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여자로서 남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회와 조건 속에서 현재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만 해도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은 한 가정의 안주인이 되어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고 지아비를 섬기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우선으로 배웠기에 학문에 있어서 여성으로서의 진출을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60~70년대만 해도 여자아이는 집에서 살림을 돕고 일손을 보태는데 우선이었기에 남자에 비해서 교육의 기회가 월등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보이지 않는 유리 성벽은 곳곳에 존재하지만 이전 세기의 여성들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교하자면 나의 어머니 세대만 해도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나는 편안하게 누리고 있으니 여자로서 지금의 시대를 사는데 있어서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기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그다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현재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는 것들이 이전의 수 많은 그녀들의 외침에 의해서 이뤄낸 것이구나, 를 느끼며 그녀들의 노고가 심심치 않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생각하는 그녀들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마주하며 그녀들의 당당했던 외침을 보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칸트는 “남성은 뒤에서 여성을 돌봐주는 척하면서 그들을 감독한다. 말하자면 가축을 사육하는 것처럼, 이 조용한 피조물이 테두리 바깥으로 단 한 걸음도 감히 나가지 못하게 하여 어리석은 상태에 머물게 만들고, 이들이 독립해서 나가기라도 할라치면 분명 위험에 빠지게 될 거라고 위협한다.” 라고 비판했다. –본문
누군가는 이 책을 보며 다분히 페미니즘의 색채만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 그 판단이 맞을 수 있다. 이 안에는 22명의 여성들이 그녀들의 색채를 담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롯이 여성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그 당시의 시대상 안에서 발아해야만 했던 문제들이었구나, 라는 식견으로 바라보면 그 때의 외침들이 필요로만 했던 순간들, 그러니까 무언가 세상에 대한 균형이 필요했던 순간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말하기 꺼리는 그 순간에도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그 아릿한 순간들을 담아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두가 OK하는 순간 NO라고 외치는 것은 그저 그 순간 발아하는 불꽃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구한 시민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에 대해 거리낌 없이 고발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체첸 주재 러시아 저널리스트로서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그곳 사람들의 말에 귀를 귀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끔찍해서 도저히 받아 적을 수 없는 증언’들을 보고 들으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국가를 잃고 민족 말살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러시아군은 정기적으로 시골 마을을 습격해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였다. 민간인 사이에 숨어 있는 체첸 전사를 색출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지역민들의 재화를 약탈하고 그들을 집에서 몰아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본문
체첸의 현실을 목도하고 기록하며 그것을 알린다는 이유만으로 안나는 러시아군에 체포되어 참호에 갇히기도 하고, 심문을 당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을 지 모르고 누군가의 피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압박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진실을 파헤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녀 스스로는 피구덩이에 있다고 한들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내가 그녀라면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먼저 앞서게 된다. 안타깝게도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녀를 뒤로 하고 더 이상 체첸의 현재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들이 없다는 것은 안나 폴릿콥스카야가 더욱 빛이 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임신을 할 자유는 누구에게다 당연히 주어져야 할 권리라고 생각했다. 무분별한 낙태는 문제이긴 하지만 임신 중절수술을 불가하게 했을 때 나타나게 되는 역효과는 물론 불법적인 시행으로 인해 여성들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다는 통계를 보고서는 임신의 자유는 지켜져야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 생각되었는데 사실은 이마저도 1960년대의 유럽에서조차 쉬이 적용되지 못했던 내용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많은 지역이 독일 나치주의자와 이탈리아 파시스트에 점령당한 1942년, 프랑스 당국은 임신 중절은 ‘국가의 안전에 반하는 범죄’라고 선포했고 낙태하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전쟁으로 혼탁하고 궁핍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하층민 여성들에게 또 다른 전쟁과 같았다. 많은 여성들이 암암리에, 더러운 침대 위에서 목숨을 담보로 낙태수술을 감행하던 그때, 마리루이즈 지로는 총 26회에 걸쳐 여성들의 임신 중절을 도운 되로 체포되었다. (중략) 1943년 7월 30일, ‘낙태하는 여자’ 마리루이즈 지로는 결국 파리 라로게트 감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본문
반세기 전의 유럽에서는 낙태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해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낙태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거운 감자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하리만큼 엄청난 이슈였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아기는, 내가 원한다면, 내가 원 할 때 갖는다”라는 그녀들의 구호가 널리 퍼지기까지 이토록 많은 일들이 있어야만 했다니. 이 안의 이야기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치열했던 그녀들의 삶이 외경스럽게 느껴진다.
여성이라는 성으로 지난 시대를 살아왔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나로 하여금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 것들이 알고 보면 지난 날 그녀들의 노고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겠지만 그녀들의 행보로 인해 지금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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