌로 발전하게 되었고, 흙은 현대 건축의 신소재 틈바구니에서도 수천 년이 지나도록 굳건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본문

콘크리트 건물이 즐비한 이 곳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높은 건물 숲이지만 이러한 건물들 안에 담긴 수 많은 과학 기술의 조합보다도 고대 지어진 로마 시대의 건물이 여전히 전해지는 것들 것 보면 과학의 진보가 가져온 것들이 더 좋다고만은 볼 수 없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제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들이 더 나은 것들이라 믿고 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백열 전등은 2014년 이후에는 사라질 것이며 터치 스크린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는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각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뎌지고 있다. 삐삐는 사라졌지만 식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선호출기는 정감 어린 호칭이 오가는 것을 대신해 편이성을 도모하고 있고 함석으로 만든 물 조리개 대신 플라스틱 물 조리개와 같이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생산해 낼 수 있는 것들만 우리 주변에 계속 살아 남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과연 효율성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느리고 손이 많이 간다고 해서 불필요한 것들이 아닌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음에도 우리는 철저히 그것들을 도태되었다며 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은 훗날에는 이 책 안에 담긴 사물들 마저 보기 힘든 것들이 되어 버릴 지 모른다. 빠르고 편리한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에 대해 곱씹어보는 내내 씁쓸함만이 입안에 맴돈다.

 

 

아르's 추천목록

 

사물의 민낯 / 김지룡, 갈릴레오 SNC저


 

 

독서 기간 : 2014.09.22~09.2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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